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멀쩡했던 중견 건설사를 파산하게 만들었나

장상진 기자 입력 2016. 7. 5. 19:07 수정 2016. 7. 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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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이 쿠웨이트에서 짓고 있는 세계 최장(最長) 해상교량 공사에 협력 업체로 참여하던 국내 중견 건설업체 A사(社)가 지난 5월 갑자기 파산했다. 1990년대 후반에 설립된 A사는 20여건의 교량 공사 관련 특허와 신기술을 보유하며 최근까지 흑자를 이어왔다. 현재 A사 직원들의 밀린 월급과 부채 등 청산 비용은 현대건설이 대고 있다.

A사는 파산 직전 “현대건설이 기준 미달의 불량 자재 사용을 강요해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었다”며 현대건설을 당국에 제소 했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청산 비용 지급은 원청업체인 우리가 도의적으로 대주는 것으로 불량 자재 사용을 강요한 바 없다”고 반박한다.

이런 가운데 A사의 한 직원은 “현대건설 직원이 쿠웨이트 공사 현장에서 불량 자재 사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얼굴에 콘크리트를 바르는 등의 폭력을 행사했다”며 사정(司正) 당국에 피해 사실을 접수하기도 했다. 도대체 ‘쿠웨이트 공사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협력업체 직원 얼굴에 콘크리트 발라”

문제의 현장은 현대건설이 2012년 11월 20억6000만달러(약 2조3700억원)에 수주한 쿠웨이트 자베르 코즈웨이 해상교량 공사 현장이다. 이 교량은 쿠웨이트만(灣)을 가로지르는 36㎞짜리 세계 최장 해상교량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작년 3월 방문, 방명록에 ‘자베르 코즈웨이가 쿠웨이트와 한국을 잇는 우정의 가교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5일 주(駐)쿠웨이트 한국 대사관과 사정 당국,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올 1월 쿠웨이트 정부 측 감리단으로부터 부실시공 지적을 받자, 이 공사에 참여하던 협력업체 A사와의 하청 계약을 해지했다. 부실시공이 이 업체 잘못이란 것이었다.

A사 측은 즉각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현대건설이 공기(工期) 단축을 위해 강도(强度) 기준에 미달하는 콘크리트 사용을 억지로 강요해 부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거듭된 균열을 보수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사가 망할 지경”이라는 주장이었다. 현대건설이 현장에서 공급한 콘크리트의 품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국내외 복수(複數) 전문기관의 평가 결과서도 제출했다.

또 A사 측은 사정 기관을 찾아가 “공사현장에서 현대건설 관계자가 문제의 콘크리트 사용을 거부하는 우리 직원의 얼굴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며 콘크리트를 발랐다”는 피해 사실을 접수했다. 현대건설 측은 이후 자체 조사를 거쳐 해당 직원을 징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협력사 청산비용 대면서도 “잘못 없다”

공정위 산하 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양측 간 분쟁은 지난 4월 12일 종료됐다. 현대건설의 합의 요구를 A사 측이 받아들여 제소를 취하한 것이다.

2014년 말까지만 해도 3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던 A사는 그 직후 폐업 신고를 했다. 현대건설이 폐업 수순에 돌입한 A사 측에 ▲임직원 60여명의 밀린 급여와 퇴직금 ▲A사가 쿠웨이트 현지 협력업체에 지급해야 할 공사대금 등을 대신 내주는 조건이었고, 5일 현재 합의가 상당 부분 이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현대건설 측은 “우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A사의 캐파(역량)가 부족해서 계약을 해지한 것이지만, A사가 공사에 들인 비용을 보전해 주는 차원에서 청산 비용을 지급하고 있다”고 했다. 콘크리트 품질 논란에 대해서는 “자재를 인수인계할 때에는 A사 등 협력업체도 직접 확인하고 서명한다”고 했다.

◇발주처, 거듭 부실 지적

이와 별개로 현대건설은 2013년 11월 이 공사를 시작한 이래 발주처인 쿠웨이트 정부 측 감리단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경고장’을 받았다. 부실공사와 그로 인한 공기(工期) 지연, 미승인도면 사용 등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모든 결과는 오로지 현대건설의 책임’ ‘용인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시정 방안을 즉각 제출하라’ 등의 표현이 담겼다.

현대건설의 올해 1분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 현장에서 미(未)청구공사대금 1650억원이 발생한 것으로 나와 있다. 미청구공사대금은 공사 비용이 들어갔지만, 발주처에 청구하지 못한 금액을 가리킨다. 현대건설의 미청구공사대금 총액은 2조5048억원으로 국내 건설업체 중 가장 많다.

현대건설 측은 “감리단으로부터 수차례 지적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해외 현장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며 “미청구공사대금은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된 것이어서, 이번 사건 때문만이라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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