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깨 집세 올려주고..거리엔 공치는 택시..행락객도 '뚝'
악화되는 서민경제한때 7천만원까지 뛰던 택시면허 거래도 끊겨
◆ 체감경기 현장진단 ◆불황의 그림자가 한국 경제 전반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실물경제 추락의 쇼크가 제조업을 옥죄는 가운데 실질소득 감소가 서민생활을 압박하고 있는 모양새다. 경제가 불황으로 들어서는 조짐은 소비 위축에서부터 나타난다. 중소기업 과장인 김경호 씨(가명ㆍ37)는 최근 2년간 꼬박꼬박 붓던 적금 통장을 깼다. 전세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전국 아파트의 평균 전세금은 22%나 올랐다. 10년 탄 자동차도 올해쯤 새차로 바꿔볼 요량이었지만 언감생심이다. 당장 생활비 대기도 힘겹다.
김씨는 "올해 둘째아이를 가져볼까도 했지만 아내와 고민 끝에 미루기로 했다"며 "가족과 함께 놀러갔던 것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가물가물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씀씀이를 줄이다보니 가족과 오붓하게 놀러가는 사람도 줄었다. 대표적인 놀이시설인 에버랜드에는 작년 12월까지 807만명이 방문했다. 이는 전년에 비해 55만명 줄어든 수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749만명이었던 입장객 수가 2010년 862만명으로 100만명 이상 크게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최근 실물경제 충격의 강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고속도로 통행량도 지난해보다 대폭 감소했다. 한국도로공사 속보치에 따르면 1월 25일~2월 1일 전국 고속도로 통행량은 총 4638만7091대였다. 전년 같은 기간(4674만4472대)보다 35만대가량 줄어들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설날 연휴 직후인 데다 겨울 한파 등 계절적 변수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상 최고치를 기록 중인 기름값 행진과 함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스키장 등을 찾는 행락 인파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앞. 빈 택시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0년째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는 이 모씨는 "손님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야간근무지만 새벽 2시가 되면 손님이 없어 그냥 퇴근한다"며 회사 사납금도 빠듯하다고 말한다.
택시 이용객 감소는 통계적으로도 뒷받침된다. 도시가구 월평균 택시비 지출은 지난해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작년 3분기에 7395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 줄었다. 통계청 관계자는 "4분기 통계를 집계하고 있지만 1분기 -5.0%, 2분기 -7.3%씩 준 것을 감안하면 계속된 지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택시 이용객이 뚝 떨어지면서 택시업계는 전체가 경영난에 빠져들고 있다. 부산광역시의 경우, 시가 법인택시 2대를 개인택시 1대로 전환하는 고육지책까지 추진하고 있으나 시민 불편을 염려하는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영업용 택시회사들은 줄어든 수입 탓에 인력난까지 호소하고 있다. 한때 면허 양도 프리미엄이 7000만원을 호가하던 개인택시도 아예 거래 자체가 뚝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 위축으로 1월부터 백화점들은 대표적인 경기 변화 민감 품목인 여성의류와 구두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다. 여성의류나 구두는 지난해 매출 증가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자동차 판매량도 마찬가지다. 지난 1월 국내 완성차 5개사의 내수 판매량은 9만6448대로 전월 대비 25.5%, 전년 동월 대비로도 20% 줄었다. 이에 비해 최근 소주와 라면 등 저가 상품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위스키 판매량은 전년 대비 4.9% 감소했다. 불황 때 저가 제품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 때문이다.
요즘 서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전ㆍ월세금 급등이다. 수치상 전ㆍ월세금 인상률이 수그러들었다지만 통상 2년 만에 계약을 새로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체감도가 엄청나다.
전자부품업체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범석 씨(가명ㆍ35)는 지난달 전셋집을 사당동에서 흑석동으로 옮겼다. 2년 전 대출 1억원을 받아 전세 2억원짜리 사당동 79㎡(24평) 아파트를 구했지만, 작년 말 집주인이 전세금을 4000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한씨는 "내 집을 마련하고 싶지만 얼마 전 아이가 태어나 저축할 여력도 없다"고 푸념했다.
실제로 작년 12월 매일경제-미래에셋부동산연구소 월세지수(MRI)는 118.65를 기록하며 지수 산정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수기준일 2008년 1월부터 4년 동안 18.5% 비싸졌다. 통계청의 전국 2인 이상 가구 평균 월소득을 기준한 '소득 대비 월세 비중'도 2007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올라 지난해 6월 31%, 9월 30.1%를 기록하는 등 30%를 넘어섰다. 연봉이 3000만원인 세입자의 경우 주택 월세 비용으로 1000만원가량을 지불하는 셈이다.
은행 예금과 적금을 깨는 사람도 많아졌다. 5대 시중은행의 총수신은 올해 들어 한 달간 9조5580억원 감소했다. 정기예금이 6조원 가까이 줄어 가장 많이 빠졌다. 은행 수신이 두 달 연속으로 줄어든 것은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에 이어 꼭 3년 만의 일이다. 반면 저신용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 가계대출은 지난해 말 10조원을 돌파했다. 1년 새 2조원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신용카드는 사용액이 전년 대비 17.8% 늘어나 458조8000억원에 달했다.
[전병득 기자 / 손일선 기자 /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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