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2조원 중 10조 한은서 부담..정부, 국회 검증 피하기

2016. 6. 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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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부 구조조정 방안 뜯어보니…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과 관계 부처 장관들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조선·해운 등 부실 업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 관계기관 합동으로 부실 업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면서 “선제적이며 신속한 구조조정을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방안을 뜯어보면 유 부총리의 이 발언은 말잔치에 가깝다. 일단 정부는 쏙 빠진 채 한은에 손을 벌린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식은 국회를 우회하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조선업 구조조정은 자체 컨설팅을 한 뒤 추진하기로 한 대목은 ‘시간벌기용’이란 평가가 나온다.

‘자본확충’ 한은에 손벌린 정부
추경 편성땐 국회 심의·의결 과정
세금투입 논란·정부 책임론 불가피
야권 “발권력 동원 우회, 나쁜 선례”

근본 해결책은 다음 정권으로?

경쟁력 제고방안 ‘컨설팅 뒤’ 미뤄
조선·해운 한정 과감한 대책 ‘말뿐’
‘1년6개월만 버티자’ 시간벌기 의심

정부는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자본을 수혈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일단 공기업 주식 등 국유재산 현물 출연을 통한 정부의 직접출자와 한은의 대출금 등을 재원으로 조성되는 자본확충펀드를 통한 간접출자 형식을 취했다. 정부와 한은이 자본확충 비용을 함께 부담하는 모양새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속살은 다르다. 정부 주머니에서 나오는 재원은 1조원, 한은에선 10조원이 나온다. 사실상 한은의 발권력에 전적으로 기댄 자본확충인 셈이다. 산은법 등 관련법은 국책은행 자본확충의 책임을 원칙적으로 정부에 부여하고 있다.

정부의 산업·기업 구조조정 주요 추진 방안

정부가 무리수를 둔 이유는 추가경정(추경)예산을 편성해 국책은행에 현금 출자하는 ‘정공법’을 피하기 위해서란 분석이 많다. 추경 편성을 위해선 국회의 심의와 의결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불거질 ‘세금 투입 논란’과 ‘정부 책임론’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비판을 염두에 둔 듯 몇가지 방어 논리를 폈다. 한은에 ‘금융안정’ 책무가 있어 자본확충에 나설 근거가 있고, 정공법을 택할 경우 구조조정의 생명인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안정 책무를 강조하며 한은 출자의 정당성을 (정부가) 강조하지만 현재 금융시장에 위기가 찾아오거나 그 전조가 뚜렷한지 의문이다. 구조조정의 정당성과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정부가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꼬집었다.

당장 정치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한은 발권력 동원은 원칙에도 맞지 않고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국민의 검증과 국회의 사실 규명을 피하기 위해 정부가 우회로를 선택했다”고 짚었다.

현재 진행되는 해운·조선 구조조정은 매우 미묘한 시기에 이뤄지고 있다. 올해를 넘기면 박근혜 정부의 잔여 임기는 1년 남짓이다. 통상 구조조정은 경기 악화, 실업 확대 같은 단기적 부작용이 수반돼 정치적 부담이 크다. 권력 누수 현상이 나타나는 때인 임기 말에 구조조정이 매번 제대로 안 된 이유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속도감 있는 선제적 구조조정’을 내세운 것은 이례적인 행보로 비친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방안 곳곳에는 ‘만약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에는’이나 ‘현재 상황에서는 (자구안이) 적정한 수준으로 평가’ ‘추가 대응수단 강구’ ‘향후 주요 대책 순차 발표’와 같은 단서를 단 문장이 수두룩하다. 특히 은행의 여신이 50조원을 훌쩍 넘는 조선업의 경쟁력 제고 방안은 조선업계의 자율적인 외부 컨설팅을 끝낸 뒤에 확정하기로 했다. 모두 속도감 있는, 선제적, 과감한 같은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목들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현 정부 잔여 집권기간인 1년6개월 동안만 버티자는 전제 아래 짜인 ‘시간벌기용’이란 뜻이다.

실제로 정부는 구조조정의 범위를 대표적인 경기민감업종인 철강·석유화학·건설 업종은 뺀 채 조선·해운 업종으로 한정했다. 또 추가 자본확충이 필요할 때 현재 편성 중인 2017년 본예산에 반영하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규모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제시한 자본확충 규모인) 11조원은 6개월 정도의 한시적 역할과 2개(조선·해운) 업종의 3개 기업 정도를 처리할 수 있는 규모다. 좀더 광범위한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경락 노현웅 송경화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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