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홍수 속 못 믿을 통계들

강아름 입력 2015. 11. 17. 04:44 수정 2015. 11. 1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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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청약률, 깜깜이 분양계약률

알바 동원해서 청약률 높이고, 계약률은 감추고

'청약 부풀리기' 경쟁 탓에 일부 단지에서는 ‘알바’를 동원해 경쟁률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실수요자들이 제대로 판단하고 아파트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청약경쟁률의 투명성 확보와 더불어 분양계약률도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은 방문객으로 북적이고 있는 경기도 남양주의 한 아파트 견본주택 현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에 사는 20대 대학생 김모씨는 몇 달 전 분양 업체 지인으로부터 ‘청약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았다. 백화점 상품권 20만원을 줄 테니 자신이 분양하는 단지에 청약하라는 권유였다. 김씨는 ”아는 사람 부탁인데다, 당첨이 된다 해도 계약을 하지 않고 다시 통장을 만들면 1년 후 자격 조건이 생기니 별 고민 없이 청약에 참여했다”며 “나뿐만 아니라 청약통장이 있는 다른 친구들도 이런 아르바이트에 자주 동원된다”고 말했다.

올 들어 전국적으로 분양 붐이 불고 있지만, 실수요자들이 믿고 판단할 관련 통계는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일부 건설사들의 ‘청약 부풀리기’ 경쟁 탓에 청약률은 왜곡되기 일쑤고, 실제로 팔린 수치를 보여주는 계약률은 영업기밀을 이유로 업체에서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리한 부분은 가리고, 유리한 수치는 과대홍보하고 있는 셈인데 전문가들은 수요자들의 알 권리를 위해 투명하고 정확한 통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청약률이 높았던 단지에서 계약을 100% 끝내지 못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분양 열기가 가장 뜨거운 부산의 경우 동래구에서 분양한 ‘동일 스위트’ 아파트는 지난 8월 청약 당시 일반분양 577가구 모집에 2만6,454명이 몰리면서 평균 45.8대1로 1순위 청약을 끝냈지만 실제 계약은 70%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달 분양한 부산 모라동 ‘사상 구남역 동원로얄듀크’ 역시 일반분양분 426가구에 1만2,047명이 몰려 평균 28.3대1로 일찍 ‘완판’했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니 26% 정도가 미분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도 비슷하다. 고분양가 아파트로 유명세를 탄 서울 ‘반포 푸르지오 써밋’ 역시 평균 21대 1의 경쟁률을 보였지만 100% 계약엔 실패했다. 뜨거운 분양 열기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미분양 수치가 8월 3만1,698가구에서 9월 3만2,524가구로 한달 새 1,000여가구가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평균 두 자릿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과열된 청약 시장에 비해 계약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데에는 여러 조건들을 저울질한 끝에 포기하는 수요도 있지만, 애초 경쟁률에 ‘거품’이 낀 경우가 많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한 분양홍보대행사 관계자는 “높은 경쟁률은 청약 당첨자가 실제 계약을 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고 나중에 분양권 거래 시 프리미엄을 얹는 데도 도움을 주기 때문에 일부 분양업체에서 지인들을 모으거나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해 청약경쟁률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특히 대규모 단지에서 이런 ‘청약 아르바이트생’들이 자주 동원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00세대가 넘는 단지들은 1~3차 형태로 몇 백 가구씩 나눠 분양을 하는데 1차 때 청약 경쟁률이 높은 경우 2, 3차는 쉽게 분양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아 1차 청약 때 사활을 건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약 경쟁률에 거품이 끼는 경우가 많은 탓에 계약률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건설사들의 강한 반발로 공론화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국토부가 매달 미분양 주택 수를 발표하고 있지만 이는 서울, 경기, 부산 등 지역별로 통합한 수치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계약률을 알기 위해서는 개별적으로 해당 건설사에 문의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실정. 하지만 건설사들은 저조한 계약률을 공개하는 경우 자칫 다른 사업장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회사 방침상 알려줄 수가 없다”는 등의 명분을 내세워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관 부처인 국토부 역시 부작용을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계약률 공개를 계속 고민은 하고 있지만 부작용과 건설사들의 반대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며 “낮은 수치가 알려지면 분양 받은 사람이 계약을 포기해 더 미분양이 쌓일 수 있고 심각한 경우 사업중단, 건설사 파산 등까지 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측만 배려한 통계정책 탓에 결국 소비자만 그 피해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단지별 계약률 등 정보가 열려있어야 수요자들이 시장 변화상황을 감지할 수 있고 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며 “건설사 입장에서도 더욱 신중하게 사업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입지부터 분양가 책정까지 지금보다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계기업도 정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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