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힘, 작지만 강한 '히든 챔피언'

2012. 9. 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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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터뷰/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 빈프리트 베버 교수

전문기술 탄탄한 1600개 '강소기업'이 수출 25% 견인

'인턴-숙련공-명장' 직업훈련시스템 경쟁력 떠받쳐

대부분 소유-경영 분리…가족승계 땐 철저한 검증

세계 2~3위의 수출대국. 재정위기에 흔들리는 유럽연합(EU)의 구원투수. 유럽 주요국들이 모두 두자리수의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데도 나홀로 5%대의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는 고용안정국. 독일이 이처럼 강력하고, 안정된 경제체제를 지속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독일이 견조한 경제성장을 유지하고, 2008년 세계 경제위기에서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빨리 극복한 비결은 중소기업의 경쟁력 때문이다. 특히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강하고 작은' 1600여개 '히든 챔피언'이 큰 역할을 한다."

독일 만하임응용과학대학의 빈프리드 베버 교수(55살·경영학)는 지난 14일 서울 반포동 카톨릭대학에서 < 한겨레 > 와 가진 인터뷰에서 독일경제의 성공비결을 '골리앗을 이기는 다윗'처럼 대기업보다 오히려 생산성이 높은 중소기업에서 찾았다. 베버 교수는 카톨릭대 피터드러커경영센터(센터장 문국현)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베버 교수는 "히든 챔피언들은 가족소유기업이 많지만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소유자는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는 일종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고, 전문경영인도 20~30년씩 장수하는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고교생들이 졸업한 뒤 기업의 인턴-숙련 기능공-명장으로 커가는 독일의 독특한 직업훈련시스템과, 직장에 다니면서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평생학습시스템을 또 다른 성공비결로 꼽았다.

-독일이 경제강국인 비결을 중소기업에서 찾았는데, 독일 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위상은?

=독일에는 다임러·지멘스 등과 같이 평판 좋은 대기업도 많지만, 전체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직전 20년 간 견조한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중소기업 때문이다. 독일은 소수의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독일의 전체 사업체 중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3%이고, 근로자 비중은 50%를 넘는다(한국의 중소기업 사업체수 비중은 99%, 근로자는 88%이다).

-한국이 오랫동안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을 고수해온 것과 대비된다.

=독일도 일반 시민들에게 물으면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독일경제를 깊이 연구한 사람들은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한다. 독일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2년도 안돼 종전 수준의 성장을 회복했다(독일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로,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9%를 훨씬 상회한다).

-히든 챔피언의 특징은 무엇인가

=주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유형의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가족소유기업이 많고, 경영자들의 리더십이 지속적이며, 고성과를 추구하는 기업문화가 특징이다. 직업훈련과, 평생학습체계, 산학연계직업훈련체계가 뿌리내려 있다, 일자리나누기와 사회책임경영, 혁신 및 기업가정신도 특징이다. 회사설립 초기부터 수출에 주력해 세계화에 앞서 있고, 유사업종의 기업들이 한 지역에 밀집해있는 클러스터와 중소기업 간 협력 네트워킹이 발전돼 있다.

-히든 챔피언과 대기업과의 차이점은?

=다임러·지멘스 같은 대기업들은 규모가 크고, 사업영역도 다각화되어 있다. 지배구조도 훨씬 다양하다. 히든 챔피언들은 대부분 비상장으로, 소도시나 농촌지역을 근거지로 하는 반면 대기업은 대도시에 근거한 상장기업인 경우가 많다.

-'히든 챔피언'의 역사는 얼마나 됐나.

=회사가 설립된지 얼마 안된 곳부터, 7~8세대까지 이어온 곳까지 다양한데, 대략 50~6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래된 곳은 지금과 같은 독일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한 19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설립됐는데, 1950년대 들어 일본의 급부상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수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중저가 위주의 일본제품과 차별화해서 제품의 특화와 고급화에 성공해 틈새시장을 장악한 중소기업들이 히든 챔피언으로 성장했다.

-히든 챔피언이 가족소유가 많은데도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게 흥미롭다. 흔히 '경영능력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독일에서도 가족소유기업이 3대 정도 가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가족간 분쟁이 원인이 된다. 그래서 중소기업끼리 서로 네크워크를 구성해서 지원하고 협력한다. 가족분쟁은 어떻게 해결하고, 경영승계 규칙은 어떻게 정하는지 등에 대해 서로 경험을 공유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은 소유자가 직접 경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히든 챔피언 전체로 보면 소유-경영이 분리된 기업이 많다. 소유자는 주로 뒤에서 회사의 가치를 유지하고, 외부 압력에 대해 바람막이 역할을 하면서 전문경영인들이 자율성을 갖고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히든 챔피언들의 경영승계는 어떻게 이뤄지나.

=독일 속담에 1세대는 창업을 하고, 2세대는 현상유지를 하고, 3세대는 말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엄격한 경영승계 프로그램은 히든 챔피언의 특성 중 하나다. 소유자는 2·3세들이 다른 회사에서 5~6년씩 근무하며 경험을 쌓도록 한다. 그 뒤에는 회사에 들어와서 신규사업 같은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맡는다. 이런 과정을 5~10년 정도 거치며 자질과 능력을 테스트해서 경영승계 여부를 결정한다. 평가가 않좋은데도 2·3세라고 해서 무조건 승계하는 일은 없다. 대안은 1차적으로 가족 안에서 찾고, 그래도 없으면 히든 챔피언을 맡은 경험이 있는 능력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한다. 이 경우 소유자는 전문경영인을 동업자 대우를 해주고, 일종의 파트너쉽을 이룬다.

-히든 챔피언의 경영자들이 장수한다고 했는데, 한국에서는 전문경영인의 경우 불과 몇년을 버티기가 힘든데.

=전문경영인도 한번 최고경영자가 되면 대체로 20~30년씩 한다. 독일 기업들의 이직률이 평균 7% 정도인데, 히든 챔피언은 2%에 불과하다.

-2008년 경제위기는 어떻게 극복했나?

=일부 상장 대기업들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한 곳들도 있다. 하지만 히든 챔피언 등 중소기업들은 일감이 주는데도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 않았다. 경제위기 이후 독일의 실업률이 크게 높아지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고용유지를 위한 정부의 지원정책도 큰 도움이 됐다. 메르켈 정부와 사민당, 기업은 대타협을 통해 고용유지를 하는 기업에는 근로자 급여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특별조처를 18개월간 실시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총 50억 유로(한화 약 7조2천억원)를 집행했다. 노동자들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일부 급여삭감을 감수했다. 이렇게 해서 숙련 노동자들의 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출이 다시 늘어나자 빠른 경제회복을 이룰 수 있었다. 이는 독일의 오랜 전통으로 과거 1980, 90년대 위기 때도 비슷한 노력들이 있었다.

-히든 챔피언의 특징으로 교육과 직업훈련체계를 꼽았는데

=독일경제의 성공 비결은 독특한 직업훈련에 있다. 그것이 독일모델의 핵심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청년실업률이 수십%에 달하는 상황인데도, 독일은 단 5%에 불과하다. 독일의 대학진학률은 50%가 채 안된다. 독일 학생들은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다. 그들은 10년간의 교육과정을 끝내면 16~17살의 어린 나이에 히든 챔피언 회사에 들어가 3년간 직업훈련을 받는다. 일종의 견습과정 기간 중에는 회사에서 3~3.5일 일하고, 2~2.5일은 이론과 실무 훈련을 받는다. 그 다음에는 몇년 더 숙련 기능공 직업훈련 과정을 거쳐 해당 분야의 명장(마이스터)으로 성장한다.

-한국에서는 대학진학률이 80%를 넘는다. 학력차가 승진, 급여 차별은 물론 심지어 배우자 선정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독일신문에서 기획기사를 다뤘다. 두명의 고교 졸업생 중에서 하나는 직업훈련 과정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는 대학진학을 선택했는데, 10년 뒤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전자는 값비싼 포르쉐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후자는 20년 된 녹슨 폭스바겐차를 타고 다닌다고 하더라. 그러니 어른들도 자식들에게 책 대신 일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히든 챔피언들의 평생학습체계는 어떤가.

=명장과정 이후에도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3개월은 회사에서 일하고 3개월은 대학에서 공부한다. 학비는 모두 회사에서 부담한다. 이렇게 2~3년 지나면 대학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다. 또 독일기업에는 다양한 평생학습 지원제도가 있다. 일 예로 법으로 1년에 최소 1주 이상을 평생학습을 위해 쓸 수 있도록 보장하는데,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한다. 많을 사람들이 이런 평생학습을 통해 석사학위를 취득한다.

-2010년 사회책임의 국제표준인 'ISO 26000' 출범 이후 사회책임경영의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봤는데, 실제로는 어떤가.

=19세기말 독일의 전기·전자기기 및 자동차부품회사인 보쉬를 창립한 로버트 보쉬는 '내가 돈이 많아 임금을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많기 주기 때문에 돈이 많은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는 생전에 직원들에게 주거시설을 지어주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도록 근무체계를 개선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통합 직업훈련을 시작하고, 자산의 대부분을 재단에 기부하는 등 다양한 사회책임경영으로 국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보쉬는 독일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생산성이 많이 뒤떨어진다. 1인당 부가가치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은 어떤가.

=히든 챔피언의 생산성은 대기업보다 더 높다는 평가다. 일 예로 특허 1개를 개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의 경우 히든 챔피언이 대기업의 5분의 1 밖에 안된다. 자원은 부족하지만 동기부여가 강하고, 최선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며, 대기업에서 2~3명이 할 일을 히든 챔피언에서는 한명이 담당하는 등 훨씬 더 유연하고 계획적이며 조직적이다.

-한국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은 것은 대기업이 납품단가 인하, 기술탈취 등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양극화 심화를 통해 사회통합을 저해하기 때문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어떤가.

=독일에서도 과거 유사사례가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 입장에서도 중소 납품업체와 지속가능한 공급망 네트웍을 구축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원가를 줄이기 위해 납품업체들을 압박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해법이 아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일정 수준 수익률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거래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원가 대신 품질을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이 부분별한 사업영역 확장으로 설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을 정해 대기업들의 진출을 막는 방안에 대한 생각은

=대기업들의 중소기업 영역 침해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유사사례가 있다. 그래서 일정 산업의 경우 중소기업만 할 수 있도록 룰을 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의 노동계는 전체 종사자의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으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급여차별을 받고, 극심한 고용불안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는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나?

=동일노동을 하는데도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문제는 독일 중소기업이나 히든 챔피언보다 대기업에서 더 심하다. 금속노조의 경우 경영자쪽과 비정규직 비율이나 임금차별이 일정수준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협약을 맺고 있다.

히든 챔피언

해당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순위가 1~3위이고, 수출을 위주로 하며, 연 매출 규모가 30억유로(한화 4조 3000억원) 이내로서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말한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만든 용어로, 자신의 저서 '히든 챔피언'에서 소개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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