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0만원 투자한 가게, 8개월 후 "나가라"

이성희 기자 2013. 5. 2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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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임차인 피해사례 보고

"세입자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임대인이라는 '갑'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이선민씨(37·여)는 2010년 9월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허름한 건물에 작은 카페를 개업했다.

친구와 돈을 합쳐 인테리어와 시설투자 등으로 총 6000만원을 들여 어렵게 문을 연 가게였다.

그러나 8개월 후 건물주는 "2개월 내에 나가라"고 통보했다. 재건축으로 빌딩을 짓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씨는 인근에 같은 규모의 카페를 낼 수 있도록 보상을 해달라고 하소연했지만 건물주는 1500만원의 보상을 제안했다.

힙합 그룹 '리쌍'이 소유한 건물에 상점을 갖고 있는 임차인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이를 거절하자 건물주는 2011년 10월 재건축 승인을 받고 '재계약은 없다'는 내용증명서를 보낸 뒤 명도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임대차보호법에는 건물주가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다고 돼 있다. 그 사유 중 하나가 '임대인이 목적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해 목적 건물의 점유 회복이 필요한 경우'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으나 각하됐다.

▲ "건물주가 재건축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퇴거 통보세입자 권리 무시, 계약 갱신 거절·임대료 폭탄도"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과 경제민주화국민본부 등이 28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마련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피해사례 보고대회'에서는 상가 세입자들의 한숨이 쏟아졌다. 임대차보호법의 허점 때문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의 권리를 무시하며 세입자를 거리로, 죽음으로 내모는 법"이라며 법 개정 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제주 연동의 일명 바오젠거리에서 49㎡(15평) 크기 꼬치집을 운영하던 박성준씨(27)도 이씨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지 1년 만에 새 건물주는 재건축을 이유로 점포를 반납하라고 일방 통보했다. 박씨는 "이곳에 있는 8개 점포들 중 영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채 안된 곳이 4개나 된다"며 "대부분 미혼의 젊은이들로 결혼자금을 털어넣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영세상인들"이라고 말했다.

보고대회에는 힙합그룹 리쌍이 소유주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건물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서윤수씨(36)도 참석했다.

서씨는 2010년 10월 권리금 2억7500만원과 시설비 1억여원을 투자해 곱창집을 시작했으나 지난해 5월 건물주가 리쌍으로 바뀌면서 장사를 그만둬야 할 처지에 놓였다. 리쌍 측이 재계약을 거부하고 나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현행 임대차보호법상 환산보증금(보증금과 월세를 합한 금액) 3억원 이하(서울기준)에 대해서는 임차인이 5년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서씨는 환산보증금이 3억원이 넘어 집주인이 재계약을 거부하면 현행법상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씨는 "내가 원하는 것은 법에서 보장한 대로 5년, 앞으로 2년 반 더 장사를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땐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겠다"며 "일부에선 '을'의 '땡깡'이라고 하는데 우리에겐 생계가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무국장은 "서울지역 상가의 75%가 환산보증금 3억원 이상이라 사실상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 이성희 기자 mong2@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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