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결제액이 수출액의 두배.." 한숨짓는 중기

2008. 9. 1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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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업황악화 기업 '벼랑' 몰려 사채로 겨우 막아

은행 권유로 '계약변경' 업체, 4배까지 손실

중기 연쇄부도 공포에 "정부 너무 안이"

태산엘시디의 기업회생절차 개시 신청으로 통화옵션상품 '키코'로 인한 중소기업들의 연쇄부도가 현실화되자, 부랴부랴 정부 기관도 논의에 나섰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은 최근까지도 키코 판매에 문제가 없고, 오버헤지한 기업만이 문제라던 태도를 보여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해당 업체들 가운데엔 사채까지 끌어쓰는 등 상당수가 이미 벼랑 끝에 몰린데다, 올 상반기 환율 안정을 기대하고 은행과 '계약변경'(Restructuring)을 한 업체들도 있어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중앙회, 우리은행 등 중소기업 지원기관들은 18일 키코 피해에 대해 공동으로 논의를 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그동안에는 약관의 불공정성, 은행의 위험 고지 여부 등을 중심으로 봤는데, 실제 태산엘시디처럼 문을 닫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어 정부 차원의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며 "일부는 버티고 있지만, 버티지 못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장리 저리의 금융지원을 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한 고위관계자도 "최근 원장지시로 다시 키코 관련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이익이 좋은 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올해 예상매출액 8천억원의 한 엘시디업체 관계자는 "한달에 들어오는 수출액 7천만달러에 다시 7천만달러를 구해 매달 1억4천만달러의 키코 결제액을 막고 있다"며 "버틸 순 있지 만, '이것만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에 참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기위축 전망에 업황악화가 예상되는 업체들은 결제를 막을 달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해운업체 이사는 "오일값이 떨어져도 환율급등에 물량자체가 빠지는데 무슨 효과가 있겠냐"며 "하루라도 결제가 늦으면 키코 연체이자까지 다 청구한다"고 전했다. 이러다보니 사채를 쓰는 곳도 생겼다.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사장은 "지난달부터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특히 해당 업체들은 올 상반기 계약은행들이 집중적으로 '계약변경'을 권했다고 전했다. 계약변경은 주로 해당 월의 결제액을 소멸해주는 대신 다음달에 이에 해당하는 만큼 새 계약을 맺거나, 환율 구간을 조정해주고 대신 계약기간을 새로 늘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환율이 급등하며 원래 약정액의 2배가 아니라 4배까지 결제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중소기업의 인수·합병을 취급하는 작은 투자자문사들엔 키코 빚을 갚는 조건으로 경영권을 팔기를 희망하는 업체들도 나타나고 있다. 인수·합병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실제 비상장사나 기업공개를 준비하고 있던 기업들 일부가 물량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거꾸로 키코 피해가 현실화되면서 우량기업을 사들이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영업이익이 좋기 때문에 결제를 막을 자금만 있으면 장기적으로 큰 기회"라며 "이 때문에 우량기업들을 접촉했지만 오히려 해당 업체들이 절대 팔 의사가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키코의 직격탄을 맞은 회사들에는 건실한 수출기업이 많다는 반증이다.

한 중소기업 이사는 "꼼짝않던 정부지만 지금이라도 저리자금을 대출해준다면 숨통을 틀 수 있다"며 "손실금액의 30~40% 안팎만 해줘도 우량기업들이기 때문에 커버가 된다"고 말했다.

김영희 이재명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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