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선박 늑장투입..'뭉그적' 정부, 한진사태 키웠다

최경환 기자,이동희 기자 2016. 9. 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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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으로 물류대란 해결 어림없어.."정부, 개입해야"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7일 오후 서울 도렴동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제20차 재정전략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2016.9.7/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세종=뉴스1) 최경환 기자,이동희 기자 =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빚어낸 물류대란 사태는 정부 경제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체선박을 투입해 화물수송을 차질없이 하겠다던 정부는 물류대란이 벌어지자 허둥대면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양상까지 보였다.

기획재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미약한 상황에서 사태수습에 나서야 할 해수부는 뭉그적거렸다. 20개월 만에 반등에 성공한 수출이 물류대란으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도 산업통상자원부도 손을 놓고 있었다. 한진그룹에 대한 장악력을 가진 국토해양부도 뒤늦게야 동원되기도 했다.

그사이 화물을 가득 실은 41척의 배는 정박할 항구를 찾지 못해 며칠째 바다에 둥둥 떠다녔고, 정박해도 하역을 거부당해 물건을 제때 배송하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3차 관계장관회의에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를 결정할 당시 지금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것을 전혀 예견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경제부처 수장들은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결정한 지 8일 만인 7일 제4차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대체선박 20척을 투입하고 항공기를 증편하는 등의 대응방안을 내놨다.

앞서 당정은 한진해운에 담보 제공을 조건으로 1000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한진그룹은 조양호 회장의 사재 400억원을 포함해 1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문제는 이번 물류대란은 1000억~2000억원의 자금으로 급한 불을 끌 수 없다는 데 있다. 한진해운같은 정기선 해운은 비용의 40%가 항만과 내륙운송에서 발생한다. 내륙운송업자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단기적으로 5000억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정영석 해양대 교수(해사법학부)는 "1000억~2000억원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말했다. 정 교수는 "항만에는 하역, 도선 등 용역서비스가 많은데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의 자산이 청산되면 채권확보가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배를 억류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다양한 채권자들이 뛰어들기 때문에 스팟 자금으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배가 억류되면 항만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입항도 거부된다는 것이다.

현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항구 근처에 가 있는 한진해운의 배에서 다른 배로 해상 이적을 한다거나 대체 항구로 옮기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 드는 비용은 몇천억원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정부의 시각은 해운업계와 다르다. 유 부총리는 한진에서 1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고 평가하면서 정부의 추가 자금 지원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7일 유 부총리는 회의 직후 기자들의 질문에 "필요한 자금규모는 확실하지 않고 2000억원까지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정부는 지난 31일 가진 3차 회의 직후에도 "대체선박을 투입해 화물수송이 차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선원들이 해외에서 억류되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체선박 투입을 지휘해야 할 해수부는 지난 2일 인천-베트남 항로 대체선박 1척을 투입하는 것 외에 현재까지 투입된 선박은 없다. 해수부는 9일에 미주노선 4척, 인도네시아노선 3척, 12일에 유럽노선 9척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어느 선사의 배인지 정확히 답을 못하고 있다. 안이한 정부의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영석 교수는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앞서 정부가 대체선박을 확보하고 각국 법원에 압류금지를 미리 요청해놓지 않은 것은 무능 아니면 무지"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비싼 용선료 때문에 운송료가 원가의 5분의1 수준밖에 안돼 매년 큰 손실이 발생하는 회사를 법정관리에 넘기기로 결정한 방향은 맞다고 본다"면서도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법정관리에 들어갈 때 이후 사태에 대해 전혀 대비해놓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한진해운의 자금문제를 한진그룹에만 떠넘기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진그룹과 채권단의 한진해운 지원이 여신법상 배임죄에 해당되는데 이를 풀기 위해선 결국 금융위와 기재부 등 금융당국이 적극 개입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창준 법무법인 세경 대표변호사는 "한진그룹에서 돈을 내면 형사적으로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며 "600억원의 자구안도 한진해운의 담보로 차용을 한 것이지 엄밀히 말해 한진그룹의 지원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종민 인터오션 대표는 "채권단 입장에서는 담보도 없고 파산이 확실시되는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 없다"며 "금융위와 해수부의 동의와 승인이 있어야 되고,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이번 일은 정부와 금융당국이 용선으로 운영하는 선사의 기본구조를 무시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부실기업의 잣대를 업종별 특성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들이대다보니 큰 문제가 없는 기업도 부실기업으로 내몰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태 책임을 정부에게 돌렸다.

kh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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