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봇물 터진 을의 분노.. 을달래기 나섰지만 불씨는 여전

고은경기자 김정우기자 2013. 6. 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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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유업 사태.. 그후 한달편의점·백화점·이통사 등 만연한 갑을관계 드러나갑을 명칭 없애는 등 뒤늦게 부산.. 시각이 변해야

5월3일 영업사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막말파문으로 시작된 남양유업 사태가 터진 지 한 달. 그간 억눌려있던 '을(乙)'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남양 사태 이전 '갑을관계'라고 하면 제조업이나 건설업의 원청ㆍ하청업체간 불공정 관계 정도를 의미했다. 하지만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입점 업체부터 식품업체 대리점,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가맹점, 이동통신사 대리점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갑과 을이 존재해왔다는 사실이 부각됐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상거래 관계가 대등한 계약 아닌 강자와 약자의 힘의 논리로 짜여져 있다는 의미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남양유업 사태 이후 전형적 '갑을관계'가 불거진 곳은 편의점이었다. 올해 들어 편의점 가맹점주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적 사건을 계기로 가맹점을 대상으로 한 특정상품 밀어내기, 끼워팔기 등 본사의 횡포가 세상에 알려지며 비난여론이 고조됐다. 특히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가맹점주가 잇따라 자살한 데 이어, 폐점시기를 놓고 갈등을 빚다 자살한 점주의 사망진단서를 변조한 것으로 확인돼 결국 회사대표가 나와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기도 했다. 이후 편의점 업체들은 앞다퉈 상생펀드마련, 신규출점제한, 분쟁해결센터 도입 등 상생협력 방안을 쏟아냈다.

사태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해온 다른 유통업체들도 뒤늦게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롯데마트는 각종 계약서에 협력업체를 '갑'으로 본사를 '을'로 표기하고 있는데 최근 한 직원이 나이가 많은 협력업체 직원에게 반말을 한 것이 알려지며 해당 직원을 2주간 대기발령 내는 초강수를 뒀다. 또 노병용 사장의 지시로 지난 4일부터 이틀간 협력업체 임원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갑을 교육 특강'까지 열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부터 계약서에 사용하던 '갑'과 '을'이라는 용어를 '백화점'과 '파트너사'로 바꿨고 온·오프라인상 모든 거래 계약에 '갑을' 표현을 쓰지 않도록 했다. 빙그레, 사조그룹 등 식품업체들도 윤리 경영을 강조하며 거래 업체들을 압박하지 못하도록 내부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엉뚱한 불똥이 튀기도 했다. 지난 4월 포스코에너지의 한 임원이 항공기 내에서 벌인 추태가 '갑을'논란으로 비화된 것. 아무리 '손님은 왕'이라지만 이 임원이 승무원에게 보인 행태는 단순히 개인적 자질 차원이 아니라, 오랜 '갑'의식의 발로라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미지가 실추된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이 직접 나서 사태진화에 나섰고, 그룹 차원에서 상생협력 강화방안을 내놓게 됐다..

정부 부처 가운데는 산업부가 처음으로 지난달 10일부터 기업·대학·연구기관과의 연구개발(R&D)사업에서 '갑, 을, 병'의 호칭을 쓰지 않기로 했다.

기업들은 갑을관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을까 집안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다양한 '을'지원책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이 '을'을 보는 근본적 시각이 달라지지 않는 한, 불공정한 거래관계의 틀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갑과 을의 명칭을 안 쓴다거나 지원기금을 만드는 식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에 대한 직원들의 압박감, 생산성 아닌 거래단가로 맞추려는 사고 등이 달라지지 않으면 제2의 남양유업 사태는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본사와 가맹점 간 불공정 거래와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착취 등을 막기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 성과공유제 도입 등이 좀 더 광범위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착취적 갑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도덕한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감시와 행동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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