[기자수첩] 통상임금, 대통령이 협상할 사안 아니다

김종일 기자 2013. 5. 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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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통상임금 문제를 꼭 풀겠다"는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노사간 여러 건의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박 대통령이 삼권분립 체제를 무시하고 사법부를 압박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을 찾은 박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80억달러 규모의 한국 내 투자의 전제조건으로 통상임금 문제 해결을 요구한 제너럴모터스(GM) 대니얼 애커슨 회장에게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에 앞서 가진 한국 경제인들과의 조찬간담회에서도 같은 내용의 건의를 받고 긍정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한국GM이 노조와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소송 중인 사실을 몰랐을까. 한국GM은 패할 경우 많게는 1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소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법치'에 어긋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야당과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의 발언은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사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양대노총도 성명을 내고 "기업 민원 해결에 대통령이 나섰다"며 격하게 반응했다.

통상임금은 우리 경제의 오래된 과제다. 연장ㆍ야간ㆍ휴일 수당이나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되지만, 어느 범위까지를 통상임금으로 봐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는 판례를 내놓고 있지만 고용노동부 지침에는 상여금과 보너스는 제외돼 있다. 정부와 대법원의 해석이 다른 만큼 분란은 컸다. 특히 지난해 3월 대법원이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고 판시한 이후 노조는 줄줄이 소송을 내고 있다. 인화성이 큰 문제를 대통령이 조심성 없이 다뤄 논란을 자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일정 동안 감기에 심하게 걸려 감기약을 복용하면서도 하루에 3~4개의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으로 거둔 성과도 상당하다. 한미 동맹을 강화해 대북 공조에 한 목소리를 내기로 한 점과 한반도 프로세스를 알리고 미국 상하원에서 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민주당도 높게 평가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사법부를 압박하는 듯한 행동은 결코 '창조적'이지 않다. 지금 세간을 떠들썩하게 달구고 있는 윤창중 사태보다 이 일이 더 큰 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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