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거래 관행이 1000억 중소기업 쓰러뜨렸다

2013. 5. 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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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소기업 강국의 길/ 2부 수직적 네트워크의 정상화

① 공정과는 거리가 먼 원하청 관계

'대명건영' 부도난 사연대기업과 348억 납품 계약 체결잦은 설계변경과 원자재값 상승추가비용 50억 발생했지만불공정계약 탓에 돈 못받아 부도공정위에 신고했지만'법위반 판단 불가능' 회신돈없어 민사소송 포기 청산 기다려

매출 970억원, 영업이익 98억원. 철구조물제작업을 주로 하는 대명건영의 2011년 성적이다. 하지만 지난해 부도가 나 길거리에 나앉을 처지다. 대명건영의 김아무개(61) 대표는 "2011년 ㄷ기업과 해외 건설 현장 납품 계약을 맺었는데, 잦은 설계 변경과 급등한 원자재가 미반영 등으로 회사가 부도가 났다"고 하소연했다. 대명건영의 사례는 대중소기업간 불공정한 거래의 한 유형이다.

불공정 계약대명건영은 ㄷ사와 인도의 라이퍼(Raipur)와 사우디아라비아 라비(Rabigh)에서 진행하는 사업과 관련해 각각 231억과 117억원에 철구조물 납품 계약을 맺었다. 충북 진천 공장에서 구조물을 만들어 납기일에 맞춰 항만까지 배달하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인도 라이퍼 계약의 경우 설계 도면을 늦게 주거나 변경을 요구한 것이 200건 가까이 된다. 길게는 예정일보다 400일 늦게 설계 도면을 주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때문에 뒤늦게 제작에 들어가거나 완성된 철골을 수정하느라 24억원이 추가로 소요됐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납기가 길어지는 동안 철강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2011년 철강값이 t당 90만원에서 106만원으로 20%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추가로 들어간 비용이 9억원에 달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라비 계약건에서도 비슷한 사정이었다. 추가로 변경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납기일자가 미뤄지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김 대표는 "사우디 계약 역시 수십차례 설계 변경을 요구해 납기일이 애초 2011년 9월에서 이듬해 3월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추가 비용이 17억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많은 추가 비용이 발생했는데도 계약서상으로는 이를 받아낼 수 없었다. 계약서는 설계 변경이나 원자재가 상승 등에 따른 비용 청구를 제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계 변경과 관련해 '갑의 도면 수정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제품 수정에 대하여 정산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원자재가 상승 역시 '자재연동제(Escalation)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으로 인해 상승비를 받지 못했다.

ㄷ사 쪽은 "도면 수정으로 인한 추가 비용은 도장 작업 전의 경우 산정이 어려워 도장 후 하도록 한 것이다. 자재연동제 역시 해외 발주업체가 우리와 계약할 때 적용하지 않아 우리가 대명건영과 맺은 계약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이며 대영건영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추가 비용과 관련해 증빙 서류를 받았지만 최대 6억원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더 지급한 금액이 1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증빙 서류를 모두 제출했는데도 (ㄷ사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랜기간 사업을 했지만 이처럼 불공정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은 드물었다"고 말했다. 대명건영은 급기야 지난해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김 대표는 "ㄷ사로부터 돈을 받지 못하고 당시 60억원 가량의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고 말했다.

지리한 다툼지난해 4월 김 대표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거래 혐의로 ㄷ사를 신고했다. '도면 지연으로 인한 자재비 상승, 수정 비용 등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발생했는데도 정산을 거절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공정위는 지난 1월 회신에서 "당사자간 주장이 상이하고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곤란해 법 위반 여부의 판단이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돼 심의 절차를 종료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가 요청한 재심에서도 공정위는 "계약조건에 대한 분쟁 또는 해석에 관한 내용으로 이는 민사절차로 다투어야할 사안이며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해당 계약건이 동반성장위원회 심사에서는 불공정한 것으로 지적됐다. 동반위는 김씨가 신청한 하도급 분쟁 심사에서 "(계약과 관련해) 도장 작업을 하기 전이기만 하면 자유롭게 도면을 수정할 수 있다면 예측할 수 없는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어 (중략) 불공정한 계약으로 무효라고 봐야할 것이다"고 밝혔다. 다만 원가연동제에 대해서는 "계약 조건에 명시돼 있고, ㄷ사가 명백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볼 근거가 없어 이를 부담시키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ㄷ사는 "대명건영에서 제출한 자료 및 의견만을 근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이제 김 대표에게 남아있는 방법은 소송 뿐이지만 50억원을 달라며 제기할 소송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할 수 없는 실정이다. 김 대표는 "회사가 부도가 난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퇴직금을 정산해주고 남은 돈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이 불공정 거래에도 부도가 나지 않는 이상 거래 중단 등 보복이 두려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부도 이후에는 이를 개선하려고 해도 뒤늦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제 회사 청산절차만 기다리고 있다는 김 대표는 "나같은 희생자가 또 나타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회사에는 현재 100여명의 직원 가운데 청산을 위한 경리사원 등 3명만 남아있다.

글·사진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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