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없는 시대..'기본소득'은 실업자 생명줄

2009. 4. 13.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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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전환의 시대' 2부 대전환을 읽는 열쇳말

1회 기본소득 제도

'위기'의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싹이 자라나는 무대다. 경제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가운데, 각국에서는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보며 새로운 해법을 찾으려는 움직임 또한 거세다. 자본주의 체제를 특징짓는 분배원리에 대한 고민에서 시장과 국가의 새로운 자리매김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겨레>는 '대전환의 시대' 제1부 기획으로 지난 1월초부터 약 한 달 동안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물음 아래 세계 석학과의 대담을 이어간 데 이어, 이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실험의 현장을 찾아가는 제2부 연재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발전모델의 기본 뼈대를 이뤘던 7개의 열쇳말을 통해 대전환의 싹은 어디서부터 찾을 수 있을지를 독자들과 함께 고민해볼 예정이다. 그 첫번째 시도로 고용과 소득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물으며 사회구성원이면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주자는 기본소득 제도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최근엔 공영방송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로 오르내릴 정도에요."

독일 쾰른의 지역단체에서 일한다는 요한네스 포나더(38)에게 기본소득이란 더는 낯선 단어가 아니다. 그는 "일자리를 지키느냐 나누느냐를 둘러싼 공방과는 무관하게, 무언가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의 싹이 분명 자라고 있다"며 독일 사회를 차츰 달구고 있는 격렬한 논쟁의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2월17일 막을 내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온라인 청원운동'은 최저기준치(5만명)를 훌쩍 넘어서는 성과를 거뒀다. 독일 의회에서는 곧 기본소득 제도 도입에 관한 공식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웃 프랑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올해 초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오는 6월부터 기존의 '극빈층 생활지원금'(RMI)을 '적극적 연대수당'(RSA)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수 성향의 프랑스 정부가 경제위기에 맞서기 위해 나름의 해법으로 내놓은 다소 파격적인 카드다. 지금까지의 생활지원금은 저소득자의 생계를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근로의욕'을 키우는 데 무게를 둔 편이다. 하지만 이제 '지원'에서 '연대' 쪽으로 한걸음 더 옮겨가게 된다.

애초 기본소득은 198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과도한 비용 부담에 허덕이던 복지제도를 수술하는 해법의 하나로 조심스레 논의되기 시작했다. 욜랑 브레송 프랑스 생존소득진흥협회(AIRE) 대표는 "실업인구가 크게 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존 복지제도가 엄청난 재정부담을 안겨 서둘러 해법을 찾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말로 그 배경을 설명했다. 기존의 복잡한 복지전달체계를 대폭 단순화해 불필요한 관리비용을 없애는 대신 그 혜택을 기본소득 형태로 돌려주자는 판단에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일정액의 돈을 손에 쥐어주되, 이제 모든 책임을 정부의 손에서 개인에게로 떠넘기려는 보수·우파의 사회개혁 프로젝트와 한묶음으로 받아들여진 건 이런 배경에서다.

생산-고용-소득 제각각자본주의 뿌리까지 흔들려분배구조 새틀 마련 절실

하지만 최근 유럽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새롭게 논쟁의 한가운데로 등장한 것은 자본주의 위기의 돌파구를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찾아보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부터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각국 기본소득 관련 단체의 연대기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의 필리페 판 빠레이스 공동대표는 "삶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공급(생산)을 늘리는 게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절대과제였다면, 이제부터는 안정적인 수요를 만들어내는 게 관건"이라며 "소비의 선순환구조를 시스템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선 기본소득 제도가 훨씬 효과가 클 것"이라 말했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무엇보다 생산-고용-소득(분배)을 연결짓는 자본주의의 근본질서가 허물어지고 있는 데 주목한다. 파리1대학 산업사회연구소의 카를로 베르첼로네 박사는 "생산기술 발전에 따라 취업유발계수가 갈수록 낮아져, 앞으로는 경기와 무관하게 실업자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지식기반 자본주의 단계에서는 이제 부가 기업이라는 공간 안팎에서, 즉 좁은 의미에서는 생산과정 안팎에서만 창출되고 있어 법적인 고용관계와는 분리된, 새로운 생산-고용-분배 체제의 싹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본소득이야말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구성원 각자가 누리는 하나의 권리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성운동이나 실업자운동, 청년백수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운동과 연대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관심은 자연스레 브라질로 쏠리고 있다. 브라질은 월 소득 137헤알(약 8만원) 이하 극빈층에게 교육비와 식료품비 등을 지원하는 생계지원프로그램인 '볼사파밀리아'를 내년부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시민기본소득' 제도로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입법예고한 상태다. 이미 안정적인 복지제도망이 갖춰진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 기본소득 제도가 본격적인 시행을 앞둔 것이다.

"누구나 삶의 권리 누리도록공평하게 수당 나눠주자"서구 기본 소득제 논의 활발

물론 서구사회에도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있다. 특히 기존 노동운동 진영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독일 공공서비스노조의 정책담당 노베르트 로이터 박사는 "기본소득 제도는 기존의 복지제도가 거둔 성과 자체를 해체하려는 우파의 속임수"일 뿐이라며 "필요한 사람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사회보장 제도를 확충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기본소득 제도를 찬성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인 괴츠 베르너 데엠 회장도 "설령 모든 사람에세 일정 수당을 나눠준다고 해도 기업으로서는 각종 사회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어져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며, 세금 부담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존의 좌·우 구도에 흔들리지 말고 기본소득이 지닌 긍정적 측면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독일 좌파당의 정책보좌관인 로날드 블라쉬케는 "기본소득이야말로 노동력의 부분적인 탈상품화를 가져와 노동자 진영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무기"라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 안전판을 만들어준다는 점에 비춰볼 때,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자리나누기 실험을 진정한 성공으로 이끄는 강력한 견인차 노릇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칼스루에·베를린(독일)·루벵누브(벨기에)·파리(프랑스)/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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