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재벌 규제 논쟁이 경제민주화 개념 흐려"

입력 2012. 8. 21. 19:21 수정 2012. 8. 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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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동환 기자]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21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강연을 하고 있다.

ⓒ 김동환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재벌 지배구조 개선 문제가 아닙니다.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게 핵심이지요. 재벌은 단순히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더 큰 민주적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재벌 총수 일가 공격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치권에 일침을 날렸다. 장 교수는 21일 오후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열린 강의에서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국가를 만드는 것인데 정치권에서는 재벌개혁에만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 핵심은 재벌 규제보다 보편적 복지국가"

이날 강연은 대선 경선후보로 나선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의 싱크탱크 격인 '담쟁이포럼' 주최로 열렸다. 장 교수 강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강연장에는 문 의원을 비롯한 민주통합당 관련 인사들과 시민 100여 명이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장 교수의 강연 내용은 문 의원과 민주통합당이 그간 주장해왔던 재벌개혁 중심 경제민주화와는 정반대였다.

강연 주제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 장 교수의 주장은 간명했다. 한국 경제가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고 그 방향은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설명에 앞서 현재 한국의 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로 강연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8명.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장 교수는 "15년 전인 1995년까지만 해도 한국 자살률은 10만 명당 10명 정도였다"면서 "상황이 이렇게 된 원인은 고용 불안과 복지 부족"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를 입증하는 자료로 현재 전체 고용자의 25%에 달하는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과 GDP 대비 10% 수준인 정부의 복지지출을 지적했다. 그는 "자영업 비율은 OECD 평균의 2배이고 복지지출 수준은 OECD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멕시코보다 약간 높다"고 설명했다.

고용불안이 심하다 보니 자영업 비율이 늘었고 정부의 복지지출이 적으니 복지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이렇게 불안하고 복지 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한 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기때문에 국민이 안전제일주의에 빠지고 보수화된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사회가 고령화되고 산업 구조도 점점 오랜 훈련을 요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이런 사회에서는 복지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테니 빠른 시일 내에 보편적 복지제도를 잘 정비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복지가 잘 되어있으면 해고율이 낮고 경제가 활력을 얻어서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핀란드 같은 복지국가들이 미국보다 성장률이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 지배구조 규제, 직접적인 경제민주화로 볼 수 없어"

문재인 민주통합당 의원과 장하준 교수가 강연에 앞서 나란히 앉아있다.

ⓒ 김동환

장 교수는 강연 중반까지 보편적 복지를 조속히 시행해야 하는 근거들을 제시한 후에야 경제민주화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렇게 시민권에 기초한 보편적 복지국가야말로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시장주의 원리는 '1원 1표'"라며 "이걸 민주주의의 원리인 '1인 1표'로 견제하고 제약하자는 게 경제민주화"라고 설명했다. 경제 구조 자체를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수정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담론이 제기되고 있으니 현재 한국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불안을 해결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국가로 목표를 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또 장 교수는 "물론 복지국가만 한다고 경제민주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여기에 몇 개의 단서를 꼽았다. 그는 자본시장 통제와 전반적인 노동권 강화, 노조와 협동조합 등을 통한 작은 경제주체들의 '민주적 담합' 등을 경제민주화의 한 요소로 지목했다.

장 교수는 이날 최근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핵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재벌 규제 문제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장 교수는 "현재 재벌 규제 논의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치중해있다"며 "그것은 '1원 1표'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자는 주주들 간의 싸움에 불과할 뿐 경제민주화라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벌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라 그쪽으로 초점을 잡으면 (경제민주화의) 개념이 흐려진다"면서 "단순히 지배구조 규제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사회 전체가 재벌을 통제할 수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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