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소비위축·공급과잉 '3재'로 부동산 불패신화 막 내리나

송창섭 기자 2013. 2. 7. 11:5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집값 상승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다. 그만큼 사정이 심각하다는 얘기다. 하우스푸어로 상징되는 가계부채 문제는 이제 한국경제의 목줄을 쥐고 흔들 정도로 커졌다. 수년째 계속된 경기 침체는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까지 바꾸는 모습이다. 인구구조 변화와 소득 감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수익이 나는 곳으로 흐르는 돈의 속성상 패러다임 변화를 살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달라진 주택시장의 흐름에 대해 알아봤다.

인구구조 변화와 소득 감소로 부동산 불패신화가 깨지고 있다. 사진은 하늘에서 내려다 본 대치동 은마아파트 일대.

지난 1월16일 도곡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강남권 아파트값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 간 기자가 인터뷰 의향을 묻자 돌아오는 중개업소 관계자의 말에 날이 서려 있다.

"기자분이라면 돌아가세요. 알려줄 게 전혀 없어요. 아니 알려드리고 싶지 않아요. 기자들이 한 번씩 다녀간 뒤 기사가 나올 때마다 문 닫는 가게(중개업소)가 몇 군데인지 아세요. 아예 그냥 놔두세요. 거래도 없고 조용하니까."

특히 현지 중개업소들이 격양된 모습을 보인 이유는 이날 모 경제일간지에 실린 은마아파트 관련 기사 탓도 컸다. 하루 전인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법원경매에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76㎡(23평)형은 11명이 입찰에 참여한 끝에 6억6700만원에 낙찰됐다. 이 평형대 은마아파트가 6억원대에 낙찰된 것은 지난 200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때 10억원을 넘어섰던 은마아파트가 비록 경매로지만 '반토막'에 가까운 가격에 팔렸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서울 강남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한 달에 1000만원씩 월세를 내는 주택이 등장했다. 사진은 삼성동 아이파크 전경.

수도권 인구 유출 처음 유입 넘어

그렇다면 앞으로 집값은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이어져온 부동산 불패신화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 집값이 급락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구가 꾸준하게 늘어난 데다 도시로 몰려든 인구가 떠나는 경우보다 많은 상황에서 서울, 수도권 발 집값 상승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월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지방에서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으로 거처를 옮긴 사람은 428만4000명인 반면 비수도권인 지방으로 빠져나간 사람은 그보다 많은 429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들어온 사람보다 빠져나간 사람이 8000명이나 더 많았던 것이다. 이는 관련 통계조사가 시작된 지난 1970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으로 세종시와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 개발 권역별 분권화 작업이 연달아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 인구 감소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KDB대우증권은 꽤 흥미로운 보고서를 펴냈다. 리서치센터 송흥익 연구원이 펴낸 '건설-2013년 전망: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시기'라는 보고서에는 "30~54세 인구수는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2013년 감소세로 전환되면서 실수요 감소로 이어지면 부의 양극화는 아파트 구매수요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송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일본의 경우 30~54세 인구수는 1986년 정점을 찍은 뒤 2011년까지 25년간 6.3% 감소했다. 반면 한국은 2020년까지 불과 8년 만에 30~54세 인구수가 6.9% 감소할 전망이기 때문에 일본보다 3배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울과 수도권 주택 보급률이 2000년 각각 77.4%, 86.1%에서 2011년 98.4%, 104.9%로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늘어난 것도 당분간 집값이 오르는 데 한계를 보일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대비 2011년 서울·수도권 가구수(1인가구 포함)는 196만1000가구 증가했지만 주택은 821만5000가구가 공급돼 증가 가구수에 비해 주택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늘어났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1960년 경제 부흥과 함께 시작된 도시화가 집값 상승으로 이어졌는데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주 구매층 인구 감소 등 여러 지표를 놓고 볼 때 대 사이클 국면에서 집값 상승의 시대는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상승세가 한풀 꺾이면서 최근 주택시장에는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가령 지금까지 전세가율이 60%를 넘어 전세부담이 커지면 매매값이 뛰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는데 최근 광주, 대구, 경북 등 지방 광역시·도는 전세가율이 70%를 넘어섰는 데도 매매값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또 막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려 인근 지역 부동산 값이 덩달아 오르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박상언 유앤알컨설팅 대표는 "토지수용자들이 이미 토지를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놓은 상태여서 목돈이 생기더라도 대출금부터 먼저 상환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3.3㎡당 아파트값이 1000만원 이하로 내려간 경기도내 시·군·구도 2008년 23곳에서 지난해 말 27곳으로 늘었다.

그렇다면 공급된 미분양 아파트는 어떻게 될까. 국토부가 매달 조사하는 미분양 아파트 통계를 보자. 가장 최근 조사인 지난해 11월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만6319가구로 전월(7만2739가구)보다 4.9% 늘었다. 5개월 연속 증가치다. 지역별로는 수도권 미분양 아파트가 3만4385가구로 7개월 연속 늘어났고 지방도 4만1934가구를 기록했다.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2만8944가구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 같은 미분양 분은 건설사에게 경영 부실의 단초를 제공한다. 때문에 많은 건설사들이 미분양 해소를 위해 갖가지 방안을 내놓고 있다. 김포 한강신도시 내 A건설사는 회사 보유분을 계약하면 1~2년 동안은 전세로 살다가 나중에 할인가로 분양하는 '할인조건부전세'를 실시하고 있다. 할인된 분양가를 대출받도록 건설사가 알선해주고, 심지어 이자까지 내주는 '종합할인분양'도 등장했다. 문제는 이런 파격적인 혜택에도 미분양 가구가 줄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충격으로 미분양 가구수가 급증했지만 경기 회복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리면서 미분양 가구는 빠르게 감소했다.

수도권 주택보급률 이미 100% 넘어서

그렇다면 이번에도 경기가 회복되면 미분양 가구는 빨리 줄어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부정적인 전망이 많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구매층이 줄어들었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한 경제연구소 부동산 담당 연구원은 이유를 베이비붐 세대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집값은 베이비붐 세대와 관련이 많습니다. 이들이 도시에 터전을 잡으면서 부동산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30대에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 집값이 폭등하게 된 겁니다. 2000년대 중반 강남 대치동 일대에 교육열풍이 몰아친 것도 교육수요가 커진 베이비붐 세대와 관련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베이비붐 세대들이 이제 은퇴에 들어간다면 주택 수요, 더 자세히 말하면 신규주택 수요는 더 이상 커지기 힘듭니다."

최근 주택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주택은 다름 아닌 소형평형이다. 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3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규모별 집값 누적변동률은 소형이 18.5%, 중형이 12.7%였는 데 비해 대형은 마이너스 0.7%를 기록했다. 2000년대 중반 중대형 집값이 큰 폭으로 뛰던 것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국민은행 통계로 보면 특히 소형아파트는 지난 3년간 가격 상승률이 20.8%를 기록해 비슷한 평형대의 단독(4.5%)이나 연립·다세대주택(3.6%)과의 격차가 컸다. 업무용보다는 사실상 주거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오피스텔도 60㎡(18평) 미만 소형주택의 비중이 80%를 넘는다. 서울 강남 인근지역에서도 중대형 아파트는 기피 대상 1호가 돼 버린지 오래다. 관리비가 많이 나올뿐더러 매매값이 많이 오르지도 않고, 전세로 내놓아도 찾는 이가 많지 않아서다. 재건축 시 조합원 지분을 많이 받기도 힘든 구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활용도가 많이 떨어진 것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14단지 84㎡(25평)는 11억원에 매매돼 비슷한 시기 10단지 108㎡(33평)보다 1억원 가량 비싸게 팔려 나갔다. 단지 위치, 층수 등을 감안해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강남구 대치동, 도곡동 라인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평형대는 99㎡(30평)대 아파트다. 대치동 우리공인 관계자는 "요사이 걸려오는 전화는 대부분이 30평대 아파트를 찾는 전화"라면서 "레버리지(은행대출)를 일으켜 큰돈을 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중대형 주택을 구입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도곡동 도곡렉슬 84㎡(25평)는 같은 단지 119㎡(36평)보다 2000만원 비싼 11억95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중소형아파트와 대형아파트 간 평균 매매가 격차는 지난 2010년 3.3㎡당 114만원에서 지난해에는 94만원으로 좁혀졌다. 대형평형대는 주춤하거나 하락하는 상황에서 중소형 아파트값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 같은 상황으로 볼 때 소형주택 인기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해 10월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펴낸 '가구 구조 변화에 따른 주거 규모 축소 가능성 진단'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오는 2017년 총 가구수가 124만가구 늘어날 것으로 보면서 중대형 주택 수요층인 4인 가구는 64만가구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 보고서는 비율로 놓고 보면 지난 2010년 소형, 중형, 대형이 각각 41%, 49%, 10%였지만 2017년에는 소형이 61%, 중형이 31%, 대형이 8%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경묵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주거면적 증가율 둔화와 재건축·재개발 사업 위축, 대출 규제로 인한 유동성 감소로 중대형 주택 수요 회복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1. 최근 강남아파트 시장에서는 소형 아파트 값이 중대형보다 비싸게 매매되는 일도 나오고 있다. 사진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2. 서울 압구정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들

"예금 이자보다 안정된 월세가 좋다"

매매시장은 위축된 반면 전세시장은 뜨겁다. 당분간 집값이 오르기 힘들다는 생각에 무주택자들이 주택 구입을 포기하면서 전세 품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정보제공업체 부동산114는 지난 1월15일 낸 통계자료에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720조6352억원으로, 2008년 8월(472조8530억원)보다 247조7822억원(52.4%) 증가했다고 밝혔다. 전세뿐 아니라 월세도 강세다. 은퇴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늘어나면서 월세 증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월세 강세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서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금 금리가 떨어지면서 월세가구 증가를 부채질하고 있다. 송흥익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앞으로 주택시장의 패러다임은 자본 차익(Capital gain)에서 안정적인 현금 흐름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데 최근 나타나고 있는 월세 가구 증가가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치솟는 전셋값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전세'로 바꾸는 세입자도 늘고 있다. 서울 고덕동 종점공인 관계자는 "4000만~5000만원씩 오른 전세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기존 전세보증금과는 별도로 인상분만큼을 월세로 내는데 집주인들이 연 6~7% 정도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강남에서도 소형아파트의 경우 월세로 돈을 내는 게 보편적인 모습이 됐다. 최근에는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대표되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대형평형에서도 월세가 등장했다. 인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얼마 전 타워팰리스 225㎡(68평)가 월세로 나왔는데 보증금 1억원에 매달 내야 하는 임대료는 500만원이었다. 원래 이 평형대 전셋값은 10억원에 육박한다. 대치동에 있는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주로 중소기업 대표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월세를 선호한다"며 "예전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가구수가 많지 않았는데, 지금은 중소형 평형대의 경우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20~30%는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다보니 최근 부동산 시장에는 월세로 1000만원을 내는 '월천족'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243㎡(74평)는 보증금 3억원에 월세가 1200만원이다. 서울 성수동1가 한화 갤러리아포레 230㎡(70평)도 보증금 1억원에 월세로 1300만원을 내고 있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