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외식시장 '토종 브랜드' 완승..비결은?

정호선 기자 2012. 8. 2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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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에도 선전..답은 '소비자'에 있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친구들 사이에선 TGI FRIDAY'S나 베니건스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그러는 게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사그라지던 90년대 중반을 전후한 학번들일 텐데, 그런 외식브랜드들이 어린 마음에 좀 신기하고 색다르게 느껴졌을 것도 같다. 학생 사정에 비해 음식 값이 꽤 비싼 수준이었는데도, 쿨해 보인다고나 할까, 멋있어 보이는 느낌을 가졌었을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할 것도 없는 메뉴지만 이국적인 실내 인테리어와 음식들, 손님 눈높이에 맞춘다는 일명 '무릎 꿇는' 서비스, 생일파티 이벤트 같은 발랄하고 톡톡 튀는 매장분위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법하다. 여하튼 자주는 못가지만 가끔(주로 친구들 생일날) 이런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았고, 갈 때마다 번호표를 받아 기꺼이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외국 브랜드 패밀리 레스토랑의 성업은 꽤 지속됐다. 매장은 더 늘어나 주변에서 자주 눈에 띄게 됐고, 아웃백 등 새로운 브랜드들이 들어왔다.

또 한 가지 젊은 계층들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더 빈번하게 가게 된 것은 아마 통신사들의 제휴 할인이 시작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SK텔레콤 등은 외식브랜드와 제휴해서 많게는 30%까지 밥값을 할인해주다보니 그동안 음식 값이 너무 비싸서 주저하던 소비자들은 마치 안 가면 손해 본다는 심정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을 찾기 시작했고, 이들이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렇게 패밀리 레스토랑의 원조는 외국브랜드다. 일본계 코코스가 1987년에 한국에 첫 진출했고, TGI는 91년,스카이락 94년 속속 매장을 낸 것이 시작이었다. '아. 그런 브랜드가 있었지.' 아득한(?) 추억 같은 것이 생각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의 지형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외국브랜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국내 브랜드들이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브랜드중 CJ푸드빌의 빕스의 1월부터 7월까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8%가 늘었고, 이랜드의 애슐리는 25%, 삼양의 세븐스프링스가 20% 각각 뛰었다. 불황이 장기화되는 상황,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두 자릿수 매출 신장은 상당히 장사를 잘했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빕스와 애슐리, 세븐스프링스가 모두 국내 대기업 계열에서 운영하는 브랜드인지 몰랐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 약간 과장하면 한 건물 건너 하나씩 있었던 TGI나 베니건스는 주변에서 상당히 많이 줄어든 것을 느낀다. 실제로 실적을 보니 외국 브랜드 가운데 아웃백은 5.1%, 베니건스는 8.4% 한 자릿수 매출 증가에 그쳤고, TGI도 비슷한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외국이 원조로 거기서 본따왔지만 국내 업체들이 외산 브랜드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들의 선전, 약진에서 기업 성장, 마케팅의 ABC를 발견한다.

우선 변화하는 트렌드에 빠르게 대처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릴 때는 이런 패밀리 레스토랑의 음식이 맛있다고만 느꼈지만, 점점 입맛이 바뀌어서인지 한국사람 입맛에는 약간 느끼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 웰빙, 건강 등에 대한 관심이 확산된 것도 같은 맥락의 배경이다.

즉, 고객들은 좀 덜 부담스런 식사를 원했지만, 외국 브랜드들은 꾸준히 자신들의 전통 메뉴를 고집했다. 실제로 15년 전에 갔을 때 음식메뉴 대부분을 아직도 그대로 팔고 있다는 것을 최근 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보고 알았을 때, '전통에 대한 고수'라는 느낌보다는 '소비자들이 바뀌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메뉴와 인테리어에 있어서 진출한 국가의 소비자들이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유행이 어떻게 바뀌는지, '현지화' 노력에 덜 부지런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한국 브랜드들은 웰빙 메뉴나, 아시아 음식과의 퓨전 음식 등을 내놓으면서 꾸준히 변신하고 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고객을 유치하는 데 신 메뉴 개발은 기본"이라며 "국내업체가 외국 업체보다는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 취향에 재빨리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차별화 전략이다. 예를 들어 빕스 애슐리 등은 공통적으로 부페처럼 먹을 수 있는 샐러드 바를 운영하는데 매출에 상당히 기여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단체 친구나 가족 단위 손님이 많은 패밀리 레스토랑 성격상 샐러드바 전략은 먹혔던 것이다.

유통업계에선 까르푸나 월마트 등 공룡 대형마트가 진출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완승을 거뒀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실패하고 국내 업체에 두 손 두 발 다들고 철수한 것이 지속적으로 회자된다. 이들은 거대한 자본, 물량공세를 앞세워 저렴한 가격을 약속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값이 싼 것을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걸 다 포기하고 싼 가격만을 쫓지는 않는다는 부분을 놓쳤다. 저렴한 가격에 덧붙여 작은 서비스 마인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브랜드 이마트, 롯데마트 등은 이런 점을 놓치지 않았다. 배달문화가 발달한 우리의 특성대로 배달을 실시했고, 제품의 구성도 대량 위주인 외산브랜드와는 달리 고객의 요구에 맞춰 소량 판매 품목도 갖췄다. 신선식품 과일 채소 등의 구매 빈도가 높은 우리 가정의 특성상 농축수산물 관련 매장을 늘려, 공산품 위주로 물량을 밀어내는 외산브랜드와 철저한 차별화에 성공한 것이다. 또 녹색경영 기부 등 사회적 역할도 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가져갔다.

즉, 싼 가격은 미끼 상품은 될 수 있지만 결국 다시 소비자들이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건 '고객과의 교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떠오르게 하는 예다.

요즘 우리 기업들의 마케팅이 워낙 창의적이고 또 적극적으로 수행이 되면서 시작은 외산 브랜드에서 아이디어를 따왔지만 국내 브랜드들이 더 성장한 사례는 이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커피전문점도 그렇고, 피자 가게도 그렇고, 제과 제빵 브랜드들도 토종이 앞선다.

마케팅의 핵심 요소 4P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제품(PRODUCT) 가격(PRICE) 유통(PLACE) 판촉(PROMOTION), 5번째 P는 '소비자(PEOPLE)'이란 말이 있다. 태생적으로 변덕스런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건 기업의 숙명이다. B2C 업종, 그러니까 소비자를 직접 대면해야 하는 유통업종엔 더 절실하게 해당되는 얘기다. 장기 불황에 허덕이면서 불황을 타개할 각종 묘수를 짜내고 있는 백화점이나 유통업체들이 참고로 할 만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정호선 기자 ho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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