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일자리 뺏은 경제학자의 실수

2013. 4.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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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강국의 경제산책

필자가 박사과정 대학원생이던 시절, 한 교수님은 유명한 경제학 실증연구의 결과를 검증해보라는 과제를 내곤 했다. 계량분석이라는 것이 실은 소시지 만드는 과정 같아서 본인이 아니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농담을 나누던 기억이 난다.

바로 그분인 매사추세츠대학교의 밥 폴린 교수와 대학원생의 이와 같은 작업이 경제학계에 큰 파문을 던지고 있다. 이들의 검증대상은 메릴랜드대의 라인하트와 하버드대의 로고프 교수가 2010년 발표한 '부채 시대의 성장'이라는 유명한 논문이다. 이 논문은 2차 대전 이후 선진국의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90% 이하일 때는 성장률이 3~4%대로 비슷하지만, 90% 문턱을 넘으면 -0.1%로 뚝 떨어진다는 놀라운 결과를 발표해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타이밍도 절묘한 논문이었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의 정부부채가 급등하여 긴축을 외치는 보수적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선진국 정부는 불황을 심화시키고 전세계 수백만을 실업자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 논문을 인용하며 긴축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미 2010년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90%를 넘긴 미국은 재정지출에 제동이 걸렸고, 그리스 등 재정위기를 겪던 국가들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긴축을 수용해야 했다. 그들의 논문 이후, 수많은 관련 연구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몇 국제기구의 연구들은 계량분석을 통해 정부부채가 전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킨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어떤 연구도 부채비율이 90%가 넘을 때 성장률이 급락하는 결과를 찾지 못했고, 저자들은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마침내 폴린 교수 등은 이들의 원래 데이터를 얻어서 꼼꼼하게 분석을 수행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는데, 원래 논문의 결과가 세가지 실수 때문이라는 것이다. 먼저 2차 대전 직후 몇 년의 데이터가 빠졌고 각국의 평균성장률을 계산하는 방식도 매우 이상했다. 가장 황당한 것은 엑셀의 코딩 실수로 평균을 계산할 때 5개국이 포함되지 않았다. 이 실수들을 모두 교정하면, 부채비율이 90% 이상일 때도 평균성장률이 2.2%로 계산되었고, 최고의 경제학자들은 체면을 구겼다. 게다가 성장률의 하락 자체가 부채비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정부부채가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인과관계는 사실 뚜렷하지 않다. 아무튼 문제 많은 연구가 긴축정책의 논리를 제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한국에서도 2006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국책연구원의 보고서들에서 성장률과 무역수지 전망치가 의문스러워 권영길 의원 등이 공개검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결국 데이터를 모두 공개하지 않았다. 연구원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권력이 자신의 입맛대로 부실한 연구를 이용하거나, 심지어 연구에 압력을 가하는 일이다. 언제나 그렇듯 잘못된 정책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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