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난만 8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32살인데 왜 벌써.."

2012. 5. 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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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전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씨 숨져…32명째 희생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막내딸이 죽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달아야 할 가슴에 박옥래(가명·60)씨는 딸 이윤정(32)씨를 묻었다. 온몸이 퉁퉁 부은 딸을 직접 간병하지 못한 일이 원망스러워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지난 7일 저녁 인천시 어느 요양병원에서 숨을 거둔 이씨는 2010년 5월5일 악성 뇌종양이 발견돼 2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2003년 5월 충남의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퇴사한 지 7년 만이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집계에 따르면, 이씨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암으로 사망한 32번째 노동자다.

이씨는 고교 3학년이던 1997년부터 일을 시작했다. 이씨를 비롯해 성적 우수 학생 6명이 학교 추천을 받아 삼성에 입사했다. "힘들다거나 아프다는 내색도 하지 않았어요. 막내답지 않게 뭐든 혼자 참고 삭이는 아이였어요." 인천산재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어머니 박씨가 회고했다.

퇴사 7년뒤 뇌종양 발병산재 신청하자 거부 당해소송냈지만 재판 '무소식'

"시민단체와 연락 않는게…"삼성쪽 남편 회유 시도도삼성 "이미 산재 아님 판정"

이씨는 2004년에 결혼했다. 결혼 준비를 하던 2003년 5월께 온양공장을 그만뒀다. "연애 시절, 가끔 팔다리에 멍이 들어 있는 것을 봤어요. 일이 너무 힘드니 결혼과 함께 회사를 떠나는 걸 간절하게 바랐지요." 남편 정희수(36)씨가 말했다.

단란한 결혼생활은 뇌종양 판정 이후 무너졌다. 이씨는 자신의 병이 삼성 반도체 근무 시절에 시작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퇴사 직전까지 7년 동안 이씨는 불량 반도체를 걸러내는 '고온 테스트 공정'에서 일했다. "공기 맑은 시골에서 자랐고 퇴사 뒤엔 살림만 한 사람이에요. 삼성에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남편 정씨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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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불량 반도체가 뿜어내는 벤젠 등 독성물질이 뇌종양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0년 7월 산업재해 신청을 냈지만, 2011년 2월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4월 이에 불복하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지금까지 재판 한번 열리지 않았다.

지난 4월 이씨와 같은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는 퇴사 무렵부터 혈소판 감소 진단을 받은 것을 근거로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 빈혈에 대한 산업재해 판정을 얻어냈다. 지난해 6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에 대해 행정법원은 산업재해를 인정했다. 숨진 이씨는 그런 판정을 받아내기 전 세상을 떴다.

삼성 쪽에서는 지난해 두세차례 남편 정씨를 찾아왔다. "시민단체와 연락하지 않으면 좋겠다"거나 "행정소송 해봐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 아니냐"고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고인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애도한다. 그러나 뇌종양 발병이 산업재해인지에 대해선 근로복지공단의 판단이 이미 내려졌으므로 더이상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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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닮았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이씨는 생의 마지막 순간 항암치료를 받느라 예전 얼굴을 잃어버렸다. "입관 때 보니 예쁜 얼굴로 돌아왔더라고요." 첫째 언니 수정(38)씨가 울먹였다. 6살 딸은 엄마의 죽음을 제 방식으로 이해했다. "엄마가 하늘나라 갔다"고 말했다. 8살 아들은 외할머니에게 천진하게 물었다. "엄마는 32살밖에 안 됐는데 왜 벌써 죽는 거야?" 이씨의 아들과 딸은 시가 어른들이 맡아 키우기로 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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