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카드 만지작..정부 좀비기업 솎아낸다

노영우,박준형,전범주,정석우 입력 2015. 9. 30. 18:49 수정 2015. 10. 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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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그룹 계열사중 17곳이 만성 부실기업3년연속 이자보상배율 1미만 퇴출 1순위에너지·조선·바이오업종 만성 부실 심각

◆ 기업發 경제위기 ① ◆

30대 그룹 계열사로 한때 태양광실리콘 잉곳 생산량 전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던 넥솔론은 살아 움직이는 기업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회사는 글로벌 공급과잉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 세계에서 추진하던 대규모 태양광 프로젝트가 무한정 연기되기 시작했다. 반대로 중국은 현기증 날 정도의 돈을 쏟아부으며 태양광발전 설비 증설에 나섰다. 2008년 당시 세계 10대 태양광 잉곳 업체 중 중국 업체는 1개뿐이었지만, 2010년 이후에는 7~8개가 중국업체로 바뀌었다. 넥솔론은 자금조달을 위해 증시 상장(IPO) 카드를 뽑아들었지만, 얼어붙은 자본시장에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넥솔론 경영진은 중국의 덤핑공세 앞에서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공장가동 중지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공장을 멈추면 고정운용 비용은 물론 은행 이자도 제대로 갚을 수 없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덤핑 대열에 동참했다. 결국 넥솔론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2014년 8월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

'큰형' 격인 모 회사는 블랙카본과 염화칼슘 등 기존 탄탄한 화학 사업구조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3년 연속 이자도 못갚는 만성부실 좀비기업군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증시에 상장한 234개 기업이 최근 3년 연속 빚의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만성부실 상태에 빠져 있다. 국내 상장사 7곳 가운데 한 곳은 좀비기업인 셈이다. 여기에는 대한항공 한진해운(한진), 현대상선(현대), 아시아나항공(금호아시아나),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두산), 동국제강(동국제강), 코오롱글로벌(코오롱), OCI 넥솔론(OCI), KCC건설(KCC), LS네트웍스(LS), 동부건설 동부하이텍(동부), 포스코플랜텍(포스코), 현대정보기술(롯데), SKC솔믹스(SK) 등 30대 그룹 계열사(2014년 말 기준)도 17개나 포함됐다. 만성부실에 빠진 234개 기업은 지난 3년간 연평균 94조8000억원의 기업 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상장사 부채총액의 13.7%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5~2007년 상황과 비교하면, 한계에 몰린 좀비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부채를 지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3년 동안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상장사는 총 313개로, 이 기업들은 연평균 22조6786억원의 부채를 지고 있었다. 최근 3년간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의 수는 금융위기 직전 기간보다 79개 줄었지만, 부실기업의 부채 규모는 4배나 늘어난 셈이다. 부실기업 한 업체당 짊어지고 있는 부채 규모로 환산하면 그 차이가 5배를 훨씬 넘어선다.

좀비기업 수는 줄었지만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부채 규모와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는 건, 대기업과 중견그룹으로까지 부실이 전이되면서 좀비기업의 악성부채가 국가 경제의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된다.

정부는 수익이 나지 않아 빚을 얻어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좀비기업들을 연내에 본격적으로 구조조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금융연구원을 중심으로 한 전문가 그룹에 구조조정 대상 후보군을 추리기 위한 기준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1차적인 구조조정 후보군으로 관리되고, 금융사에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면 돈줄을 죄는 방식으로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떨어지고 대내외 경제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기업에 계속 연명용 자금을 투입하는 건 위기를 키우는 격"이라며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대내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르면 연내 시작될 기업 구조조정의 첫 번째 기준은 '최근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미만' 이라는 허들이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박사는 "3년 연속으로 영업이익이 적자이거나 돈을 벌어도 이자조차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은 금융지원을 계속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해봐야 할 좀비기업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동 차의과학대학 교수(회계학)는 "개별 재무제표 기준으로 3년간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거나 마이너스인 기업들은 저수익·고부채의 특성을 갖춘 위험한 기업들로 봐도 무방하다"며 "결국 돈을 벌지 못하고 빚이 많은 기업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하면 3년치 이자보상배율을 1차적인 구조조정 잣대로 쓰는 건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일차적으로 이 기준을 적용한 후 각 산업의 특성과 미래 성장성, 국가 기간산업 여부 등에 따라 구조조정 여부가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적기 항공사들은 전형적인 저수익·고부채 구조로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었다. 하지만 비싼 항공기를 수백 대씩 리스하는 사업구조상 고부채 구조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점과 국적항공사라는 점 등을 감안해 구조조정 여부가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업종별로 수익성 악화에 따른 재무 부실이 가장 심각한 곳은 석유·가스·신재생 등 에너지 관련 업종으로 나타났다. 장치산업으로 대형 투자가 필요한 데다 최근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에너지 시설 및 서비스 업종에선 OCI, 포스코플랜텍, 넥솔론, 웅진에너지, 신성솔라에너지, 한솔신텍, 유니슨 등 12개 업체가 부실기업으로 분류돼 해당 업종의 40%가 부실화됐다. 대성산업, 리젠, 키스톤글로벌 등 6곳의 부실업체가 발생한 석유 및 가스업종도 37.5%의 부실화 진행률을 보였다.

서서히 침몰하고 있는 조선업의 부실도 심각했다. 24곳 조선사와 부품업체 중 부실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한진중공업, 현진소재, 오리엔탈정공 등 8곳이었다. 하지만 올해 실적까지 포함할 경우,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만성 부실기업에는 현대미포조선, STX중공업, STX엔진, 두산엔진 등이 포함된다. 2014년 수조원대 적자를 고백한 현대중공업과 올해 고해성사에 나선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도 앞날이 어둡다.

대표적인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바이오업체들은 35개 상장사 중에 13곳이 만성부실 상태에 빠져 있었다. 성장성을 내세우며 많은 기업들이 증시에 입성했지만 수익을 내는 업체는 많지 않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기업 부채가 크게 늘고 있는 건 기업들이 투자가 아닌 운영자금 용도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국 중후장대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신성장 산업에서 중견기업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서 생기는 구조적인 문제다"고 지적했다.

■ 어떻게 조사했나

기업의 영업이익이 이자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자보상배율을 부실기업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한 해 일시적인 요인에 따라 이자를 못 갚을 수도 있다. 이 때문에 3년 연속 이자를 못 갚는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정의했다. 매일경제는 이번에 2012~2014년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금융사 제외) 1684곳을 대상으로 금감원 전자공시 자료를 토대로 에프앤가이드가 이자보상배율을 집계했다. 계열사와 별개로 개별 기업의 실적과 재무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IFRS 개별재무제표를 사용했다. 234개 부실기업 전체 리스트는 매경 홈페이지(www.mk.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별취재팀〓노영우 차장 / 박준형 기자 / 전범주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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