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70년대 '공장 새마을운동' 닮은 하향식 생산성 운동 제안

박철응 기자 2013. 5. 2.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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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장관 "민관 공동 엔저 대응.. 상의에 본부 설치"전문가 "노동자 압박 수단 우려".. 기업들 "시대착오"

정부가 글로벌 경기불황과 엔저로 인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1970년대 '공장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생산성 혁신운동'을 제안하고 나섰다. 구호나 캠페인 방식의 생산성 독려가 21세기 산업구조에 맞지 않고 자칫 구조조정 등을 합리화해 노동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한덕수 한국무역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경제 5단체장들을 만나 "엔저 위기 대응의 핵심은 기업 생산성 혁신"이라며 민관 공동으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산업혁신운동 3.0'을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대한상의 내에 산업혁신운동 3.0 중앙추진본부를 설치하고 전자·자동차·기계 등 3개 업종에서 이 운동을 먼저 추진하기로 했다.

윤 장관은 "지난 1일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수출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단기 처방을 내놓은 만큼, 이제는 경제계가 기업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산업혁신운동 3.0은 1970년대 공장 새마을운동의 자조 정신을 계승하고 동반성장 활동을 대기업과 1차 협력사 관계에서 2·3차 협력사까지 확산하는 게 목표다. 산업부는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건설기계업체인 대모엔지니어링이 2·3차 협력사와 혁신단을 구성해 '3정(정품, 정량, 정위치), 5S(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 운동을 전개한 결과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사례를 대표 모델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저해하는 저임금 등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한 채 정부가 인위적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굳이 정리정돈 잘하기 같은 기초적인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산업 현장에서 불량률을 줄이는 등 혁신 운동은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면서 "금융위기 이후 일부 국가들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며 임금이나 노동자 구조조정에 나선 방식을 답습하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1970년대에 정부가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석유 파동이 일어나자 그 대응책으로 공장 새마을운동을 시작했는데 한 시간 일찍 나와 한 시간 늦게 퇴근하는 식이었다"면서 "만에 하나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흐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낮은 생산성은 대기업과의 불합리한 관계, 낮은 임금, 부족한 연구개발비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게 많다"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 굳이 인위적인 생산성 향상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농업적 근면성을 강조하던 시대의 구호같아서 퇴행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든다"며 "지금 산업 환경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핵심 요소는 창조적 아이디어나 기술 개발이지 작업 태도나 환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10대 그룹 관계자는 "경제단체가 주축이 돼 사업을 이끌어가는 하향식 추진방식은 기업들에 부담이 될 뿐 아니라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박철응 기자 h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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