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얽힌 바다.. 한진해운발 2차 쓰나미가 온다

입력 2016. 10. 7. 19:16 수정 2016. 10. 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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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특집
한진해운 사태에 가려진 것들

현재 중남미 파나마 운하 앞 공해상에 가압류된 한진해운 소속 ‘브레머하펜’호의 실제 모습. 한진해운의 주력 컨테이너선인 브레머하펜호는 ‘웬만한 골퍼의 비거리를 능가한다’는 이름값처럼 길이 6.1m의 컨테이너를 6655개(TEU)나 실을 수 있는 규모(길이 304m, 너비 40m)다. 한진해운 누리집 갈무리
▶ 한진해운 법정관리에 따른 물류대란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고용대란 및 화주들의 손해배상청구 등 또 다른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이미 해외 채권자들의 선박 압류와 화물 운송계약 해지, 해운동맹 퇴출 등의 조처로 한진해운은 정상적인 영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사가 창립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정부 대책은 한심한 수준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한진해운 사태라는 쓰나미가 몰고온 1~2차 생산업체와 물류·유통업계의 피해를 취재했다. 전문가들은 진짜 ‘쓰나미’는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4일(현지시각) 저녁 8시7분, 중남미 파나마 운하 앞 공해상을 항해하던 한진해운 소속 ‘브레머하펜’호가 북위 9.4024도, 서경 79.9424도 지점에서 운항을 멈췄다. 선박 항해 추적 민간사이트인 마린 트래픽 누리집(marinetraffic.com)을 보면, 이날 이후 브레머하펜호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한진해운 사태’로 배가 가압류됐기 때문이다. 배가 멈춘 이곳이 브레머하펜호의 묘박지(선박이 계류 혹은 정박하는 장소)인 셈이다. 가압류가 언제 풀릴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브레머하펜호는 8월23일 밤 9시18분에 부산항을 떠났다. 예정대로라면 미국 뉴욕과 윌밍턴을 거쳐 지난달 21일 조지아주 동부지역의 서배너에 도착해야 했다. 그러나 9월1일 시작된 한진해운 법정관리의 ‘쓰나미’는 지난달 초순께 파나마 운하 쪽으로 넘어가 막 도착한 브레머하펜호를 덮쳤다. 통행료 미지급 우려로 운하 통과가 불허돼 공해상에서 대기하던 브레머하펜호는 지난달 말 운하를 통과했지만 결국 가압류로 발이 묶이게 되었다.

하역 지연이 더 치명적인 농산물

컨테이너선은 압도적인 크기로 흔히 ‘바다 위의 떠다니는 섬’으로 불린다. 한진해운의 주력 컨테이너선인 브레머하펜호는 ‘웬만한 골퍼의 비거리를 능가한다’는 이름값처럼 길이 6.1m의 컨테이너를 6655개(TEU·컨테이너 1개 박스를 나타내는 단위)나 실을 수 있는 규모(길이 304m, 너비 40m)다. 그러나 그 거대한 배를 멈추게 한 건 ‘닻줄’이 아닌 ‘돈줄’이었다. 컨테이너선이 멈춰서자 말 그대로 ‘섬’이 돼버렸다. 물류혁명의 주역인 컨테이너선이 등장한 지 60년 된 올해, 한국 해운업은 위기에 처했다.

6일 기준으로 운항에 차질을 겪고 있는 한진해운 선박은 16척, 하역을 완료한 선박은 102척(컨테이너선은 61척)이다. 한진해운은 현재 컨테이너선 97척, 벌크선 44척 등 총 141척의 선박을 운영하고 있다. 브레머하펜호 외에도 파나마만에 ‘볼티모어’호, 캐나다 밴쿠버항에 ‘비엔나’호 등 컨테이너선 7척이 가압류가 돼 있다. 선박에 대한 채권자의 가압류를 막는 현지 법원의 압류금지명령(스테이오더)이 발효되지 않아 각국 공해상에 대기중인 컨테이너선도 6일 기준 6척이나 남았다.

한진해운은 미국·일본·영국·독일 등 법원으로부터 스테이오더 승인을 정식 발효받은 상태다. 싱가포르에서는 잠정 발효가 났고 벨기에에서는 현지 법원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향후 네덜란드·스페인·이탈리아 등에서도 스테이오더를 신청할 계획이다. 곡물·광석·석탄 등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선창에 싣고 수송하는 화물선인 벌크선의 경우 3척이 정상 운항하고 있고 하역을 마친 선박은 41척이다.

다행히도 5일 오후 상하이 항무국에서 하역 승인이 떨어지면서 한달 넘게 상하이항 해역에서 가압류되거나 대기중이던 컨테이너선 8척에 대한 하역 작업이 개시됐다고 한진해운이 이튿날 밝혔다. 앞서 9월31일 중국 닝보에서도 하역 작업이 시작된 바 있다. 상하이와 닝보는 한진해운 컨테이너선이 압류됐던 지역이다.

하역이 이뤄지는 배는 늘고 있지만 가압류된 선박에 수출품을 실은 업체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하루하루 하역이 늦춰질수록 피해가 불어나기 때문이다. 기계 부품 등 공산품에 비해 유통기한이 생명인 농산물의 경우는 하역 지연이 더욱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브레머하펜호에는 배, 포도, 밤, 파프리카 등 농산물 수십 톤도 실려 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미국 동부지역 한인마트나 현지 대형매장 진열대에 놓여 있어야 할 상품들이다.

8월 중순께 경북 지역의 한 영농조합은 14톤가량의 배를 출하했다. 시가 5000만원에 달했다. 트럭을 이용해 부산항까지 운송된 다음 컨테이너에 실려 8월21일께 브레머하펜호에 선적됐다. 화주인 배 수출업체 담당자는 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예정된 하역 시점에서 2주 정도 지난 거라 아직 물건은 괜찮을 걸로 본다. 그러나 가압류가 오래가면 이마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전량 폐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담당자는 “바이어에게 돈은 못 받더라도 생산농가에 대금 지급을 안 해줄 순 없다. 오늘내일하는 한진해운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중간 유통업자인 우리만 손해를 보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지금의 상황이 더욱 답답한 것은 달리 손써볼 방도가 많지 않다는 데에 있다. 전남지역의 한 파프리카 수출업체 관계자는 “이역만리 다른 나라에 가압류된 상태라 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손해는 점점 커져가는데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게 죽을 노릇”이라고 했다. 파프리카도 배와 함께 브레머하펜호에 ‘억류’돼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

파나마서 가압류된 ‘브레머하펜’호
배와 파프리카 실은 수출업체들
“하역 더 늦어지면 다 폐기해야
물동량 폭증에 다른 운송수단
확보도 별따기라 더 미칠 노릇”

다른 수단 찾으라는 정부 대책
현실 모르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가압류 등 운항차질 선박 16척에
물건 실은 제조업체들 비상근무
협력업체들도 잔업·야근 피해봐

급한 대로 항공이나 철도로 운송
추가 운임은 고스란히 화주의 몫
운송 대행 포워딩업체 생존 위협
신뢰도 추락으로 해외 항만들
이용료 인상, 환적 담보금 요구

거래의 생명은 신뢰다. 추가 운임이 들더라도 납기를 맞추기 위해 항공과 철도 등 다른 운송수단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도 여의치 않다. 중국 국경절과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겹쳐 최근 물동량이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한 수출업체 ㄱ 과장은 “지난주인 9월말까지는 급한 물량은 추가 비용을 지급하더라도 항공편을 이용해 운송했다. 그러나 10월 들어서부터는 그마저도 어렵다”고 했다.

가까스로 다른 운송수단을 찾더라도 추가 비용은 고스란히 화주의 몫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ㄱ 과장은 “벌써부터 화물 운송 운임이 오르고 있다. 다른 선사나 포워딩업체들은 화물을 보내려면 급행료(추가 운임)를 내라고 한다.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라고 했다. 이러한 점에서 ‘대체 선박을 찾거나 추가 비용 들더라도 항공 운송을 검토하라’는 정부 대책은 관련 업계로부터 ‘현실을 모르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진해운 소속의 하모니호의 운항 모습. 8월8일 부산항을 출항한 하모니호는 중국 상하이와 옌톈, 싱가포르 등을 거쳐 9월6일에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이미 함부르크 앞바다에 당도한 하모니호는 공해상에 대기한 뒤 스테이오더 발효 이후인 26일에야 하역을 할 수 있었다. 마린트래픽 누리집 갈무리

일선 창구에선 모르는 정부 대책

해운은 거대한 생태계로 이뤄진 산업이다. 수출 화물의 해상운송 절차만도 대략 9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수출상과 수입상의 매매(수출)계약→수출 물품 확보→선사 또는 포워딩 업체 통해 선적 스케줄 문의→선적 일정 확정→해상보험(적하·선박보험 등) 가입→수출통관(수출신고, 세관의 신고필증 발급)→본선선적→선화증권(선박회사가 탁송화물에 대하여 발행하는 화물 대표증권) 수령→선적통지(선적서류 바이어에게 송부)→바이어의 화물 수령(최종 목적항에 선박 입항, 하선, 통관, 내륙운송).

해상운송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은 관련 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선 사례들처럼 1·2차 산업과 물류 등 해운업에 맞물려 있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그 생태계의 한 단계에 포워딩업체들이 있다. 한진해운 사태로 국내 3000여개로 추정되는 포워딩업체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은 화주를 대신해 육송, 해송 대행업무를 맡고 있다. 화물의 선적부터 운송과 하역, 이후 육상 운송을 통해 최종적으로 바이어에게 물건이 인계될 때까지의 전 과정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다. 선사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해상 운송을 맡는다면 포워딩업체는 수출자와 수입자 사이의 모든 운송을 책임지는 셈이다.

이번 한진해운발 물류대란 사태로 화주들은 거래 상대방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피해를 입었다. 화주가 입은 손해는 우선 포워딩업체가 배상해야 한다. 포워딩업체는 추후 한진해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한진해운이 이를 책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 합동대책 태스크포스(TF)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손해를 배상할 여력이 없어 중소 규모의 포워딩업체들은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포워딩업계 관계자가 말하는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지난달 18일과 29일 <한겨레>와 두 차례 만난 한 중소 포워딩업체 ㅇ 전무는 “이번 한진해운 사태로 항공이나 열차 등 대체 수단을 통한 운송 비용과 환적(화물을 실은 컨테이너를 바꾸는) 비용, 해외 항만이 요구하는 추가 담보금(Deposit) 등 한달도 안 돼 20억원에 가까운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며 “한진해운이 청산 절차를 밟는다면 피해보상도 물건너가게 돼 현대글로비스나 엘지의 판토스 같은 대기업 포워딩회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영세 업체들은 줄도산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ㅇ 전무는 또 “자금력이 있는 화주의 경우 대체 수단 이용에 따른 추가 운임에 대해 직접 부담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화주들은 포워딩업체가 부담하라고 요구한다. 또한 정부는 하역만 이뤄지면 다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하역이 이뤄져도 문제는 남는다. 해외 항만에서 예선료, 하역료, 고박료 등 항만시설 이용료를 더 높게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한국 해운업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해외 항만들이 돈을 더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거점 항구로 지정한 스페인 발렌시아항에서는 다른 컨테이너에 화물을 옮겨 실을 때, 한진해운 소유의 컨테이너 반납 보증금을 추가로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점은 정부투자기관인 코트라에서도 파악하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9월3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환적에 따른 추가 보증금 요구에 대해) 알고 있다. 코트라 해외지사를 통해 지원을 하고 있는데 해결이 쉽지 않다”고 했다.

정부는 긴급 운영자금이 필요한 한진해운 포워딩업체에 대해 한진해운 쪽에서 업체 명단을 받아 일대일 전화상담을 한 뒤 금융지원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6일 밝혔다. 그러나 업계 쪽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한진해운 사태가 터지자 애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이 대체 운송수단을 찾으라는 것에 불과했던데다, 자금지원 관련 기관에선 정작 지원사업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시중은행권의 담보 대출과 같은 내용을 제시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이 체계적이지 않고 지침마저도 일선까지 정상적으로 하달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지난달 23일까지 중소기업청과 기업은행의 정책자금 지원 실적은 총 9건에 불과했고 같은 기간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의 특례보증 지원 실적 역시 고작 4건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화되고 있는 물류대란에도 적극적인 지원 없이 전 대주주 책임론에만 집착하는 정부를 두고, 업계에선 ‘해운업 서자론’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선업과 해운업은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업황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국내 조선·해운업체들도 생사의 기로에 섰다. 그러나 위기를 맞은 두 업종에 대한 정부와 금융권의 태도는 달랐다. 2000년대 들어 부동의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선업에는 부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다. 반면 똑같은 위기에 봉착한 해운사들에 지원된 금액은 1조원 수준에 그쳤다.

대기업 포워더들의 횡포도 한 원인

조선업에 비해 해운업이 금융당국의 지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이유는 뭘까? 이동현 평택대 무역물류학과 교수는 5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조선과 해운에 대한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자세는 정치적 메커니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영향”이라며 “설비 및 생산시설로 일부 지역에 연고를 둔 조선과 달리 해운업체는 정치적으로 비빌 곳이 없고 조선에 비해 내수 고용창출 효과가 낮다는 편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정규직 인원만 1만명이 훌쩍 넘고 상시 고용하는 협력업체 인원을 더하면 5만여명에 이른다. 조선업 전체로 보면 고용효과는 수십만명에 이른다. 대형 업체들의 경우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의 경제를 좌우할 정도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그만큼 파급력도 크다. 정부 입장에서는 정치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해운업은 고용 파급효과가 조선업에 비해 작은 편이다. 국내 ‘빅2’ 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국내외 직원 수는 각각 4000~5000명 수준이다.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다 보니 정부 입장에선 합병이나 구조조정을 기획하기에 부담을 덜 느낄 수 있다.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등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지만 해운업의 경제 기여도는 조선업과 비교해 결코 낮지 않다. 2010년 이후 국내 해운업은 매년 300억달러 이상 외화를 벌어들였다. 2014년만 해도 해운업은 반도체, 석유, 철강, 자동차, 조선에 이어 여섯 번째로 많은 외화를 벌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 해운업 경쟁력 약화에는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교수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가 해운업의 중요성과 파산 시 파장에 대해 정부 내에서 목소리를 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역할을 못 했다. 이번 물류대란은 후폭풍에 대한 대비를 전혀 세우지 않고 법정관리로 몰고 간 정부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운업계에서는 정부가 해운산업을 잘 모른 채 구조조정을 밀어붙인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중견 포워딩업체의 ㅂ 전무는 9월29일 <한겨레>와 만난 자리에서 “세계 1위의 선사를 가지고 있는 덴마크는 물론이고 중국도 수조원의 돈을 들여가면서 해운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 정부만 해운업을 일개 산업으로 보고 금융 논리로만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ㅇ 전무도 정부의 “한진해운 오너의 부실경영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좋다. 하지만 지금은 불이 난 긴급상황이다. 그렇다면 급한 불부터 끄고 난 다음에 누가 불을 냈는지 찾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물론 한진해운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는 대주주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다. 최은영 전 회장은 세계 해운 경기가 장기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확장 경영을 하다가 회사를 위기에 빠뜨렸다. 최 전 회장은 회사가 기울어가는 동안 160억원의 보수를 받는 ‘도덕적 해이’도 보였다. 또 지난 4월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사실이 공개되기 직전 27억원 규모의 보유 주식을 매각해 10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오너의 황제경영, 정부의 무책임과 더불어 업계에선 한진해운 사태의 한 원인을 두고 글로비스나 판토스 같은 국내 대기업 포워딩업체들의 ‘갑질’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중견 포워딩업체 이사는 “글로비스 같은 대형 포워딩업체들이 한진해운에 화물을 실을 때 물량을 들이밀며 단가 후려치기를 줄곧 해왔다. 한진해운 입장에선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한진해운의 부실이 누적된 한 요인이 됐다는 건 업계 사람들이 다 아는 얘기”라고 했다. 또 그는 “이들 기업은 중소 포워딩업체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단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대기업이 진출한 이후 골목상권이 다 죽어나가듯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 마진을 포기하며 뛰어들면서 우리 같은 포워딩업체들이 망해가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한진해운의 연간 총 수송물량 가운데 현대글로비스가 실은 물량은 1%도 되지 않아 현대글로비스와의 사업이 한진해운 매출(부실)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건 불가능하다”며 ”공정한 경쟁입찰을 통해 선사를 선정하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단가낮추기는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선업은 적자, 해운업은 서자’
정부의 차별에 불만 터져나와
고용창출효과 낮다고 하지만
해운업 6번째 외화벌이 산업
“중국 수조원대 투자하는데…”

청산 이후가 더 큰 문제 될 것
화물운임 상승, 가격경쟁력 하락
부산·광양 등 국내 환적량 감소
항만 등 1만여개 일자리 사라져
이제라도 정부가 적극 나서야

부산지역 해운 관련 단체들은 한진해운이 청산될 경우 향후 일자리 1만3000여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선주협회와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등 부산지역 각종 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항공 앞에서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결의대회’를 열어 한진해운의 회생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금 못 받아 월급도 못 줄 판”

한진해운에 화물을 실은 제조업체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경북 영천의 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는 한진해운 소속의 ‘하모니’호에 37개 컨테이너 40t 분량의 자동차 부품을 실었다. 8월8일 부산항을 출항한 하모니호는 중국 상하이와 옌톈, 싱가포르 등을 거쳐 9월6일에 독일 함부르크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각) 이미 함부르크 앞바다에 당도한 하모니호는 스테이오더가 발효되지 않자 가압류를 피하기 위해 공해상에 대기해야 했다.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의 박아무개 부장은 9월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지난달 1일 한진해운 법정관리 개시 뉴스를 듣고서야 상황을 알게 됐다. 그때는 이미 배가 떠난 뒤였다. 하모니호를 시작으로 3개 배에 비슷한 양의 수출품을 실었는데 9월15일부터 1주일 간격으로 순차적으로 납품이 돼야 하는 것들이라 근심이 컸다”고 했다.

회사는 당장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 납품되는 부품으로 러시아의 고객사가 조립을 해야 하는 터라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협력사와 함께 야근과 잔업으로 물량을 추가 생산했다. 대체 화물을 선박에 비해 3배나 비싼 시베리아 횡단열차편으로 발송했다. 급한 부품은 항공편을 이용했다.

하모니에 화물을 실은 또 다른 금형 제조업체 ㄱ(48) 대표는 “항공료만 3억 넘게 들었다. 여기에 잔업과 휴일근무 등 회사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 등은 아직 추산도 못했다. 졸지에 협력업체까지도 손해를 봤다. 운송을 중개해준 포워딩업체나 한진해운과 추후 협의를 할 생각이지만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년이 된 중견기업인데 요즘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가뜩이나 수출량이 줄어서 회사 사정이 안 좋은데 한진해운 사태까지 겹쳐 더 힘들다고 ㄱ씨는 한숨을 쉬었다.

독일 법원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각) 스테이오더를 승인했다. 지난달 21일 오전 9시에 함부르크항에 도착한 하모니호는 26일 새벽 1시30분에 접안 작업을 시작해 하역을 마치고 28일 저녁 8시24분 항구를 떠났다. 박 부장은 “늦게라도 하역이 이뤄져서 다행이다. 10월7일에 바이어에게 납품이 이뤄질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납품이 20일 늦어졌는데 바이어에게 다시 한번 이해를 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하역은 이뤄졌지만 그사이 발생한 추가 운임 등의 피해 보상은 아직 요원하다.

한진해운 사태로 피해를 보는 건 비단 국내기업만이 아니다. 베트남 등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베트남의 한 신발제조업체 관계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유럽으로 수출한 신발 10t을 한진해운 배에 실었는데 하역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바이어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 월급을 은행대출 받아서 줘야 할 판이다. 한달 안에 (물건이) 들어가면 다행인데 그 이상 늦어지면 바이어가 클레임을 걸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피해가 더 커질 것이다. 주변 다른 공장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진해운의 부실경영에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나?”

수입업체들도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전북의 ㄷ의류기업은 추석 명절 국내에서 판매할 아동의류 완제품을 한진해운에 선적해 인도네시아에서 부산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한진해운 선박의 하역 작업이 중단됐고 부산항에 이 업체의 제품을 담은 컨테이너 1개가 묶이게 됐다. 급한 대로 추가 물량을 항공편으로 운송하고 있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방의 한 수출입업체는 토목공사용 섬유보강재를 생산하기 위한 부자재를 한진해운을 통해 베트남에서 선적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진해운 사태로 베트남 현지에서 컨테이너 1개 규모의 선적 작업을 하지 못했다. 현재 다른 선박으로 대체해 선적한 상태지만 20일가량 운송이 지체되면서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됐다.

지난달 5일부터 26일 오전 9시까지 한국무역협회 수출 화물 물류 애로 신고센터에 접수된 한진해운 관련 건은 총 477개사 488건으로 신고 화물 금액은 총 1억7700만달러(약 1965억원)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그중 이들 사례와 같은 ‘납기 지연’ 피해 건수가 52.9%(73건)에 달했다.

청산 후, 대량 실업 사태 우려

전문가들 사이에선 청산을 하더라도 한진해운의 영업망(네트워크) 같은 알짜 ‘자산’만은 외국 선사에 넘겨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동현 교수는 “선사는 네트워크(영업망)가 핵심이다. 한진해운의 가치에서 선박 등 유형적 자산보다 인력, 네트워크, 시스템, 화주 관리, 운영 노하우, 현지 조직 등 30년 동안 쌓은 무형적 자산 가치의 비중이 더 크다”고 했다.

현재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개시 이후 영업활동이 전면 중단돼 추가 매출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영업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은 아직 살아 있다. 한진해운에 대한 법정관리를 맡고 있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해외 사무소, 인력, 각종 인프라로 구성된 한진해운 영업망에 대한 매각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망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라면, 한진해운의 남은 ‘눈에 보이는 자산’은 선박과 항만(터미널)이다. 선박과 항만은 글로벌 선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교수는 “최근 중국 상하이를 방문했는데 그곳의 해운업체들이 한진해운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표정관리를 하고 있더라. 한진해운이 헐값에 매물로 나오면 그들에겐 어마어마한 이익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청산 이후가 될지도 모른다. 먼저 대규모 국적선사가 사라지면 전자와 철강 등 한국의 주요 수출 분야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해운 물동량의 약 40%, 엘지(LG)전자는 20% 정도를 한진해운에 맡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물량을 당장 외국 선사들에 맡기면 화물운임이 연간 4407억원가량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운임 상승에 따른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 하락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당장 한국 경제의 밥줄인 수출도 한진해운발 물류대란에 따른 차질로 이번달 마이너스가 우려되고 있다.

한 제조업체 담당자는 “아무래도 국적선사라 한진해운은 운임과 선적 스케줄, 초과 화물 등과 관련해 업체들에 여러 편의를 봐줬다. 당장 다른 나라의 선사들이 과연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지 의문이다. 실제로 한진해운 사태 이후로 운임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고용대란 및 화주들의 손해배상청구 등 또 다른 후폭풍도 예고되고 있다. 현재 한진해운 선박에 적재된 화물 가액은 약 140억달러(15조6000억원)로 예상된다. 법원은 화주들의 손해배상청구액 규모가 적게 잡아도 보름 뒤에는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매일 쌓이는 용선료 연체 연료비 부담액도 증가하고 있다. 법원은 현재 하역 지체로 발생하는 용선료와 연료비는 하루 약 210만달러(한화 23억5000만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청산이 현실화되면 고용대란도 피할 수 없다. 해운항만물류 관련 협회와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30여개 단체가 뭉친 한진해운살리기 부산시민비상대책위원회도 “한진해운이 청산될 경우 화주들의 피해보상 요구 확산으로 인해 관련 업체들의 연쇄도산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향후 일자리 1만3000여개가 사라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제로 부산 한진해운터미널에서 일하던 트레일러 기사 100여명이 이달 초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운항 노선이 조정되면 한진해운 물량을 처리했던 부산항과 광양항 등 국내 항만의 환적량도 감소될 전망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성곤 의원(더불어민주당)은 7일 “부산항만공사로부터 제출받은 ‘한진사태 현황 및 대처’ 자료를 보면 한진해운의 부산항 환적물량의 약 50%(50만TEU)가 부산항을 이탈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항만업계에선 이 여파로 부산항에서만 약 11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손실액만 4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부산의 지역경제가 휘청거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해양수산부 고위 관계자는 “부산항의 환적화물이 100만TEU, 광양항이 20만TEU 수준인데 상당 부분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현대상선이나 다른 인트라아시아(아시아 역내) 쪽 (중소) 선사 활용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부산항 물동량 가운데 일부를 광양항에 부려놓는 것도 가능했는데 이제는 부산항 환적량 자체가 줄어서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물동량 자체가 적은 광양항은 한진해운 사태로 부산항보다 더 큰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본격적인 쓰나미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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