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TALK] 甲이 乙에게 부탁하는 요즘 "한번 만나줘요, 돈 좀 꿔가세요"

김기홍 기자 2012. 11. 2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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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그룹 계열사의 재무팀장 A씨는 요즘 금융권으로부터 "제발 한 번만 만나달라"는 전화를 수시로 받습니다. 3대 조선업체의 재무팀 소속 B 부장도 하루가 멀다하고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대부분 "최대한 조건을 맞춰 줄 테니 우리 은행에서 돈을 빌려가 달라"거나 "유리한 조건을 제시할 테니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입니다.

과거 대기업 재무팀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은행 등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전직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IMF 외환위기 직후 은행장을 만나서 운영자금 대출을 부탁하려고 매일 아침 8시부터 은행 앞에 쪼그리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금융권 사람들이 대기업 재무팀 직원들을 만나기 위해 애걸하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자금 시장에서 수십 년 동안 지속되던 금융권과 기업의 갑(甲), 을(乙) 관계가 '기업 갑, 금융권 을'로 역전된 것입니다.

금융권이 체면을 버리고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저금리 환경이 지속되고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은행은 요즘 마땅히 돈을 빌려줄 곳이 없습니다. 경기 불확성이 커지면서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안전한 대출처는 우량 대기업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대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 하지 않습니다. 신용등급 AA 이상인 우량 기업의 회사채 발행 금리는 3% 중반대 이하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3% 후반대 이자를 물면서 은행 돈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증권사도 회사채 발행 수수료가 새롭게 주요 수입원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수수료 수입이 적지 않던 인수·합병(M&A) 거래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관계자는 "콧대 높던 은행 간부들이 고개를 숙이는 걸 보면 세상이 많이 변했다"면서도 "언제 상황이 또 역전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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