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유불리만 따지고 보신주의에 빠져.. 山으로 간 구조조정

이진석 기자 2016. 6. 8.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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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의 적들] [2] 청와대 西별관회의 - 경제 논리 실종 不實기업 떠안은 산업은행.. 경제수석·부총리 등에 휘둘려 不實폭탄 해체하는게 아니라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꼴 - 전문가들 "밀실 행정 없애라" 명실상부한 역할 못한다면 다른 협의체에 권한 넘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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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별관회의는 경제 분야 최고위급 회의인데도, 엉뚱하게도 정치 논리가 앞서기 일쑤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보다 문제를 덮고 미루는 일이 벌어진다. 부실기업을 회생시킬 경제 처방보다 실업과 경기에 미칠 당장의 타격을 먼저 걱정하기 때문이다. 정권 차원의 유불리를 잣대로 정책을 평가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이러다 보니 정부 출범 초기에는 실업과 경기 후퇴 등을 우려해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기를 꺼린다. 국책은행들을 동원해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기업재무개선작업)으로 시간을 벌려고 하다가 번번이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한 전직 경제 관료는 "수술이 필요한 응급 환자에게 진통제 처방만 해왔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산은이 주도한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으로 4조5000억원을 지원받고도 회생에 실패, 지난달 말 법정관리를 신청한 STX조선해양에 대한 처리 방안이 결정된 곳도 서별관회의였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3~4월 서별관회의는 대량 실업과 경기 침체를 우려해 산업은행을 동원해 자율협약을 강행했다. 하지만 3년 만에 참담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실세들 파워 게임까지 벌어져

구조조정을 다루는 서별관회의는 가장 경제 논리에 충실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경제 논리가 사실상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참석자들 간의 '파워 게임'으로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7월 국토해양부는 DTI(총부채상환비율)와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규제 완화를 생각하고 있었다.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세상에 영원불변한 정책은 없다"고 완화를 예고한 상태였고, 서별관회의도 완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런데 백지화됐다. 당시 백용호 정책실장이 제동을 걸었다. "친(親)서민과 무관한 정책"이라는 이유였다. 사실은 불과 일주일 뒤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경제수석 그리고 경제부총리와 회의를 하니 산은 회장들의 논리는 뒷전으로 밀릴 때가 잦았다. 일부에서 "서별관회의에서 산은 회장들은 린치를 당했다"는 말도 나온다. 물론 예외는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 멤버로 참가했던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은 "STX팬오션을 산은이 맡아달라"는 경제수석의 요구를 거부했다. 홍 전 회장이 버티는 바람에 두 차례나 이 문제로 서별관회의가 열렸지만 홍 전 회장은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를 관철시켰다.

서별관 회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부터 시작됐다. 정책 조정 과정이라고 하지만, 조정보다 결정이 주로 이뤄진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정책부터 이란 금융 제재,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대책이 다뤄졌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례화됐고, 참석자들이 도시락을 먹으면서 회의를 해 '도시락 회의'로도 불렸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존치 논란이 있었지만,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일요일에 여는 것으로 유지됐다.

정치 논리로 문제 해결 미루기 일쑤

서별관회의가 경제 논리보다 정치 논리에 휘둘리다보니 구조조정이 뒷북을 치고, 속도를 내지 못한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경기 후퇴 등을 우려해 구조조정을 미룬다. 지난 2013년 STX조선해양의 경우처럼 산은 등을 동원해 자율협약이라는 미봉책을 앞세운다. 법정관리는 구조조정의 한 방법인데도 기피한다. 정부가 실패해 법원에 맡긴다는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렇게 임시방편으로 덮어놓은 문제들은 상당 부분 정권 후반부에 가서 둑이 터졌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 완화는 이명박 정부에서 터졌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부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더 미룰 수 없게 된 집권 4년 차에야 손을 댔다. 총 30여 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현 정부도 똑같은 모습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조선업 불황이 장기화되고 업황 전망도 불투명했지만 대량 실업과 경기 침체를 우려해 구조조정을 미뤄왔다.

게다가 집권 후반기에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면 관료들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조선업과 해운업 구조조정을 하는데 일부를 제외하고는 장차관급 관료들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한다. 제대로 일이 안 된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문제가 된 기업 부실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곳은 서별관회의였다"며 "명실상부한 구조조정 사령부 역할을 하든지, 그게 아니라면 다른 공식적인 협의체에 기능을 넘기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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