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갑 국민연금 화났다" 골드만삭스 초긴장

조선비즈

"이건 도리가 아니죠."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지난 13일 예고 없이 한국에서 자산운용 사업부문을 철수하기로 한 데 대한 의견을 묻자 전광우<;사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던 골드만삭스 직원 40명 중 대부분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일부 직원만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 자산운용본부로 옮겼다.

골드만삭스의 한국 철수 소식이 보도된 지난 13일 그는 마침 미국을 방문 중이었고, 골드만삭스 관계자들과 점심 약속이 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발끈했던 것이다. 그는 아침에 뉴스를 보자마자점심 약속을 취소했다. 골드만삭스에서 당황하며 면담을 요청했지만 이마저 거절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월 한국에 두었던 채권매매 사업부문도 싱가포르로 옮긴 바 있다.

전 이사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민연금 자산 운용을 위탁하는 해외 금융회사를 선정할 때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기여도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를 지시했다. 상황이 일파만파로 확산되자 골드만삭스는 그룹 부회장급 인사를 26일 서울로 보내 '글로벌 수퍼 갑(甲)'인 국민연금 달래기에 나설 예정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시장에서 단물만 빨아 먹으려는 외국계 금융사들의 행태를 뜯어고치자는 차원의 조치"라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2007년 맥쿼리IMM자산운용을 인수해 국내 자산운용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2011년까지 4년 연속으로 적자를 봤다. 2008년 94억원 적자에 이어 2009년 70억원, 2010년 74억원, 2011년 7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로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문을 접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내부 판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외국계 투자은행들은 자산 운용에선 손해를 보더라도 국내 금융시장에서 채권 발행이나 기업 인수·합병(M&A)을 자문하고 중개하는 투자은행(IB) 업무를 통해서는 상당한 이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투자은행과 증권업무는 서울 사무소를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사들이 운용업무를 '돈이 되는' 투자은행 업무의 징검다리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금융사는 국내 금융회사와 합작해 자산운용사를 세운 뒤에도 자산운용에는 관심이 적고, 이를 미끼로 국내 금융회사의 외화채권 발행을 중개하거나, 인수·합병 자문에 적극 참여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앞으로 자산 운용 업무를 외부 회사에 위탁할 때 선정 기준에 한국에 사무소가 있는지, 직원을 얼마나 채용하는지, 국내 금융시장에 기여도가 있는지에 대한 가점을 높일 예정이다. 전광우 이사장은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우리 금융시장에 기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야 한다"며 "우리(국민연금)와 일하려면 그런 자세가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번에 확실히 줄 계획"이라고 했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아무리 수퍼 갑이라고 해도 선진 금융 노하우와 외국 투자자들과의 강한 스킨십을 가진 외국계 금융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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