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 금맥 찾다] 답답한 도시 떠나 농촌에서 금맥 찾다

2013. 7. 24.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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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은퇴하고 귀농하는 건 어때?" "텃밭에서 농작물 키우고 아이들은 자연에서 뛰어놀고…. 정말 꿈만 같네." 대한민국에 농촌 바람이 불고 있다.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서 여유로운 노후생활을 즐기려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나이가 지긋한 중장년층이 생각하는 귀농만이 아니다. 20~30대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도 IT와 결합한 최신 농작물 재배 기술을 무기로 농촌에서 억대 연봉의 꿈을 키우고 있다. 농촌이 실직자, 은퇴자의 도피처가 아닌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되고 있는 셈이다.매경이코노미는 농촌에서 금맥을 찾는 이들 스토리를 소개한다. 낭만이 아닌 현실이 된 농촌생활에서 인생 2막을 어떻게 개척해야 할지에 대한 열쇠가 되리라는 희망으로.

귀농·귀촌 열풍

휑한 농촌은 옛말, 젊은이와 일거리 넘쳐나

강원도 정선군 '개미들마을'에서 고추 농사를 하는 정 모 씨(55). 그는 원래 농사의 '농' 자도 몰랐다. 서울에서 수영강사 생활을 하던 그는 2003년 당시 어린 아들이 아프기 시작해 귀농을 알아보게 됐다. 아픈 아들을 위해서라도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농사를 지으며 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귀농을 계획했다.

하지만 귀농은 환상이 아닌 현실이었다. 아파트를 판 돈으로 땅을 구입하니 여유자금이 바닥나 어떻게 생활비를 마련해야 할지 막막했다. 고민 끝에 그는 고향에서 익숙히 봐온 고추 농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600평 땅에 고추 농사를 지으며 대박을 꿈꿨다. 결과는 대실패. 고추 상태가 좋지 않아 200근을 남기고 모두 버려야 했다. 고추가 기후에 민감하고 병들기 쉬운 작물이라는 점을 몰랐던 때문이다.

대기업 대신 농촌 취직하는 '취농' 늘어

처절한 실패는 도리어 약이 됐다. 이를 경험으로 삼아 '고추박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수년에 걸쳐 고추 품질을 연구한 끝에 100% 비닐하우스 자연건조 방식의 명품 태양초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버린 고추가 몇천 근,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원이었지만 아까워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느새 정선군에서 가장 큰 고추 농사를 짓는 전문 농업인이 돼 있다. 정 씨는 "귀농을 쉽게 생각하지 말고 처음 5년 정도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농사에 몰두해야 한다. 도시인으로서 틀에 박힌 사고방식, 생활습관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로 이주하는 귀농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가구는 1만1220가구(1만9657명)로 2011년보다 무려 11% 늘었다. 2002년만 해도 769가구에 불과했던 귀농가구는 2004년 1000가구, 2009년 4000가구를 돌파한 후 비약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귀촌가구(1만5788가구, 2만7665명)까지 포함하면 귀농·귀촌가구는 3만가구, 5만명에 육박한다. 여기서 귀농과 귀촌 개념은 엄연히 다르다. 귀농은 농업을 전문 직업으로 해서 수익을 내는 경우를, 귀촌은 전원생활을 하면서 농촌과 관련된 부가 수입을 내는 경우를 가리킨다. 시골에 내려와 사는 걸 통칭해서 귀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귀농 바람은 은퇴를 앞둔 50대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대부분 농촌 출신인 이들은 유년 시절의 아련한 향수를 좇아 귀농을 꿈꾸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젊은이들도 귀농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도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귀농하는 20~30대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아예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새 일자리를 찾는다 해서 '취농'이란 말까지 붙었다.

농업이 새로운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자리 잡아 대기업 못지않은 수입을 올리는 젊은 부농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 전국적으로 농수산물 판매로 연간 1억원 이상 벌어들이는 농가만 2만6000가구에 달한다. 경기도 파주에서 국화 농장을 운영하며 연매출 5억원을 올리는 구강회 상광농장 대표도 대표적인 30대 젊은 부농이다(커버스토리 사례 기사 참조). 농촌은 더 이상 사람들이 줄줄이 떠나는 휑한 공간이 아닌 인생 2막을 위한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귀농인들은 어떤 지역을 선호할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북으로 귀농한 가구가 2080가구로 가장 많았고 이어 전남, 경남, 전북, 충남순이었다. 도시별로 보면 경북 상주시가 단연 으뜸이다. 지난해 1년 동안 비도시 지역이 많은 시군구 중 인구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상주시(8173명 증가)였다. 경북 일대가 귀농 지역으로 인기를 끈 건 지자체 지원책 영향이 컸다. 경상북도에서는 2010년 전국 처음으로 귀농인 인턴 지원 사업을 도입했고 지난해부터는 귀농인에게 농어촌진흥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귀농인 인턴제는 귀농을 희망하는 사람이 일정 기간 동안 농가에서 농업 창업을 위한 기술, 노하우를 익히고 농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전북 남원시도 귀농인들에게 주택 마련비를 최고 4000만원까지 저렴한 이자로 빌려주고 집 수리비 500만원도 융자해준다. 멀리 제주도로 귀농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30~40대 젊은이들부터 50대 베이비부머 은퇴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제주에서 인생 2막을 꾸린다. 세컨드하우스나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제2의 삶을 시작하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귀농 트렌드도 점차 바뀌고 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만 해도 회사에서 대량 실직한 직장인들이 어쩔 수 없이 농촌에 정착하는 '생계형' 귀농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생계형 귀농은 줄어들고 스마트형, 전원생활형, 노후생활형 귀농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형 귀농은 자본, 기술을 갖고 농촌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청장년층 위주의 귀농을 말한다.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하거나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후 IT와 농업을 결합한 융복합 농업을 추구하면서 억대 부농으로 성장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농업에 디지털, 모바일 기술을 결합해 소비자가 시장에 가지 않고도 직접 농산물을 확인할 수 있어 직거래, 공동구매가 활성화된 덕분이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를 통해 친환경농산물 판로를 개척하거나 태블릿PC를 활용해 암소 수정시기, 품종 관리를 DB(데이터베이스)화해 우수 품질의 송아지를 생산하는 식이다.

이에 비해 전원생활형은 청장년층이 은퇴 이전에 농촌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텃밭을 경작하는 동시에 전원생활까지 즐기는 부류다. 일부는 소규모 영농에 종사하면서 지역 주민과 함께 창업 아이디어를 발굴한다.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지역사회 활성화에 기여하는 이들도 많다. GS칼텍스 상무에서 경기도 양평 그린토피아 농촌체험농장주로 변신한 정경섭 씨도 연매출 10억원을 올리는 어엿한 전원생활형 귀농인이다(커버스토리 사례 기사 참조). 마지막으로 노후생활형은 은퇴 후 노후생활 터전으로 농촌을 선택하고 양봉, 버섯 등 소규모 농사를 지으며 소일거리를 하는 형태다.

물론 귀농생활이 결코 호락호락하진 않다. 편리한 도시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이것저것 생활이 불편한 귀농은 오히려 악몽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귀농인은 대부분 농촌에 땅을 사서 어엿한 집을 짓고 블루베리, 파프리카, 고추 등 다양한 작물 재배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농작물 재배 경험이 부족해 품질 관리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데다 고정적인 판매처를 찾기 어렵다. 겨우 농작물 판로를 찾아도 원가를 제외하면 손에 쥐는 돈은 용돈 몇십만원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지를 구입하는 데 대부분 자금을 소비해 여유자금이 모자라면 그동안 준비해온 과정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기 십상이다. 김경래 OK시골 사장은 "귀농은 도시생활을 잠시 접고 떠나는 관광이 아니다. 이민을 하듯 새로운 터전에서 남은 인생을 모두 걸겠다는 각오로 시작해도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고 지적한다.

귀농 지역을 잘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녀 교육 문제 등 생활 여건과 작물 입지 조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실패가 없다. 본인 의견만 고집할 게 아니라 가족이 원하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참고해 거주지 범위를 좁혀나가야 한다. 딱 한 지역을 꼽기 어렵다면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 '3.3㎡당 땅값이 300만원 이하이고 병원이 가까운 지역' 등 조건을 정해보는 것도 좋다. 몇 곳 후보지를 정했다면 직접 현장을 방문해보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거주 여건을 미리 체크해보면서 최종 거주지를 낙점해야 한다. 농작물 경작 못지않게 마을 주민들과 관계를 잘 다져놓는 것도 중요하다. 마을 주민들과 소원해지다 보면 시골 텃세를 못 이겨 외톨이가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귀농 바람을 이어가려면 귀농인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도 중요하지만 정부 차원의 귀농 지원책도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에서는 귀농인구 유입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45세 이하 청년이 영농을 희망할 경우 7년에 걸쳐 일정 부분 급여를 지원해준다. 유럽연합(EU)에서도 2015년부터 농업을 시작하거나 시작한 지 5년 이내인 40세 이하 귀농인을 대상으로 5년간 청년농업인직불금 지급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수행 경기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업자나 은퇴자에 국한할 게 아니라 젊은 귀농인을 많이 유치하면 도시 잉여 노동력과 복지 부담을 농촌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예비 귀농인들이 농촌생활을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맞춤형 귀농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 김경민(팀장)·문희철·김헌주·강승태 기자·박진주 매일경제신문 기자 / 사진 : 류준희·윤관식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17호(13.07.24~07.30 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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