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전형 인간'의 시대]새 물건은 꿈도 못꾸고 혼수도 중고로

김희연·김경학 기자 입력 2012. 11. 30. 22:15 수정 2012. 12. 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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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전가전'처럼 달라지는 삶.. 가장 겁나는 것은 '혹시나, 구조조정'

경기 침체와 분배 양극화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바뀌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의 최저 전망치는 2.2%이다.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시장소득 기준 1997년 0.264에서 2011년 0.313으로 올랐다. 지니계수는 0에서 1 사이 값을 가지며 수치가 높을수록 불평등도가 높다. 소득수준별로 줄을 섰을 때 중간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인구비중인 상대적 빈곤율은 8.7에서 15.0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다른 경제지표들도 2003년 카드대란 당시, 2008년 금융위기는 물론 심지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저'로 낮아졌다.

경제여건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의 생활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에너지로 작동하는 '절전모드형' 냉장고·TV처럼 '절전모드형 삶'이 점차 친숙해지고 있다.

■ 새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

주부 송은아씨(42·경기 일산)는 7년째 과일·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과 며칠 전 부부싸움을 했다. 송씨는 아파트 난방비를 조금이라도 아낄 생각에 두 아이가 주로 노는 거실용으로 전기매트 25만원짜리를 구입했다. 자정이 다 돼 들어온 남편은 "가게가 진짜 어렵다. 앞으로 새 물건 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라"며 화를 냈다. 송씨는 난방비를 줄이려고 구입한 것인데 심정을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했지만 바로 다음날 전기매트를 반품했다.

송씨는 몇 달 전부터 점심·저녁을 가게에 실어나르고 있다. 전에는 남편과 가게 직원 3명이 식당을 이용했다. 체력 소모가 많은 일이라 먹는 것만큼은 아끼지 말자고 했지만 한달 100만원이 넘는 식대 부담이 점점 커졌다. 식대를 조금이라도 줄일 생각에 송씨는 팔다 남은 채소를 가져다가 직접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송씨 남편은 "사람들이 과일 먹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3년 전과 비교해 올해 매출이 반토막 났고 내년엔 인건비 부담으로 초창기부터 함께 일해온 직원 한 명(월급 200여만원)을 내보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송씨 부부는 당분간 새 물건은 구입하지 않고 갖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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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값, 술값 아끼느라 사람을 안 만나

대학에서 계약직 조교로 일하던 김모씨(25·서울 신림동)는 지난 2월말 취업 준비를 위해 조교를 그만뒀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차비를 아끼고 운동도 할 겸 지난 3월부터 자전거를 탔다. 신림동 집에서 40~50분 걸렸다. 그런데 지난 9월 안 좋은 공기 탓인지 비염에 걸렸다. 절약하려던 차비보다 병원비가 더 많이 들어갔다. 김씨는 요즘 버스를 타고 다닌다. 버스비로 한달 4만원 정도 지출이 늘었다.

전에는 '스터디'를 마치고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사마셨는데 최근에 봉지(스틱) 커피로 바꿨다. 김씨는 "브랜드 커피 4000~5000원짜리는 완전 사치니 절대 안 마시고 어쩌다 사람들 만날 때만 마신다"면서 "밥은 학생식당을 이용해 크게 영향을 안 받는 데 술값은 부담이 돼 사람 자체를 안 만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급적 결혼식 참석도 피한다. 휴대폰은 무료통화량이 많은 '알뜰폰'으로 갈아탈 생각이다. 미용실 발걸음도 4개월째 끊었다. 헤어커트나 파마하는 것은 엄두도 못낸다.

김씨는 "기업 공채 자체가 많이 줄었다. 그동안 20개 대기업에 지원했는데 서류통과로 '인적성 검사'까지 간 곳은 한 군데뿐이었다"고 털어놨다. 취업카페에 올라오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한번 해볼까' 잠시 망설이다보면 금세 마감되고 없다. 그는 "이게 정말 불경기가 아닌가 싶다. 경기침체가 내 삶에 아주 깊숙이 와있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 혼수도 쓰던 중고 그대로 가져가

내년 2월 결혼을 앞둔 문모씨(34·서울 월계동)는 행복감에 마냥 젖어있을 수 없다. 남자친구와 최대한 돈을 합쳐 살 집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집으로 20평짜리 아파트 전세비 1억4000만~1억5000만원을 예상했는데 서울 변두리의 20~30년 된 아파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2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나마 지난 2월 국민주택전세자금 대출을 받은 5000만원을 만기연장하려고 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대출을 받은 후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강사를 시작하면서 연장자격이 안되는 것이다.

문씨는 "아기자기한 새 가구로 신혼 기분을 내고 싶지만 앞으로의 생활자금 걱정에 자취방에서 쓰던 가구를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면서 "남자친구도 혼수가구 대신 현금 지참을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스튜디오 웨딩촬영도 비용이 250만원 든다는 말을 듣고 남자친구와 상의해 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자란 전세비 걱정에 점심 값을 아끼려고 도시락을 들고 다닐 정도라고 전했다. 요즘 대학 직원들도 식사 값을 아끼기 위해 학교에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귀띔했다.

■ 연말 구조조정 얘기 나올까봐 조마조마

고 1년, 중 2년생 자녀 둘을 둔 이모씨(51·서울 반포동)는 요즘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하반기부터 비상경영 체제로 들어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이씨는 "아직 구조조정 얘기는 나오고 있지 않지만 지금같은 경제 상황으론 내년 상반기에라도 실시될 것 같아 불안하다. 아이들 뒷바라지가 한참 남아있는 데 큰 걱정이다. 은퇴 준비는 엄두도 못낸다"고 말했다.

이씨는 주택담보대출 6000만원과 마이너스 통장으로 항상 3000만~4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아내 모르게 2년 전 마이너스통장까지 끌어다가 5000만원가량 주식에 투자한 그는 "당시 코스피가 2100선이었고 분위기도 괜찮아 30~40% 수익률을 기대했는데 최근 코스피가 1900선 아래로 떨어졌고 실제 수익률은 이보다 더 떨어져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에 집이 있는 그는 자녀들 교육문제로 강남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 전셋값 부담으로 지난해말 40평대에서 32평으로 이미 아파트를 줄여 놓은 상태다. 그는 "그동안 씀씀이를 줄여와 이제 줄일 곳은 아이들 학원비밖에 없는데…"라고 말했다.

< 김희연·김경학 기자 eggh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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