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택배기사가 서러운 까닭은
[아시아경제 이현정 기자]#.3년전 회사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대리운전기사를 하고 있는 이 모씨(35)는 하룻밤 꼬박 뛰어야 3만원 정도만 손에 쥘 수 있다. 이씨는 야간에 취객을 상대로 하는 업무의 특성상 수면장애, 시력장애 등의 보이지 않는 건강문제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가끔 폭행의 위험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나 대리운전사는 손님을 모시고 가다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1차 보상은 손님차량보험, 2차 보상은 대리기사 상해보험으로 처리돼 치료기간 동안 생계대책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아 매일 외줄타는 기분이다.
#.지난해 겨울 택배기사를 시작한 박 모씨(39)는 운전과 무거운 물품의 배송으로 인한 허리통증과 어깨통증, 손목질환 등의 업무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콘베이어벨트에서 해당 구역의 물품을 빼내는 과정에서 손가락이 끼이는 경우도 있고 적재된 화물차량 위에서 내려오다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늘 골절상과 같은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특수근로자'라는 이름으로 이렇다할 만한 산재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리운전사, 퀵서비스 운전사, 간병인, 보험모집인, 애니메이션 작가, AS 기사 등 은 법의 테두리에서 근로자의 지위를 부여 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근로자들이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이 전혀 마련되고 있지 않아
특수근로자란 사용자의 사업에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노무제공 과정에서 사용자의 포괄적인 지휘감독권을 받음에도 독립사업자 형태를 갖추고 있어 노동관계법의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명시된 보험설계사, 레미콘·덤프트럭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 4개 직종 만이 산재보험 가입이 인정되고 있다.
이들은 자영업자와 근로자의 중간적인 위치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특수형태근로자로 분류돼 산업재해의 사각지대에 위치해 있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업의 발달, 고용형태의 다양화로 특수형태근로자가 확산되는 것이 세계적인 현상으로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이후 구조 조정된 조기퇴직자들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유입되는 등 그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8년 노동부 연구용역 보고서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실태 및 다단계구조 집단갈등 관리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택배기사 2만9000명, 간병인 18만8000명, 대리운전기사 8~10만 명, 퀵서비스 10만~13만명 등 8개 업종 종사자 수만 최소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파악된다.
특수형태근로자는 산업현장에서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어떤 노동자적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하면서 이들에 대한 처우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10년간 노사정위원회와 국회 등에서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지만 보험설계사, 레미콘 운전기사, 학습지교사, 골프장경기보조원, 덤프트럭·굴삭기 운전자에게 산재보험을 확대하고 표준계약서 마련 등 불공정 거래를 시정하기 위한 부분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대책의 전부라는 것.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원혜영 의원은 "현재도 국회에는 특수고용직과 관련된 법이 2개 제출된 상태지만 논의만 10년 이상 해왓을 뿐 산업 현장에서는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돼 오고 있다"다. 지적했다.
그는 "이들의 '근로자성'에 대한 법적 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실제 산업 현장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재해에 대한 예방 관리가 필요하며 그 역할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수형태근로자들은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노동강도가 높거나 노동시간이 길며 위험한 직무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재해율이 높을 수 밖에 없어 예방 대책이 시급하다는 설명이다.
원 의원은 "현재 법적으로 개인 사업자로 인정되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정책 지원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산업재해 실태가 어떤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안전관리 보건 대책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근로자에 대한 협의의 의미 규정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형태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안전 관리를 하기 위하여 이들의 산업재해 발생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현정 기자 hjlee303@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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