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MB정부서 재계 투자 소걸음 ‘자본의 태업’

한겨레

[한겨레]11월 설비투자지수 3년반만에 최저


5년간 자본투자 증가율은 연 0.3%


참여정부때의 10분의1 수준 추락


정부 지원·규제완화 정책에도


재계 "공격적 투자" 약속 안지켜


경기회복 늦어져 '저성장 늪' 우려

기업 투자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투자 부진은 경기 회복을 더디게 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주된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투자 부진의 장기화는 성장의 기반을 서서히 가라앉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6일 한국은행의 기업경기실사(BSI) 결과를 보면, 11월 제조업 설비투자 실적 지수가 전달보다 2포인트 떨어진 89을 기록했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거셌던 때인 2009년 4월(88) 이후 3년반 만의 최저치다. 이 지수는 기준치 100을 밑돌면 계획 대비 투자를 줄였다는 기업이 늘렸다는 곳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투자 실적 지수는 올해 들어 한번도 100을 넘어선 적이 없고 8월 이후에는 계속 하락세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의 11월 지수가 87로 전체 평균보다 더 낮다.

투자의 침체는 한은이 작성한 국내총생산(GDP)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설비투자에다 건설투자와 무형자산투자까지 합친 '총고정자본형성'(자본투자)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올해 1분기에는 4.0%였다가 2분기 -1.6%, 3분기에는 -2.3%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 공수표만 남발하는 재계

저조한 투자 실적은 재계의 애초 약속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올해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30대 그룹의 공격적인 국내 투자 계획을 선언한 바 있다. 계획치는 151조4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이자 지난해보다 12.3% 많은 규모다. 8월에는 전경련 주도로 경제 5단체와 10개 산업별 대표단체까지 참여하는 '경제 살리기 특별위원회'를 발족하며 '계획된 투자의 차질 없는 추진'을 거듭 밝혔다.

여기에 정부는 각종 지원과 규제완화로 화답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에 열린 '2차 경제 살리기 특별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재계의 건의 과제 103건 가운데 27건은 완료했고 76건은 차질없이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의 투자 계획에 대한 이행 점검 발표는 없었다. 지금까지 실적으로 보면 확대는커녕 거의 '자본 파업'이라 불릴 만큼 저조한 탓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 여건 개선 노력에도 재계는 공수표만 남발했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 이명박 정부에서 투자 부진 고착

더 심각한 문제는 이명박 정부 출범 뒤 투자 부진이 만성화했다는 점이다. 집권 5년 동안의 연평균 자본투자 증가율을 참여정부와 비교해보면 각각 3.2%와 0.3%이다. 재계가 껄끄러워한 참여정부에서 이른바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 정권으로 넘어갔는데도 투자 증가 속도는 10분의 1로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재계는 투자 부진의 이유로 대내외 경기 여건의 악화를 말한다. 대외 여건이 나빠졌다는 것은 인정된다. 하지만 국내 경기를 탓하는 것은 자가당착적인 면이 있다. 투자 부진은 내수 침체의 결과인 동시에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로 발표하면서 저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투자 부진을 꼽았다.

김진욱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세계 경기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로 인한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계엽 기업은행경제연구소 팀장은 "최근 중소제조업 설비투자 전망도 좋지 않다. 결국 불확실성이 얼마나 확실하게 제거되는가가 투자 회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 기초체력마저 허약해진 한국 경제

내년 경제성장률이 기껏해야 3%에 머물면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늪'에 빠질 위험이 크다. 실제성장률이 2011년 3.6%, 올해 2.4%(한은 예상치)에 이어 내년까지 3년 연속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한은이 국내총생산 기준 국민경제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71년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잠재성장률이란 안정적인 물가 수준을 유지한 가운데 노동이나 자본 등 가용자원을 최대한 투입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다. 몇년간 실제성장률의 누적 평균과 비슷해 '성장률의 장기 추세치'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성장률 추세치가 3년 정도 하향 이탈하면 잠재성장률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국내 생산과 소득의 감소, 고용의 축소로 이어진다. 세수 차질로 재정건전성까지 악화시켜 정부의 경기 대응 능력이나 점증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힘이 약화된다. 사람 몸으로 비유하자면 오래 병을 앓다가 기초체력마저 떨어져 노화하는 것과 같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이미 잠재성장률의 하락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10월 초에 낸 '2013년 및 중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16년까지 5년간의 잠재성장률을 연평균 3.7%로 추정했다. 금융위기 이전 4년(2004~2007년)간의 연평균 4.4%보다 0.7%포인트 낮다.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의 지속적인 투자 부진이 성장잠재력의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박순빈 선임기자, 최현준 기자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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