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시 누가 죽였나] 청산된 무안 기업도시 현장 리포트, 말만 무성했던 7년..뒤처리는 누가?

2012. 8. 1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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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 전라남도 무안을 찾았다. 무안역에서 버스를 타고 10여 분을 달리자 일대에서 유일한 번화가라는 무안 읍내가 보인다. 번화가라고 하기엔 뭔가 썰렁한 분위기다. 거리나 상점도 한산해 사람 찾기가 어렵다. 사람이 드나드는 버스 정류장 곳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언뜻 보아도 70~80대 노인층이다. 마을은 전반적으로 조용했다.

한 공인중개소를 방문했다. 마을 터줏대감으로 보이는 이들이 앉아 있다. 기업도시 얘기를 꺼내자 "사기 당했다"며 언성이 높아진다. 이유를 묻자 "다 끝났는데 이제 와서 이런 얘길 뭣하러 묻느냐"며 소리를 더 높인다. 기업도시 사업을 총괄한 무안군 기업도시건설지원단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지금 초상집 분위기라 언론 인터뷰를 원하지 않는다"였다. 가는 곳마다 기업도시 얘기를 하면 손사래를 쳤다. 이 조용한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일까.

꿈에 부풀었던 주민들 '탄식'

2005년 7월 무안이 산업교역형 기업도시 후보지로 선정된 여름날 이곳은 축제 분위기였다. 비오는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에선 폭죽이 터졌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고민이 깊던 무안에 기업도시는 성장 동력이자 꿈의 프로젝트였다. 무안 기업도시는 무안군 일대 4032만1000㎡(1220만 평) 규모의 개발 목표를 세우고 야심차게 출발했다. 예상대로라면 전형적인 농어촌에서 국내 유일한 산업교역형 도시로, 생산과 교역이 복합된 한중자유교역도시로 탈바꿈할 것이었다. 6만여 명 인구는 30만 명으로 늘고 차이나시티가 조성될 계획이었다. 방향은 크게 국내 단지와 한중 단지로 나뉘어 추진됐다.

주민들은 기대에 들떴다. 무안읍에 사는 김모(55) 씨는 "당장이라도 기업이 유치되고 병원·학교·공공기관 등이 들어설 것 같은 분위기였다. 꿈이 아무졌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국내 단지 조성을 위해 2005년 출범한 (주)무안기업도시개발은 2009년 자본금 감자를 결의하고 2010년 청산 종결과 등기 폐쇄 과정을 거쳤다.

국내 단지가 2007년 말부터 사실상 중단된 상태로 기대가 크지 않았던 반면 한중 단지는 야심차게 추진된 것으로 알려진다. 2005년 말 (주)한중국제산업단지개발이 설립되고 굵직한 얘기가 오갔다. 민간단체 기업도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박일상 씨는 "중국 정부와 기업의 핵심 인물들이 30번 넘게 왔다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불과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박 씨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곧 외국자본이 들어온다고 해서 기대감에 부풀었다. '3월 말에 돈이 들어온다', '6월 말에 들어온다'하면서 12월 말까지 기대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기다림 끝에 돌아온 결론은 '청산'이었다. 무안군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 한중미래도시개발(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지분 51%를 가진 중국 측이 청산을 의결, 후속 조치에 들어가 지난 6월 27일 주주총회에서 법인의 채권 변제금과 1차 잔여재산 배분 금액을 확정짓고 잔여재산의 배분이 이뤄졌다. 7월 6일 김철수 무안군수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무안기업도시 청산 절차를 공식화하면서 2005년 이후 7년을 끌어왔던 무안 기업도시 사업은 무산됐다.

기업도시 부지는 읍내에서도 차로 3km를 더 달린 곳에 있었다. '젊은 무안'으로 가는 숙원 사업이었다던 그곳은 어떤 모습일까. 기자와 동행한 무안읍 주민 김영상(56) 씨가 "여기다"라고 말한 장소엔 황량한 벌판 외에 보이는 게 없었다. 청계면·현경면·망원면·무안읍 등 4개 읍면으로 둘러싸인 502만1000㎡ 규모의 부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사람 한 명을 볼 수 없었다. 벼와 소 사료용으로 쓰인다는 잡초만 무성했다. 김 씨는 "삽 한 번 뜨지 않았으니 황량한 게 당연하다"고 언급했다. 10년 가까이 사람 손을 타지 않은 나무들과 빈 축사 등 보상금을 노리고 들어왔다가 나간 버려진 자리도 보였다.

외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땅값이 들썩이면서 3.3㎡당 3만~4만 원 하던 땅값은 한때 12만 원 이상으로 뛰었다고 한다. 농지 임대료 상승을 놓고 구민 간 승강이도 벌어졌다. 김 씨는 "여기는 토지를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이 많다. 오랜 기간 농사짓던 곳에서 갑자기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하니 조용했던 마을에서 불신도 생겼다"고 전한다.

무안에서 처음 기업도시 얘기가 나온 것은 2003년 무렵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기업도시를 놓고 청사진을 얘기했지만 정작 그 사이 계획이 실천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또 다른 주민 강모(48) 씨는 "기업이 유치되기는커녕 주민 생활 여건과 관계된 복지·교육 시설 등도 건물 하나 세워지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안 기업도시 사업은 한마디로 7년간 말만 무성했던 것. 주민들이 제기한 큰 불만 중 하나는 "기업도시에 신경 쓰느라 정작 세금이 쓰여야 할 곳에 쓰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금이 모이지 않아서인 것으로 지적된다. 특수목적법인 한중미래도시개발 지분은 중국 51%와 국내 49%로 구성돼 있다. 중국 측은 중국 정부 승인을 받아 중경지산집단과 광화집단이 참여했고 일찌감치 예치금을 완납한 상태였다. 문제는 국내 지분이 쉽사리 모이지 않았던 것. 핵심 투자 기업인 프라임그룹이 검찰 수사 등의 여파로 중도 하차하고 대체 그룹을 찾지 못하면서 휘청거렸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투자 유치는 더욱 묘연해졌고 자본금 감자와 개발계획 변경 승인을 받는 등 나름의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중국에서 발을 빼기로 하면서 사업이 무산됐다.

오랜 기간 재산권 행사 못해

자금 등의 문제는 오랜 기간 지적돼 왔지만 지역 선거철마다 기업 도시가 공약으로 나오면서 기대와 거품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업을 총괄했던 무안군 기업도시건설지원단 직원은 40명에서 현재 7명으로 축소됐다. 청산 이후 후속 작업과 주민 설명회 등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올 연말 사라질 예정이다. 어렵게 전화 통화가 닿은 지원단의 한 관계자는 "할 말이 없지만 7년간 기업들을 찾아다니는 등 백방으로 뛰었다.

정부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일개 지자체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라고 읊조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역 균형 발전 목적'으로 시작된 기업도시 사업이지만 정작 지역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구조였고 지역이 낙후돼 있는 상태에서 청사진 제시와 홍보만으로는 기업을 유인할 수 없었다. 기업 유치를 위해 '인프라 조성' 등을 요구해도 선결 조건은 '기업 유치'였다.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대두됐다.

기업도시 청산 종결 이후 무안은 지금 '책임론 공방'이라는 후유증을 앓고 있다. 기자가 만난 주민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 피해는 부지 일대가 개발행위제한구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오랜 기간 재산권 행사를 못했다는 것. 공인중개사 박모(50) 씨는 "이제 와서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기업도시 전담 사무실의 그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의심이 가고 화가 난다"고 했다.

기업도시로 인해 무안군이 손해 본 액수는 20억 원 정도다. 하지만 한중산단 법인이 청산되면서 두산중공업 등이 손실금 지급을 놓고 무안군에 법정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여 앞으로 얼마의 손해가 더 날지는 알 수 없다.

취재를 마치고 목포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40여 분 달리는 길에 문득 30대로 보이는 두 주민의 대화가 안타깝게 떠올랐다.

"나는 안 될 줄 알았어. 무안공항도 하루에 한 대만 내린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 갈수록 노인만 남게 될 거야. 젊은 사람들은 돈 벌면 다 떠나지."

오랜 기간 기다림이 가져다준 결과는 실망감을 넘어선 삶의 터전에 대한 무력감으로 보였다.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피해가 아닐까.

무안=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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