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로또 1등 당첨자들, 남몰래 만나는 이유가..

조인경 2012. 11.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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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 사실 터놓을 곳 없으니 당사자들끼리 비밀 공유목돈은 적금에 묶어두고 창업준비·노후대책 '열공'

[아시아경제 조인경 기자]이른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6일 저녁, 서울 역삼동의 한 식당에 로또 복권 1등 당첨자 세 사람이 모였다. 저녁이나 한 끼 함께 한다고 했지만 기대와 달리 식탁은 너무나 평범했다. 녹두전과 도토리묵 한 접시, 막걸리 한 병을 나눠 먹고 9000원짜리 들깨순두부찌개에 밥을 비벼 먹는 자리에 기자까지 숟가락을 얹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매우 조심스러웠다. 넓은 식당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종업원이 음식을 내오거나 다른 손님이 지나갈 때면 대화는 잠시 끊겼다. '로또 1등', '당첨금 10억원' 같은 말은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다. 커피전문점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 일부러 흡연실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이 이곳에 모인 사실은 당사자들과 기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가족에게조차 로또 1등 당첨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들이 왜 굳이 한자리에 모였을까?

◆ 술집 서빙부터 대리운전까지 안 해 본 일 없는 사연들= 세 사람은 모두 올해 로또 1등에 당첨됐다. 한모(40, 경기도)씨는 설 명절 직전인 1월21일에 당첨금 19억2000만원을, 홍모(27, 경상도)씨는 3월31일에 16억4000만원을, 이모(45, 충청도)씨는 지난달 27일에 26억6000만원을 각각 손에 쥐었다.

한씨와 홍씨는 경제적으로 한참을 힘들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긋지긋하게'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다. 한씨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버지의 사업이 크게 잘못돼 식구들이 모두 빚더미에 앉았다. 디자인을 공부한 그였지만 현장 근무를 자처해야 했다. 일당을 후하게 쳐준다고 하면 밤샘 작업도,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업계에서 "한씨에게 일을 맡기면 틀림 없이 해낸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제법 자리를 잡았다.

한씨는 "예전엔 돈 때문에 해야 했던 일도 있었지만 로또 1등에 당첨된 후에는 진짜 내 꿈을 실현할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대학생인 홍씨 역시 건강이 좋지 않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휴학을 반복해야 했다. 호프집 서빙부터 대리운전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고, 사실상 가장이다 보니 어린 나이에 일찍 철이 들었다. 세금을 제외한 당첨금 11억여원 중 제일 급한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남은 10억원을 고스란히 적금통장에 넣어뒀다. 여기에서 다달이 나오는 이자가 280만원인데, 어머니에게 생활비로 100만원을 내놓고, 또 다른 정기적금에 100만원을 붓고, 학비와 용돈으로 80만원을 쓰고 있다.

매달 한 기부단체에 보내는 10만원 남짓한 후원금도 용돈에서 나간다. 홍씨는 "형님(한씨)과 뭔가 좋은 일을 해보자고 머리를 맞댄 적이 있는데, 결국 기부단체에 조금씩 보태며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씨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죽다 살아났다. 신체 일부에 장애가 남은 이씨 본인은 물론 아내도 병간호 때문에 일을 그만둬야 했다. 그럭저럭 서민으로 살다가 갑자기 수입이 뚝 끊긴 후의 삶은 그야말로 막막했다. "마트에서 먹을 것 하나를 사더라도 매일 먹던 것보다 한 단계 낮은 것, 저렴한 걸로 고르게 되는데… 그 기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 이씨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대박' … 달라진 건 자동차 뿐?

= 갑자기 통장에 10억~20억원이 꽂히면 무슨 생각이 들까? 세 사람 모두 제일 먼저 빚부터 갚았다. 이씨는 "당첨 전에는 몰랐는데 내가 치료받는 동안 아내가 소소하게 친척들에게 돈을 빌린 모양이었다"며 "사고 보상금을 받았다고 둘러대며 모두 돌려줬다"고 말했다.

한씨와 이씨는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을 마련했다. 한씨와 홍씨는 그동안 돈이 없어 차일피일 미뤄뒀던 치과 임플란트 시술도 받았다.

한씨는 "통장에 돈이 들어 있으니 마음이 든든해서인지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며 웃어 보였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겨도 돈만 내면 언제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당장 사고 싶다는 욕심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한씨가 이날 입고 나온 양복은 소위 '브랜드도 없는' 한 벌에 5만원짜리였다.

홍씨는 로또 1등에 당첨된 후 브랜드 청바지 두 벌을 산 게 사치라면 사치였다. 젊은 나이인 만큼 사고 싶은 게 없을 리 만무하지만 오히려 돈을 막 써대다 탕진하지는 않을까 조심, 또 조심하고 있다. 큰형뻘 되는 한씨가 옆에서 "잘하고 있다"고 어깨를 다독였다.

이씨는 그나마 아내가 돈 쓰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20년 넘게 살면서 변변히 해 준 것도 없기에 "맘껏 써봐라" 호기를 부렸는데 아내 역시 고장난 냉장고를 바꾸고 대형 TV를 들여놓고 새로 이사갈 집에 넣을 가구를 보러 다니느라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있다. 이씨를 위해 뭘 했느냐는 물음에 "아내가 이걸 사주더라"며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 한 개를 꺼내보였다. 한씨가 옆에서 "그거 한 3만~4만원 할거예요"라고 거들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돈을 좀 썼다고 자랑하는 건 자가용이었다. 한씨는 "현장 작업이 많아 중고 카니발을 몰았는데, 로또 당첨 이후 어느 날 딱 차가 멈춰서는 바람에 똑같은 카니발을 구입했다"고 말했다. 새 차를 뽑고 풀 옵션을 다는데 대략 3600만원이 들었다.

이씨 역시 준대형 자가용 한 대를 주문해 놓고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 나이도 있고 작년 사고 경험 때문인지 좀 좋은 것으로 고르게 됐다. "외제차는 관심도 없고, 그 정도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닌 거 같아서…"

홍씨는 올해가 가기 전 소형차를 한 대 사려고 한다. 유지비까지 고려해 디젤차를 보고 있는데, 사실 취직도 하기 전에 차부터 뽑아도 되나 아직 망설이고 있다.

◆ 부모에게도 안알려 … 그들의 '걱정거리'

= 세 사람 모두 로또 1등 당첨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일부였다. 이씨는 당첨 사실을 아내와 함께 확인했다. 대학생 아들은 모르고 있고 굳이 알릴 생각도 없다.

홍씨는 함께 사는 어머니와 누나에게 당첨 사실을 털어놨다. 홍씨가 빚도 갚고 공과금 정도의 생활비도 대기로 한 터라 모녀는 나머지 당첨금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아직 미혼인 한씨는 당첨 사실을 부모님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선을 보거나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상대 여성에게 로또 당첨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만일 로또 1등 당첨자라는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세 사람 모두 "일단 잠시 외국으로 뜨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씨는 "많다면 많은 돈이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보다 부자들도 많은데, 괜히 소문이 나면 여기저기 인심 써야 하고 감당 못할 일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고백했다. 홍씨와 이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이렇게 함께 모여 앉은 건 왜일까? 한씨는 "로또 1등 당첨 사실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 보니 같은 1등 끼리만이라도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사실, '나 1등이다' 자랑도 하고 싶고 얘기도 하고 싶은데 말할 곳이 없잖아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탁 터놓고 속풀이 좀 하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져요."

홍씨는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재테크며, 돈 잘 쓰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저는 아직 젊잖아요. 취직해서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 남은 돈은 노후를 위해 잘 준비해 둬야겠다 싶은데, 방법은 모르겠고… 장사를 하려 해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아요."

실제 이날 대화 중에는 최근 인기가 많다는 한 외식 프랜차이즈부터 팬션 사업까지 다양한 창업 아이템이 화두에 올랐다. "거기는 한 3억원 든다고 하던데요", "프리미엄이 너무 붙었더라고요", "**카페는 이제 한물 간 거 같아요". 각자 그동안 많이 알아본 듯 여러 가지 정보들이 쏟아졌다.

이씨의 소감도 비슷했다. "아직 1등 당첨된 지 한 달도 채 안돼 실감도 안 나고 뭣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오늘 두 사람 만나고 보니 제법 그림이 그려지네요. 행운을 잡았으니 이제 남들 보란 듯 잘 살아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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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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