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엔 피죤' 아성 어떻게 무너졌나

김정태 2011. 8. 1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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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황 무시한 경영에 이직률 높아 조직 분위기 어수선해 2위 내려앉아

[머니투데이 김정태,오정은기자][시장 상황 무시한 경영에 이직률 높아 조직 분위기 어수선해 2위 내려앉아]

"피죤은 좋은 브랜드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평판을 계속 유지하려면 고객 감동에 앞서 직원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먼저인데, 피죤에는 그런 문화가 없었습니다."

최근 피죤을 그만둔 한 전직 임원의 말이다.

30여년간 섬유 유연제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 온 피죤이 최근 2위로 추락하면서 이 회사 오너인 이윤재 피죤 회장의 경영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주간지 한겨레21은 이 회장의 '임직원 폭행·회삿돈 횡령·비자금 조성에 관한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부 소비자들은 인터넷에서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등 '섬유유연제의 대명사'라는 인식이 흔들리면서 피죤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빨래엔 피죤이었는데..."

=생활용품 기업 피죤은 1978년 최초로 의류에 향과 유연성을 더해주는 세탁보조제인 '피죤'을 내놓았다. 당시에는 생소한 시장이어서 초기 판매는 부진했다. 이후 90년대 들어서면서 '빨래엔 피죤'이란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면서 매출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008년까지 실적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754억원과 114억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9년부터 LG생활건강이 급부상하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해 영업이익이 22억원으로 2008년의 20% 선까지 줄었다. 지난해부터 자회사 실적까지 반영하는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다. 덕분에 매출액은 1683억원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피죤 자체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준 데다, 자회사까지 적자를 내면서 수익성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됐다.

피죤의 부진은 시장점유율에서도 나타난다. 시장조사전문 기업 닐슨 데이터에 따르면 피죤은 2009년 당시만 해도 섬유유연제 시장 점유율이 48.3%로 독보적인 1위를 자랑했다. 그러나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44%로 떨어진데 이어 지난 6월에는 급기야 27%까지 떨어지는 등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반면 LG생건은 2009년 고농축 섬유유연제 '샤프란'을 내놓아 인기를 얻으며 시장 점유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LG생건의 상승세를 막기 위해 피죤은 지난해 초 '무자극 피죤'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피죤의 대응이 한 박자 느렸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결국 LG생건은 올 상반기 점유율 42.8%로 유연제 시장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피죤의 2위 추락 왜?

=업계에선 피죤의 2위 추락 원인으로 우선 '어수선한 기업 분위기'를 꼽았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지 않거나 내부 조언을 듣지 않는 이 회장의 독선적인 경영행태와 이에 따른 피죤 임직원의 높은 이직률이 문제라는 설명이다.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독선 경영의 단적인 예로 '1+1 행사' 폐지를 들었다. 피죤은 올 2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1+1 행사용 제품 공급을 갑자기 중단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가격 부담을 느끼며 등을 돌렸다. 시장점유율이 8%포인트 이상 가파르게 하락하자 피죤은 한 달 만에 1+1 행사를 부활시켰지만, "피죤은 비싸다"는 소비자의 인식이 이미 널리 퍼진 뒤였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당시 갑자기 행사용 제품 공급을 중단한 이유를 물어보자 피죤 직원들은 '내부 의견 수렴 없이 회장이 결정해 밀어 붙였다'며 답답해하는 모습이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와 함께 "피죤이 시장 1위, 섬유유연제의 대명사라는 명성에 너무 안주해 기업을 시장의 변화와 관계없이 독단적으로 운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임직원들의 잦은 이직도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피죤의 이직률은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규직 기준 161명이었던 피죤 직원 중 지난해 127명이 퇴사했다. 1년 동안 약 80%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둔 셈이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피죤은 상시 채용제를 도입했다. 새로 입사한 직원 대부분은 입사 3년차 이내로 채워졌다.

오너인 이 회장이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는 전문경영인의 경우도 상황이 심각했다. 2007년 이후에 취임한 피죤 대표이사들의 평균 근속 기간은 4개월에 불과했다. 2007년 1월 1일부터 2011년 6월 10일까지 근무한 임원 38명 가운데 근속기간 1개월 미만인 사람이 8명(21%)이나 됐다. 6개월 미만은 18명(47%), 1년 미만은 11명(29%)이었다. 1년 이상 근무한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업계에선 피죤의 신임 대표가 거래처에 인사를 하러 오면 "6개월 후에 명함을 달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 정도로 피죤의 잦은 경영진 교체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장기 전략은 둘째 치더라도 제대로 된 신제품이나 마케팅 전략이 나올 수 있겠냐는 분위기가 내부에 팽배해 있었다"고 한 전직 임원은 전했다.

◇전문경영인 재기 몸부림도 '허사'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피죤의 재도약을 위해 이은욱 전 사장이 지난 2월 영입됐다. 헤드헌팅 업계에 따르면 피죤은 이 전 사장의 영입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활용품 업계 선도업체인 유한킴벌리의 부사장 출신인 그는 일단 고용불안이 회사 위기의 주요인으로 진단하고, 직원들에게 '다니고 싶은 직장, 고용이 안정된 직장'을 약속하며 사기진작에 나섰다. 마케팅, 영업, 생산 부문의 전문 인력을 새로 영입하면서 조직 안정도 꾀했다. 그 결과 2월 46억원에 머물렀던 월간 매출이 3월에는 60억원, 5월에는 90억원으로 올라서며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 전 사장은 4개월만인 지난 6월 이 회장으로부터 돌연 해임됐다. 이에 그는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부당해고에 따른 손해배상 및 해고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 전 사장은 △이 회장 일가가 사용한 비용을 영수증 없이 처리한 점에 대해 담당 부서를 질책했고 △중국 법인에 대한 미수 채권액이 큰 데다 이해하기 힘든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점 등이 해고의 사유가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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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정태,오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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