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기업도시]무주·무안 '첫 삽도 못 뜨고..'

2013. 3. 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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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3~4시간 걸리는 시골 벌판에 기업도시를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인프라 없는 곳에 기업이 입주하면 그만큼 혜택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입지는 나쁘고 당근책은 적으니 기업 없는 기업도시로 전락한 거죠." 한때 무주기업도시 입주를 타진했던 기업인 A씨 얘기다.참여정부 시절 외자 유치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도입된 기업도시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충북 충주, 충남 태안, 강원 원주, 전북 무주, 전남 무안, 전남 영암·해남 등 전국 6곳에 기업도시가 지정됐지만 제대로 개발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개발이 지지부진하면서 급기야 2011년 전북 무주에 이어 최근에는 전남 무안기업도시 지정이 해제됐다. 남은 4곳 개발사업도 가시밭길인 건 마찬가지다. 기업도시는 영영 희망을 잃은 것일까.

추가 당근 없으면 계속 제자리 맴맴

서울 도심에서 1시간 30여분을 달렸을까. 영동고속도로 문막IC를 지나 30여분을 더 가니 '원주와 롯데가 만드는 명품기업도시'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띈다. 대로변에는 기업도시 유치 호재로 투자를 유혹하는 중개업소들이 줄지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소한 10여개 이상 기업이 유치될 것으로 기대했던 원주기업도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원주기업도시 주변 도로를 아무리 둘러봐도 얕은 산에 터잡기한 널따란 땅과 흙무더기뿐이다.

그나마 원주기업도시 1호 기업 타이틀을 단 의료기기 전문기업 '누가의료기' 건물만 덩그러니 보일 뿐 부지 곳곳에는 '단독' '상업' 'R & D'라는 간판으로 땅 위치만 구분해놓았다. 총 529만㎡(160만평) 부지에 인구 2만5000명(1만가구)과 의료, 제약 전문기업을 유치하겠다던 야심 찬 계획은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원주기업도시 관계자는 "그동안 기업 유치가 쉽지 않았는데 그나마 롯데건설이 총대를 메면서 한숨을 돌린 상황이다. 앞으로 속도를 내 연말까지 지식산업시설을 완공하고 내년 말 주거, 상업용지 기반시설 조성을 마칠 계획"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2005년 참여정부는 낙후지역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 명목 아래 '기업도시'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나마 산업이 발전된 영남권을 제외하고 강원, 충남북, 전남북 지역에 총 6곳의 기업도시를 지정했다. 각종 세제 혜택을 제시해 수많은 기업들이 기업도시에 입주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사업이 시작된 지 7년여가 지난 지금 기업도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급기야 지난 2월 14일 국토해양부는 "전남 무안 산업교역형 기업도시 구역 지정을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첫 삽도 못 뜬 채 기업도시 지정이 해제된 것이다. 기업도시 타이틀을 뺏긴 건 2011년 초 전북 무주기업도시에 이어 무안이 두 번째다.

한 개발업체 관계자는 "기업도시가 순항하려면 기업 유치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부동산 경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경기 침체가 심각하다는 게 악재"라며 "무주, 무안에 이어 또다시 지구 지정이 해제되거나 사업 규모가 축소되는 곳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기업 잇따라 투자 철회

2005년 7월 전남 무안읍과 무안국제공항 인접지역에 산업교역형 무안기업도시 조성계획이 발표될 때만 해도 온통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정부는 무안공항이 가까운 만큼 항공, IT기업을 대거 유치해 차세대 제조업단지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글로벌 경제위기,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은 지지부진하면서 첫 삽도 뜨지 못하고 무산됐다. 한중 합작으로 무안기업도시가 추진한 일명 '무안프로젝트'는 중국 측이 지분 51%를 소유한 시행사 한중미래도시개발이 지난해 초 투자를 철회하면서 아예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전남도와 무안군은 무안기업도시를 살리기 위해 대체 투자 기업을 찾아 나섰다. 국토부까지 "중국 측 투자 철회 지분을 인수해 출자회사를 새롭게 구성하겠다"고 밝히며 힘을 실었지만 허허벌판에 투자할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무안군 관계자는 "투자 의향이 있는 몇몇 기업이 있었지만 워낙 파격적인 혜택을 요구하다 보니 결국 협상에 실패했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자 무안군은 2007년 한시기구로 만들었던 기업도시 지원단을 지난해 말 해제했고 파견공무원도 모두 복귀한 상태다.

2011년 개발이 백지화된 무주기업도시는 주 투자자인 대한전선의 자금난이 치명타였다. 무주기업도시는 당초 2020년까지 1조4171억원을 들여 무주 안성면 일대 767만㎡에 레저휴양지구, 비즈니스지구, 관광위락시설을 조성하기로 했다. 무주군(4%)과 대한전선(96%)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전담법인 '무주기업도시'가 개발주체였지만 대한전선이 2008년 금융위기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급기야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이후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아 사업은 계속 표류했고 결국 2011년 1월 사업을 접었다. 무주 A공인 관계자는 "기업도시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소유한 땅이 모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고 그 때문에 재산권 행사를 못 해 피해가 크다. 해제된 지 2년 이상 지났지만 지금도 손해배상 소송이 계속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충주 '휴~' 영암·해남·원주 '불안'

무주·무안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도시 4곳도 앞날이 가시밭길이다.

지식기반형 도시로 조성 중인 원주기업도시는 기반사업 완료 기간을 당초 올해 말에서 내년 말까지 1년 연장하기로 했다. 현재 공정률이 30%에 그쳐 연말까지 준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원주기업도시 개발이 주춤한 건 참여 기업 중 벽산건설, 경남기업 등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탓이다. 이들이 자금 조달에 난항을 겪으면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다. 그나마 롯데건설이 자금 지원을 결정하면서 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예정대로 내년까지 준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6월 의료기기 전문기업인 누가의료기가 본사를 이전하고 '동양전자의료기'라는 업체가 투자를 결정했지만 아직까지 입주 기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관광레저형 태안기업도시는 6개 기업도시 중 가장 먼저 2007년 10월 착공해 인구 1만5000명을 수용하는 친환경 도시로 개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업 주체가 계속 바뀌면서 사업이 지연돼 현재 공정률은 15% 남짓에 그친다. 진입로 등 일부 공사만 진행된 후 사실상 개발이 멈춘 상태다. 주요 출자사인 현대건설이 지난해 10월 골프장 2곳 건설을 맡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투입 공사비만 2조2800억원으로 기업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큰 전남 영암·해남기업도시는 인근 무안기업도시가 해제되면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구성, 삼호, 삼포, 부동 등 총 4개 지구를 조성하지만 어느 곳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곳이 없을 정도다. 호텔, 남도음식문화촌, 골프장 부지인 구성지구는 지난해 말 정부로부터 실시 계획을 승인받아 지난 1월 착공에 들어갔지만 기업 유치는 지지부진하다. 삼호·삼포지구는 개발 부지 인근 간척지 양도 여부를 놓고 땅 주인인 농어촌공사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다. 부동지구는 지난해 초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부터 '사업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 개발 의지가 꺾였다. 영암·해남기업도시 관계자는 "비록 지금까진 사업이 지지부진했지만 올 초 삼포지구 F1 경주장 인근 모터스포츠클러스터 조성사업에 국비 35억원을 확보해 기업도시 개발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국 기업도시 중 그나마 사업이 순항 중인 곳이 충주기업도시다. 포스코건설, 현대엠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대기업, 공기업이 참여하면서 총 4300억원을 들여 전국 기업도시 중 유일하게 기반 조성 공사를 모두 마쳤다. 롯데칠성음료, 포스코ICT, 코오롱생명과학이 입주를 준비 중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근린생활용지, 공동주택용지, 단독주택용지는 분양이 완료됐지만 전체 분양률이 70% 수준에 그친 때문이다. 충주기업도시 관계자는 "상업용지 땅값이 3.3㎡당 40만~50만원대로 수도권의 절반에 불과한 게 강점"이라며 "경기가 워낙 어려워 100% 분양은 쉽지 않겠지만 다른 기업도시와 달리 대기업이 주로 참여한 만큼 올해 말까지 90% 분양은 문제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업도시 개발이 지지부진한 데는 이유가 있다. 기업도시가 본래 취지대로 기업을 유치해 개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005~2007년 기업도시 개발 초창기만 해도 상당수 기업들이 개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하나둘씩 발을 뺐다.

입주기업 근로자 유인책 필요

전국 곳곳에 위치한 기업도시 입지가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기업이 수도권이나 대도시 해안가에 공장을 지으려는 건 그만큼 교통이 편리하고 물류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때문이다. 대도시와 가까우면 도시 인프라를 활용해 각종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도시는 도심이 아닌 인프라가 부족한 외곽지역에 들어서기 때문에 입주 기업 입장에선 경영 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원주기업도시는 영동고속도로 문막IC에서도 국도를 따라 30분가량 이동해야 해 입주 기업 직원들이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업도시는 정부가 지역 할당식으로 지정해 땅값만 뛰게 한 선심성 정책의 결과다. 기업도시를 지정할 때부터 사업 예상 투자비 정도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재원 조달방안은 없었다. 지역균형발전 모토로 자금을 어떻게 유치해 도시발전과 연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도 마련되지 않았다. 기본적인 입지 분석만 했더라도 기업들로부터 외면받진 않았을 것이다." 한태욱 대신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도시와 비슷한 개념의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경쟁을 벌이는 것도 변수다. 가뜩이나 기업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각종 세제 혜택을 받는 경제자유구역, 정부 부처 이전 효과를 등에 업은 혁신도시까지 기업 유치 경쟁에 뛰어들다 보니 기업도시 경쟁력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기업도시가 지정되자마자 주변 땅값이 치솟은 것도 걸림돌이 됐다. 한때 3.3㎡당 5만원에 그쳤던 무안기업도시 주변 땅값은 기업도시 발표 이후 15만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전 국토 개발로 인한 땅값 상승 → 토지수용비 부담 → 토지 분양 차질 → 개발사 수익성 저하 → 기업 입주 기피의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도시 개발 초창기 사업을 검토해왔던 삼성, 현대차, LG 등 대기업조차 발을 빼고 중소기업들은 수익성이 나지 않아 기업도시 입주 엄두를 못 냈다는 지적이 많다. 그나마 초창기 무주기업도시에 참여했던 대한전선은 당시 무주리조트(현 부영 소유 무주덕유산리조트) 소유주였던 영향이 컸다.

또 다른 측면에서 MB정부가 기업도시, 혁신도시 같은 지방균형발전 계획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도 나돈다. "기업·혁신도시 모두 참여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인 만큼 MB정부에선 개발 계획 자체에 불만이 많았다. 세종시 개발도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간 상황에서 기업·혁신도시를 제대로 추진하려는 의욕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무주, 무안기업도시가 정부의 끈질긴 지원 없이 손쉽게 해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 얘기다.

기업도시를 활성화할 해법은 없을까. 정부는 부랴부랴 기업도시를 살리기 위해 여러 당근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바뀐 '기업도시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도시 개발로 인한 이익을 기업도시에 재투자하는 비율을 12.5%포인트 하향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현재 49%인 원주기업도시의 재투자율은 36.5%로 낮아질 전망이다. 또한 원주기업도시 입주 기업은 법인세를 3년간 100% 면제(수도권 과밀지역에서 이전 시 5년)받고 그 후 2년간 추가로 50% 감면받는다.

하지만 이미 희망이 꺾인 기업도시가 살아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전경련에 따르면 영암·해남기업도시를 제외한 5개 기업도시의 평균 인허가 소요기간은 28.6개월에 달했다. 입지 선정 검토부터 개발구역 지정, 개발계획 승인, 실시계획 승인 등 인허가 기간만 2년 반이나 소요돼 기업 입장에선 투자 의욕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뿐 아니라 기업도시 개발 시 제출 서류는 26종, 인허가받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168억8000만원에 달했다.

기업도시 자체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많다. 산업교역형인 무안기업도시의 경우 인근에 공항이 있지만 생산 물동량과 유동인력 수송을 위한 철도망 구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민간기업 유치가 어렵다면 공공기관을 끌어들여 공공기관이 민간기업 투자를 견인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외국 기업도시들은 기업을 위한 혜택이 넘쳐난다.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도시인 도요타시는 1937년 도요타자동차 공장을 유치한 뒤 자동차 관련 사업체 수만 3000개 넘게 끌어왔다. 도요타시는 기업 유치를 위해 1954년 고정자산세를 3년간 환급해주고 1999년에는 도시계획세 등을 최대 10억엔까지 환급해주는 제도를 도입했다. 스웨덴 시스타사이언스시는 입주 기업 직원에게 인근 아파트 입주권을 우선적으로 줬다. 인근에 위치한 스웨덴 왕립공대와 스톡홀름대 산업위원회에 기업체 연구개발(R & D) 담당임원이 직접 참여해 공동으로 산학연구를 해왔다. 프랑스 그랑모또시는 관광레저도시 개발을 위해 개발 초기부터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을 적극 지원했다.

한태욱 연구위원은 "외국 스타 기업도시를 보면 인프라 건설은 기본이고 입주 기업 근로자에게까지 주택 우선 분양 등 혜택을 줬다. 우리도 각종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업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취재 : 김경민 기자 / 사진 : 류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96호(13.02.27~03.05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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