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 확장·도덕적 해이..결국 법정관리 간 STX조선

2016. 5. 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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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 3위 호황에 도취 / STX다롄 건설 등 무리한 해외투자 / 중국업체와 출혈경쟁.. 적자 눈덩이 / 경영진 부실 덮으려 회계조작도

2008년은 조선업계가 누린 호황의 끝자락으로 기억된다. 그해 STX조선해양은 연간 수주 실적에서 세계 3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더불어 ‘빅4’로 불리기까지 했다. 2001년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을 인수해 STX조선을 출범시킨 강덕수 회장이 ‘월드 베스트’라는 그룹 비전 아래 끊임없는 인수·합병(M&A)을 통해 7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당시 강 회장은 STX그룹을 재계 13위로 키워 ‘샐러리맨 신화’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STX호’는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25일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 작업장에서 직원들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회사 밖으로 나가고 있다. 채권단은 이날 STX조선해양의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창원=연합뉴스
◆무리한 사업 확장과 저가 수주, 부도덕한 경영관리로 침몰

물불 가리지 않은 외형부풀리기가 화근이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25일 “호황에 도취한 STX는 중국에 STX다롄을 건설하고, STX유럽을 인수하는 데만 3조5000억원을 투자하며 몸집 불리기에만 열중했다”면서 “해외투자 대부분이 회수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러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됐다”고 전했다.

2008년 하반기부터 세계경제를 강타한 금융위기 여파로 수주 경쟁이 극심해진 점도 위기를 증폭시켰다. 수주 ‘가뭄’을 맞아 저가 공세로 나선 중국 업체와 출혈경쟁을 벌인 것이다.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불거진 자금난을 해결하기에 급급했던 STX는 역량상 정상 건조가 불가능한 선박까지 손을 댔다. 저가 수주가 반복되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다. 2013년 적자 규모가 무려 1조5000억원에 달했다.

게다가 강 회장 등 기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까지 불거지면서 경영위기에 직면했고, 2013년 3월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부실을 덮고자 회계정보까지 왜곡했다는 비판과 함께 강 회장을 비롯한 당시 경영진 6명은 횡령과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0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채권단은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KDB산업은행 본점에서 회의를 열고 STX조선해양 법정관리 신청을 논의했다. 사진은 회의가 열린 산은 입구.
연합뉴스
◆채권단의 수주 회복 막연한 기대도 화 키워

채권단 관리 아래 STX는 3600여명이던 직원을 2400여명으로 감원하며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채권단도 2조원대의 출자전환과 함께 신규 자금 4조5000억원을 수혈했다. 그러나 고부가가치 선박보다는 벌크선 등 중대형 범용선을 주로 건조했던 STX조선은 좀처럼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4년과 2015년 영업손실이 각각 3137억원, 2108억원에 달했고 올 1분기에도 436억원을 기록했다. 자율협약 개시 당시인 2013년 4월 기준 수주 잔량에서 세계 5위의 위상을 발판으로 수주를 늘려갈 것이라는 채권단의 예상은 공염불에 그쳤다. 작년 말 이후에는 신규 수주가 아예 끊겨 미래마저 불투명해졌다.

공동관리 과정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채권단은 지난해 말 추가로 4000억원을 지원하고 ‘특화 중소형 조선사’로 탈바꿈시키는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우리·KEB하나·신한은행 등 시중은행들이 반대매수 청구권을 행사하고 탈퇴하는 바람에 채권단에는 산업은행(48%), 수출입은행(21%), 농협(18%) 등 국책·특수은행만 남게 됐다.

채권단도 STX의 법정관리 전환으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대출과 지급보증을 비롯한 채권단의 STX 익스포저는 모두 6조원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자율협약 이후 신규 자금 지원액인 대출과 선수금환급보증(RG)이 4조원을 차지한다. 업계에서는 채권단이 2조원을 웃도는 충당금을 적립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의 손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STX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건조를 맡긴 발주처에서 RG를 요구하면 이 또한 물어줘야 할 판이다. RG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채권단의 자율협약을 통한 STX 지원에도 회생에 실패하면서 자율협약의 효용성에 대한 비판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전날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8월 20일 기준으로 산은이 채권을 보유한 99개 구조조정 기업의 재무상황을 분석한 결과 자율협약이 결코 선제적인 구조조정이라고 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대규모 기업의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불투명한 관치금융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계식 기자 cul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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