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웃도어 열풍 '3大 미스터리'
지난 17일 일요일 오전 서울대 쪽 관악산 입구는 등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날씨는 포근했고, 산은 화려했다. 봄꽃은 안 피었지만, 등산객 복장은 봄꽃처럼 형형색색이었다. 관악산만의 풍경은 아니다. 요즘 전국 산의 대체적인 주말 풍경이다.
2010년 봄이었다. 독일 아웃도어 '잭울프스킨(Jack Wolfskin)' 수입사인 LS네트웍스 영업 담당자인 모 부장은 독일 본사에 "(한국 시장은) 매년 20% 이상씩 성장하니 그만큼 물량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본사에서는 "못 믿겠다"며 거절했다. 팔리지도 않을 물량을 시장에 풀면 브랜드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독일 본사 잭울프스킨 CSO(최고판매책임자) 마르쿠스 보취와 COO(최고운영책임자) 크리스티안 브란트의 방한(訪韓) 계획이 잡혔다. LS네트웍스는 그들을 아무런 설명 없이 서울 청계산으로 데려갔고, 그들은 한국 등산객들의 모습을 보고 두말없이 물량 증대 요청을 수락했다.
이들은 시내에서 대중교통(지하철·버스)으로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등산할 산이 부지기수라는 것에 우선 놀랐다. 등산객마다 재킷·등산화·배낭·등산모자·스틱 같은 아웃도어 복장과 장비로 무장(?)한 장면에 두 번 놀랐다.
한국 아웃도어 시장은 세계 각국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들에 '미스터리 시장'이다. 국내 시장 규모(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2006년 1조2000억원에서 작년 5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6년 동안 4.8배로 급증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성장세를 보이는 곳은 없다.
◇한국은 아웃도어의 천국
아웃도어 시장 폭증세가 7년 이상 유지되는 것은 해당 업계에서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최근 2~3년간 "내년에는 꺾일 것"이라고 예상했다가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작년 하반기부터는 내수 경기가 확연히 가라앉았는데도 아웃도어는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했다. 올 1월과 2월 롯데백화점 전체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2.7% 느는 데 그쳤지만 아웃도어는 21.3% 늘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 파괴
우선 소비자 연령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2000년대 중반엔 주 소비자층이 40~50대 이상이었지만 이제 20~30대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코오롱스포츠의 30대 이하 구매자 비중은 2010년 24%에서 2012년 36%로 늘었다.
아웃도어를 평상복으로 입는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몸에서 나오는 땀을 방출하고 비나 눈이 스며드는 것을 막는 투습방수 기능을 가진 재킷은 높은 산을 등산할 때나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일상복으로 입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시장 파괴
블랙야크 강태선 회장은 "아웃도어 시장은 골프 의류나 캐주얼을 잠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과 2월 롯데백화점의 캐주얼과 골프웨어 매출은 각각 11%, 3.4% 감소했다.
이런 형편이나 보니 기존 의류업체들도 아웃도어로 눈길을 돌린다. 작년과 올해 국내에 새로 생기거나 수입되기 시작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무려 20여개에 달한다. 제일모직은 빈폴 아웃도어를 내기 시작했고, 성인용 패션 의류를 주로 만들던 형지도 노스케이프와 와일드로버를 수입해 팔기 시작했다.
◇기후 파괴
또 다른 이유는 날씨다. 머렐을 파는 화승 김보형 이사는 "작년 하반기 들어 매출이 주춤했는데 강추위가 찾아오자 갑자기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K2 코리아 이태학 본부장은 "3월 들어 주말 날씨가 계속 좋다 보니 전년 대비 매출이 30~40% 이상씩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혹한이면 혹한이어서, 날씨가 좋으면 좋아서 아웃도어를 구입하는 것이다.
노스페이스의 이정환 이사는 "이제 소비자는 날씨 변화가 생겨 옷을 사야 할 일이 생기면 아웃도어 매장부터 찾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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