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좌빨소주' 괴담의 진실

이관범기자 2013. 2. 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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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에 상표 저작권 수백억 로열티, 좌파 자금줄" 소문과 달리 복지 기금으로

"국가 정보기관 출신을 자처한 신임 사장이 '처음처럼 '소주를 주문하니까 버럭 화를 내더라구요. 한 병 마실 때마다 '좌빨'(좌파 및 종북세력을 부르는 비속어) 진영에 돈을 대준다구요."

한 네티즌이 최근 인터넷에 올린 본인 체험기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좌빨소주' 괴담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정치권·군부대 주변에도 출몰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2일 "여권 내에 처음처럼 소주 한 병이 팔릴 때마다 일정 금액이 결국 좌파 진영으로 흘러간다고 알고 있는 지인이 적잖다"면서 "오래전부터 처음처럼 소주를 주문하면 강하게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도 적잖았다"고 말했다.

2006년 7월 처음처럼 소주가 출시되면서 출몰하기 시작한 괴담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과거 간첩단(통혁당)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처음처럼 소주 상표와 관련해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한 병 팔릴 때마다 수십 원씩 로열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돈이 결과적으로 좌파 진영의 자금줄로 쓰이고 있다는 얘기다.

처음처럼 소주는 현재까지 누적으로 20억 병 이상 판매됐다. 이를 감안하면 지금까지 수백억 원의 로열티가 좌파 진영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게 괴담의 핵심 내용이다.

2006년 9월 노무현 정부 시절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모임인 '처음처럼'이 발족된 것도 이 괴담을 뒷받침하는 정황 근거로 회자된다. 심지어 무엇보다 진상을 잘 알법한 주류업계조차 6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이 괴담을 '미확인 소문'으로 취급하는 관계자들이 적잖았다.

과연 괴담의 실체적 진실은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처음처럼 소주의 이름과 로고는 신 교수의 책에서 따왔다.

서예가로도 이름이 잘 알려진 신 교수의 서체는 지상파 방송은 물론이고 영화 포스터 등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인 데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선거 후보의 대선 캠페인 슬로건 '사람이 먼저다'에 사용되기도 했다.

여기서 첫번째 의문은 신 교수가 처음처럼 소주 상표와 관련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가 여부. 문화일보가 특허청에 확인한 결과 처음처럼 소주의 상표권은 출원 당시부터 두산이 보유하고 있었다.

2009년 두산이 롯데에 소주 사업을 매각한 뒤로는 롯데칠성음료가 상표권자로 등재돼 있었다. 신 교수가 상표권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는 흔적은 없었다.

두 번째 의문은 롯데가 신 씨에게 서체를 사용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는지 여부. 롯데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과거 두산이 신 씨에게 사용료를 내려고 하였으나 본인이 완곡하게 거절해 신 씨가 재직 중인 성공회대에 장학금 1억 원을 주고 사용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성공회대에 확인한 결과 두산은 2006년 1월 31일 성공회대 새천년관 4층 회의실에서 장학금 1억 원을 전달했다. 처음처럼 소주가 한 병 팔릴 때마다 일정 금액씩 외부 단체에 빠져나간 것은 기부금이 전부라는 게 롯데 측 설명이었다.

롯데 관계자는 "한 병 팔릴 때마다 20원씩 모아서 1040만 원이 되면 부산 사회복지공동모금회·원주 사회복지협의회 등에 기부해 왔다"면서 "16차례에 걸쳐 총 1억6400여만 원을 사회복지기금으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신 교수 본인의 입장이 자못 궁금했다. 신 교수 측 요구로 이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신 교수는 "처음처럼 소주의 서체 사용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받은 돈은 전혀 없다"면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은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두산으로부터 소주 사업을 인수한 롯데와 계약한 것도 일체 없다"면서 "(괴담은) 잘못된 소문"이라고만 말했다. 로열티를 받는 것과 같은 이면 계약은 전혀 없다는 얘기다.

종합해보면 좌빨소주 괴담은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판단된다.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정치권과 주류업계가 만들어낸 가공의 합작품인 것으로 보여진다. 이미 소주 시장에는 거짓으로 판명 난 '사람을 죽이는 알칼리 환원수'나 '친일파 소주' 등과 같은 괴담이 활개를 친 전력이 있다.

이와 관련, 2008년 경찰은 신 교수의 '처음처럼' 서예 작품을 지구대에 걸려다가 취소한 해프닝을 빚은 바 있다.

당시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대변인조차 "(신 교수가) 20여 년 동안 수감생활을 한 게 공염불인가"라고 전제한 뒤 "글씨에 빨간색이 묻어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처럼 소주가 의심스러워 안 먹는 것도 아닌데, 다른 나라에서 이런 사실을 알까봐 창피하다"면서 경찰의 과잉 충성을 꼬집은 바 있다.

이관범·최준영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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