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랜드, 카피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김영인 2015. 12. 2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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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소 머플러 업체 대표의 호소

"이랜드(E-LAND)에 하고 싶은 말이요?"
"카피(베끼기)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디자이너들도 많을 텐데, 카피를 해서 제품을 만든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습니다."

머플러 등을 만들어 파는 L사 대표의 호소입니다. 원망의 대상은 이랜드입니다. L사의 연간 매출액은 2억 원이 조금 넘습니다. 창업한 지 3년 됐습니다. 서울 송파의 한 창고에서 시작해 최근 강남 외곽의 한 오피스텔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날갯짓을 시작한 회사입니다.

36년 역사의 이랜드는 연간 매출이 10조 원이 넘죠. 패션사업으로 시작해 유통·외식 등 거침없이 사업을 확장 중입니다.

두 회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 L사 머플러가 ‘도플갱어’를 만났다!

'도플갱어'란 꼭 닮은 사람을 말합니다. 아래 두 사진을 보시죠.

▲ (왼쪽) L사 머플러 (오른쪽) 이랜드 머플러

왼쪽은 중소업체인 L사가 1년 전 출시한 머플러, 오른쪽은 패션 대기업 이랜드가 지난달까지 판매한 머플러입니다. '도플갱어', 과장된 표현일까요?

▲ (왼쪽) L사 머플러 (오른쪽) 이랜드 머플러

두 머플러를 비교해보면, 길이와 폭, 줄무늬의 위치와 크기 등이 매우 흡사합니다. 가격은 어떨까요? 이랜드는 이 머플러를 23,900원에 팔았습니다. 68,000원인 L사 가격의 3분의 1에 불과합니다.

L사 제품이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L사 대표는 "개발비와 포장비, 배송비 등이 포함된 정당한 가격"이라고 말했습니다. 똑같은 디자인, 하지만 큰 가격 차이...L사는 항의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소비자들이나 저희 거래처 쪽에서 왜 똑같은 제품인데 판매를 비싸게 하느냐고 항의 전화가 있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너무 큰 스트레스였고요." (L사 대표)

■ “미안하다, 합의하자.” → “흔한 디자인, 카피 아니다.” 말 바꾼 이랜드

디자인을 도용당한 사실을 알아차린 L사는 11월 20일, 이랜드에 항의했습니다.

"우리 쪽에서 연락을 취하자마자 정말 한 시간도 안 돼서 우리 사무실 쪽으로 와서 카피해서 죄송하다고 얘기를 했고..."(L사 대표)

사흘 뒤인 11월 23일, 이랜드는 L사에 합의문까지 보냈습니다.

▲ 이랜드 합의안

합의금으로 500만 원을 주겠다,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 문제 상품을 판매 중지했으며, 재고는 모두 태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랜드 측은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 이랜드와 L사 사이 휴대전화 메시지

L사와의 연락과 만남을 피하며 일부 언론과는 "흔한 디자인이라 카피가 아니"라는 인터뷰를 합니다. 이랜드 관계자는 KBS와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진은 그래 보이고 소재까지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이 스트라이프(줄무늬)가 비슷한 브랜드가 굉장히 많이 있더라고요."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 유행가 가사를 떠오르게 하는 답변입니다.

■ 카피(베끼기)는 정말 우연일까?

이랜드 말대로, 흔한 디자인이라 비슷할 수도 있는 것을 너무 정색하고 비판하는 걸까요? 잠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을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왼쪽은 이랜드의 SPA(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 '슈펜'에서 판매하는 신발이고, 오른쪽은 이탈리아 브랜드 '조슈아 샌더스'의 신발입니다. 물론, '조슈아 샌더스' 제품이 먼저 출시됐습니다.

▲ (왼쪽) 이랜드 ‘슈펜’ 신발 (오른쪽) ‘조슈아 샌더스’ 신발

두 신발 모두 회색 바탕에 검은색 N, Y,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오른쪽에 N, 왼쪽에 Y, 새겨진 위치도 똑같습니다. 양쪽으로 갈라져 흘러내리는 발등 부분 디자인까지 동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랜드 측은 베끼기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N,Y가 뉴욕의 약자니까 패션에서 많이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신발 골도 조정했고요." (이랜드 관계자)

이렇게 '베끼기'를 부인하는 이랜드도 지난 국정감사 때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이랜드 리테일 대표는 지난 9월 특허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내 중소기업의 장식물 디자인을 도용한 것에 사과했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사례와는 다른 건입니다.

■ “죄의식 없이 상습적으로 카피(베끼기)” 이랜드 前 직원의 폭로

연 매출 10조 원이 넘는 회사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의문에 대한 해답은 이랜드 前 직원이 보낸 메일을 통해 풀릴 수 있었는데요.

▲ (왼쪽) 이메일 일부 캡처 (오른쪽) 이랜드 사옥

소비자와 이랜드에 묻고 싶습니다.

소비자분들, 베낀 제품인 줄 알면서 그동안 싸다는 이유만으로 사지는 않았는지요?
이랜드 분들, 함께 일하셨던 분이 "죄의식 없이 상습적으로 베낀다"고 말하는데
여러분 회사의 기업 문화가 진정 건강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며, 마지막으로 '이랜드맨'으로서 희망을 품다 절망에 꺾인 한 직원의 폭로 내용을 전합니다. 신원이 드러나는 부분은 익명 처리했습니다.

▲ 이랜드 前 직원의 이메일 폭로

왜 이랜드가 카피에 집착하는데 그 배경에 대해 제보를 하고자 이렇게 이메일을 드립니다.

(1) 일단 이랜드라는 기업의 출발점에서 시작합니다. 박성수 회장님께서는 처음에 보세 상품을 판매하는 것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즉, 수출을 하는 명목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상품을 '몰래' 띄어다가 파는 것이 회사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법으로 하면 이것도 불법입니다.

문제는 회사의 출발점이 이렇다 보니 회사를 오래 다닌 분들은 법적인 문제에 대한 개념이 약합니다. '회장님도 불법적인 보세에서 사업을 시작하셨으니 어느 정도는 용인되어도 된다'는 것이 많은 분의 생각입니다.

(2) 또 한가지는 '그래도 우리가 제일 깨끗하고 남들이 다 타락했다'는 선민의식입니다. 이랜드는 술·담배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회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술 접대는 물론 뇌물도 주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많은 이랜드 분들이 '이랜드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회사이고 다른 회사들은 모두 타락했다.', '이랜드가 약간의 불법적인 잘못을 저질러도 다른 회사들은 더 하다'는 생각을 하고 어느 정도의 불법에 대해서는 용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이랜드는 싼값으로 좋은 디자인의 옷을 국민들이 입을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회사다."라고까지 얘기합니다.

(3) 지나치게 수익성을 강조하는 현재의 작업 방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이랜드에서는 어떤 옷을 디자인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작업을 합니다.

a) 길에서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사진을 수천 장 찍고 이를 스타일 또는 색깔별로 분석합니다.
b) 미국에서 팔리고 있는 옷들을 잔뜩 사옵니다. 주로 갭, 자라 등에서 사옵니다.
c) 그리고 이러한 자료를 참조하여 디자인을 하는데 문제는 어떤 디자인이 좋은지 나쁜지 평가를 할 때 과연 그런 성공사례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집니다.

한 마디로 처음 선보이는 디자인은 퇴짜를 맞고 성공사례가 있는 디자인이 통과되기 때문에 기존 경쟁사 제품을 참조한(실제로는 베낀) 디자인이 채택됩니다.

이랜드에서는 '경쟁사 제품 RE'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경쟁사 제품을 리엔지니어링 한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카피하는 것입니다. 카피라는 표현을 못 하니까 RE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올해에는 심지어 회사에서 '모델 브랜드를 어디까지 베껴야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없는지'에 대한 카피 가이드라인을 주기도 했습니다.

(4) 임원들이 카피를 하는 것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나쁘다는 죄의식이 없습니다. 사례를 몇 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랜드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부장급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참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경쟁 브랜드 제품이 예쁘면 몰래 단추를 떼어 오기도 했다. 요새 애들은 이런 근성이 없다."라며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중국법인 사장인 ○○○ 사장님께서는 중국BG 직원 대상 강의에서 현재 CDO(최고디자인책임자)인 ○○○ 이사가 중국 회사의 쇼룸에서 디자인을 몰래 베끼다가 업체로부터 항의를 받았다며 모두 조심하라는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연관 기사] ☞ [뉴스9] ‘패션 대기업’ 이랜드, 중소업체 ‘목도리 도용’ 논란

김영인기자 (heema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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