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한국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 요동치는 환율시장,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 본격화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위기 국면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엔화 약세가 이어지면서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해져 북미시장 등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이는 주요 대기업들의 1분기 실적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우리 경제는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8개 분기 연속 0%대에 머무르는 난국"이라며 "기업 현장의 위기감은 상상 이상인데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내수 부진에 해외사업도 난항

2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1분기 매출이 작년 동기보다 6.0% 늘어난 21조3671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10.7%나 줄어 1조8685억원에 그쳤다. 판매량이 117만1804대로 9.2% 늘었는데도 이익은 감소했다. 전체 국외 판매는 10%대 증가했지만 유럽연합(EU)에선 10.9%나 줄었고 미국 내 판매 신장률은 0.5%에 그쳤다. 기아차의 매출액은 11조848억원으로 6% 줄었고 영업이익도 7042억원으로 35.1%나 감소했다.

건설업계는 한마디로 '어닝쇼크'를 겪고 있다. GS건설은 1분기에 535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삼성엔지니어링도 1분기 영업손실 2198억원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1분기 영업이익은 612억원, 대우건설의 영업이익은 1093억원으로 작년 동기에 비해 각각 25.1%와 3% 감소했다.

철강업계도 부진했다. 포스코의 1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보다 4.7% 감소한 7170억원이었다. 매출액은 14조5820억원, 순이익은 2920억원으로 10.6%, 54.1%씩 줄었다. 현대제철은 매출액 2조7804억원, 영업이익 1216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1.7%, 21.2%씩 감소했다.

주요 기업의 실적 악화에 엔화 약세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 큰 이견은 없다. 김재열 포스코 마케팅전략실장은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엔저로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기계 등 주요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예상된다"며 "엔저로 매출과 수익성이 감소하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시장 혼선 부추기는 정부·정치권

국회의 경제민주화 입법이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일본 엔화가치 하락에 이어 국회가 경제민주화 법안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활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의 활기 저하는 투자 감소로 나타났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4월 현재까지 상장회사의 신규 투자 관련 공시를 분석한 결과 63개 대규모 기업집단의 투자 발표는 6건에 그쳤다. 액수로는 지난해 약 3조3000억원에서 올해는 2조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공공정책연구실장은 "한쪽에서는 투자심리를 촉진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고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며 "양자 간 매치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경제민주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분위기에서 정부가 투자를 촉진하겠다며 규제완화책을 내놓더라도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쉽게 움직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대기업의 경우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 투자금을 쌓아두는 상황"이라며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다가 갑자기 투자촉진 주문을 하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더 혼란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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