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이어 원화도..발권력 동원 '돈풀기' 나섰다

2008. 10. 2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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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은, 총액한도대출 확대

정부와 한국은행이 은행과 기업에 대한 본격적인 자금 공급에 나서고 있다. 정부는 현재 가중되고 있는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금난, 치솟는 금리로 인한 기업과 가계의 이자폭탄 등 금융·실물부문 양쪽의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돈 풀기'라는 결론에 이른 듯하다. 한은은 '유동성 확대'라는 큰 틀에서는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무차별적 유동성 공급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동성을 확대하면 시중 금리가 내려가고 기업들의 자금난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물가와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있다.

기업 이자부담·자금난 완화효과…키코기업 우선지원정부 '더 많이 더 빨리' 재촉…물가·환율 부작용 우려

■ 일단 중소기업 지원부터…추가 금리인하도

한은은 23일 통안증권 7천억원의 중도상환 입찰을 실시하는 한편, 이날 오전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총액한도대출 규모도 2조5천억원 늘렸다. 총액한도대출 증액은 연쇄부도 위험에 놓인 중소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명분이 뚜렷하기 때문에 비교적 일찍 한은이 입장 정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현재 전체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약 400조원인데 이번 증액분은 그 0.5%를 넘는 상당한 규모"라며 "중소기업 전반의 자금난을 덜어주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히 환헤지 상품인 '키코'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중소기업에 우선적으로 자금이 지원될 전망이다. 중소기업 쪽에서도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이번 조처는 중소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대출 확대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다음달 초에 있을 금통위에서 지난달에 이어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이날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다시 한번 물가 불안보다 경기침체 위험에 방점을 찍었다.

■ 정부 "더 적극적으로 풀어달라"

하지만 정부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개울가에 물이 넘치는데 삽으로 찔끔찔끔 흙을 날라서는 효과가 없다"며 "불도저로 흙을 퍼서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압도적인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나중에 들어가는 총량은 같은데, 효과만 반감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한은이 확실하게 돈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최우선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한은의 은행채 매입이다. 22일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이 나선 데 이어 23일엔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이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한은을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인하를 유도하면 주택대출 금리는 저절로 내려간다"며 "한은이 은행채를 직매입하든 환매조건부(RP) 대상에 포함시키든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91일물 시디 금리는 전일보다 0.01%포인트 올라 연 6.16%까지 올라갔다. 한은의 은행채 매입은 은행채 금리 하락→시디금리 하락→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한은은 여전히 유보적인 태도다. 이성태 총재는 이날 국정감사 답변에서 "4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25조원의 은행채 전체를 전부 중앙은행이 인수할 필요는 없다"며 "아무도 안 사고 중앙은행만 산다는 것인데, 아주 극단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채를 한은이 사주는 것은 전례가 없을뿐더러 은행에 대한 특혜 논란도 생길 수 있다.

금융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에까지 유동성 지원을 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임 사무처장은 "기관투자가들이 펀드 환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이 현금을 확보하려고 하고, 환매가 들어오면 바로 (채권, 주식 등을) 팔아버리고 있다"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보유한 통안채와 국고채를 한은이 환매조건부로 매입하는 방안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 물가·환율 괜찮을까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시중에 유동성을 푸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부작용이 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돈의 가치가 낮아지면서 물가가 상승하고 환율이 올라가게 된다. 최근에는 경기침체가 가속화하고 있어 물가상승 압력은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환율 상승을 자극한다는 점은 그렇지 않아도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요즘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한 한은 관계자는 "한은이 돈을 찍어내면 세금도 안 들어가고 국가 채무에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항상 정부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하지만 이는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우려했다. 최석원 삼성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정부는 일단 은행과 기업의 신용위기를 해소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한 듯하다"며 "하지만 유동성 증가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져 우리나라의 신용위기가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환율이 일시적으로 올라가는 것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안선희 이정훈 기자 shan@hani.co.kr

총액한도대출

한국은행이 총액한도(현재 9조)를 정해놓고 이 한도안에서 은행별로 중소기업 지원 실적에 따라 시장 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배정해 주는 것이다. 현재 연 3.25%의 금리가 적용된다. 이 금리는 현재 은행들이 은행채나 예금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금리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은행들도 그만큼 중소기업에 낮은 금리로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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