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의 덫에 걸린 '위기의 주부' 17만명 넘는다

2012. 10. 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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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주부 김모(38)씨는 어린 세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남편 몰래 받은 대부업체 대출금 때문이었다. 그는 100만∼200만원씩 수차례 빌려 썼다가 이를 갚지 못하고 빚 독촉에 시달리자 이런 비극적인 결정을 했던 것이다.

18만명에 육박하는 주부가 김씨처럼 '고리 대부업의 덫'에 빠져 있다. 빚 갚을 능력이 있는지 묻지도 않고 돈을 빌려주는 탓에 '주부 대출'의 연체율은 1년 반 만에 2배로 뛰었다.

금융감독원은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노회찬 진보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대부업계 상위 10개 업체에서 돈을 빌린 주부가 지난 6월 말 기준 17만4000명이라고 밝혔다. 주부 대출은 2010년 말 13만1000명에서 지난해 6월 말 15만6000명, 지난해 12월 말 17만명 등 계속 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한 대부업체만 1만1619곳(8월 말 기준)에 이르기 때문에 실제 대출을 받은 주부는 2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상위 10개 대부업체의 '주부 대출' 잔액은 4792억원으로 1인당 275만원꼴이었다. 1인당 대출액은 2010년 말 326만원, 지난해 말 301만원 등 300만원을 웃돌다가 올해 300만원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금감원이 지난해 11월 과잉대부금액 기준을 5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대부업체가 이 기준금액을 넘겨 돈을 빌려주려면 대출자의 소득과 재산, 부채 등을 증빙하는 자료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대부업체들은 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1인당 대출액을 줄이는 대신 건수를 늘려 대출 규모를 유지한 것이다.

전업주부는 소득이 없고 금융권 거래 실적도 적어 신용등급이 낮다. 이 때문에 연 20∼30%대로 높은 이자를 물더라도 은행권보다 문턱이 낮은 대부업체의 유혹에 쉽게 걸려든다. 대부분의 대부업체가 이를 노리고 여성 전문 대출 등을 내걸고 주부 고객 유인에 나서고 있다.

대부업체는 남편이 건강보험에 가입만 돼 있으면 거리낌 없이 주부에게 돈을 빌려주고 있다. 남편이 직업만 있으면 대출자의 경제력은 상관하지 않는 일종의 '묻지 마 대출'인 셈이다.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주부 대출 연체율은 2010년 말 6.3%에서 지난해 6월 말 7.1%, 12월 말 9.3%로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 6월 말에는 12.2%로 껑충 뛰었다. 6월 말 기준 주부 대출 연체자는 2만880명으로 추정된다.

노회찬 의원은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높은 연체료를 부과하는 건 약탈적 대출"이라며 "과잉 대부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 대출 조건을 엄격히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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