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황, 뭔가 수상해" 곳곳서 발견된 징후

김태근 기자 2012. 10. 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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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年평균 성장률 3.1% 사상 최저.. IMF 때와 달리 큰 충격 없는데도 조금씩 성장 악화 야금야금 기업·가계 숨통 죄고 - 파산 신청 기업 벌써 163개, 가계대출 연체율 최고 수준 경제 회복력도 눈에 띄게 둔화 - 외환위기 이후 10.7% 성장, 올해는 3% 성장도 힘들어.. 4분기 수출 전망 3년만에 최악 "불황 5년 지속땐 은행도 위험"

한국 경제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슬로모션(slow motion)형' 장기 불황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997년 IMF 외환 위기나 2003년 카드 사태와 같은 큰 충격이 없는데도 경제성장률이 연 3% 안팎으로 낮아지는 장기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고, 파산 위기에 처한 한계 기업이 늘고 있다.

슬로모션 불황이 무서운 이유는 불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얼마나 심각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현재의 장기 불황이 앞으로 5년 지속될 경우 부실기업 급증으로 은행들의 안전도 장담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방이 적신호, 위기 대응 체제 정비해야

최근 재계 순위 31위인 웅진그룹 사태는 기업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알려주는 또 한 번의 신호탄이 됐다. 슬로모션 불황의 징후는 이미 경제지표 곳곳에서 쉽게 읽어낼 수 있다.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생한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우리 경제는 연평균 3.1% 성장했다. 우리 경제 역사상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IMF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간 성장률 평균은 5%였고, 2003년 카드채 사태 이후 5년간 성장률 평균은 4.3%였다. 최근 4년간 경제성장률이 연 4%를 밑돈 것이 3차례로 이 역시 사상 처음이다. 올해는 3% 성장도 힘들다는 게 경제 연구 기관의 대체적 관측이다.

경제 회복력도 눈에 띄게 둔화됐다. 우리 경제는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5.7%라는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엔 10.7%의 고도성장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엔 성장률이 2008년 2.3%, 2009년 0.3%, 2010년 6.3%, 2011년 3.6%를 기록해 2010년을 제외하고는 잠재성장률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가계 부채의 부실 위험은 날로 커지고 있다. 국내 은행의 가계 대출 연체율은 8월 말 기준으로 6년 만에 1%를 넘어섰고,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은행 대출 책임자들이 본 가계의 신용위험지수는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미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의 위험도를 능가한다.

장기 불황의 여파로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말까지 파산을 신청한 기업은 총 163개로 집계됐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올해 200개를 넘어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193개) 기록을 깰 전망이다.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우리 경제가 20년 장기 불황에 들어섰던 1990년대 초반의 일본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과거와 다른 '장기 지속형' 위기

최근 우리 경제가 겪는 슬로모션 불황은 이전과는 성격이 다른 위기다. 세계경제가 함께 불황에 빠졌다는 점이 가장 근본적인 차이다. 미국 경제 회복은 더디고, 유럽은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가 얽혀 유로존 재정 위기 악몽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중국은 경기 경착륙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현재의 경기 침체는 단순히 국내 경기 순환상 침체가 아니다"면서 "유럽 재정 위기 등 전 세계적인 불황의 결과"라고 했다. 우리 경제가 과거 외환 위기나 카드 사태에서 빠르게 회복한 것은 수출이 경제 회복을 견인해준 덕인데, 슬로모션 불황 속의 세계 경제에선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실제로 코트라(KOTRA) 조사에 따르면 올해 4분기 수출 전망은 2010년 1분기 이후 가장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고, 우리 경제의 수출 증가율은 7월 이후 줄곧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 중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슬로모션 불황, 오래가는 지속형 불황에 대비하려면 경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앞으로 불황이 5년간 더 지속되면 각 분야의 1~2등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1~2등 수준을 유지하거나, 1~2등으로 도약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취지의 그룹 내부 보고를 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장은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 이후 상시적인 기업 구조조정 체제를 갖춰 대대적인 연쇄 부실 사태를 막을 수 있었지만, 세계경제가 계속 악화하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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