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SK·현대重, 현금 곳간 더 채우고 배당 줄였다

김은정 기자 2014. 4. 23.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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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그룹, 작년에 쌓아둔 돈 470兆 사상 최고] 투자 늘리지 않으면서 배당도 적게.. 株主 경시 풍토 변하지 않아 기업들 "투자할 일 많아 현금 보유"

SK, 롯데, 현대중공업 그룹이 지난해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유보율은 높아졌는데 배당수익률은 낮아진 '배당 블랙리스트'에 꼽혔다. 이 그룹들이 사내에 쌓아둔 현금은 더욱 늘어났는데, 주주들에 대한 1주당 배당금은 오히려 줄었다는 뜻이다.

이 세 그룹을 포함한 10대 그룹 전체 작년 사내유보금은 모두 470조8000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8.8% 늘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기업들은 쌓아둔 돈을 주주에게 더 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앞으로 투자할 일이 많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지난 수년간 결과를 보면 투자는 말뿐이고, 실질적인 투자는 늘어나지 않았다"며 "투자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당도 적게 하는 주주 경시 풍토가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배당에 인색한 '배당 블랙리스트' 뽑아보니

본지와 증권정보업체 에프엔가이드가 자산총액 기준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2012년 대비 지난해 유보율을 집계한 결과, 전체 조사 대상 기업들의 유보율이 1244.2%에서 1350%로 늘어났다. 사내유보금은 기업이 이제까지 벌어들인 돈의 총합(이익잉여금)과 기존에 출자한 자금(자본잉여금)을 합친 것이다. 이 돈으로 투자나 배당을 한다. 유보율은 유보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것인데, 자본금보다 사내에 쌓아둔 돈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조사 결과, 10대 그룹 가운데 SK와 롯데, 현대중공업 그룹은 유보율이 높아지는 대신 배당수익률은 떨어졌다. SK그룹의 경우, 지난해 이 수치가 1.1%를 기록했다. 전년도엔 그룹사 평균 배당수익률이 1.8%로 우리나라 전체 상장기업의 배당수익률(1.1%)보다 높았지만, 올해는 비율이 뚝 떨어졌다. SK그룹은 총투자액도 소폭 감소했다. SK 관계자는 "작년 글로벌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았고, 특히 SK이노베이션이나 SK텔레콤 등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역시 좋지 않아 보수적으로 배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장의 투자 외에도 미래 먹을거리와 리스크 관리 등의 목적으로 유보율을 소폭 높였다"고 말했다.

상장사 평균 배당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짠물 배당'을 해왔던 롯데그룹은 지난해 배당률을 더욱 낮췄다. 그룹 평균 배당수익률이 0.34%에 불과했다. 반면, 사내유보율은 무려 4869.9%에서 5069.5%로 더 높였다. 10대 그룹 가운데 유보율이 가장 높다. 증권 업계에선 "유통 업종이 전반적으로 배당 성향이 낮긴 하지만, 롯데그룹은 안정적인 수익 구조에도 불구하고 유독 배당 의지가 약하다"고 평가했다. 업황 부진에 시달린 현대중공업은 순이익 감소로 배당 총액 자체가 줄었다.

◇고배당 압력 전방위 증가할 듯

하지만 이 기업들이 앞으로도 계속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배당도 적게 하는 전략을 끌고 가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배당을 높이라고 요구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KDB대우증권 김상호 연구원은 "지난 3년간 한국 증시에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연평균 -0.4%에 불과해, 같은 기간 세계 평균치 대비 9.4%포인트나 낮았다"며 "투자자 입장에선 이제 놀라운 주가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배당이라도 더 줄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배당수익률이 높은 기업으로 떠날 개연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배당이 높은 기업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200 기업 중 배당률이 높은 상위 50개 기업을 추린 코스피200 고배당 지수는 2011년 초 대비 이달 18일까지 1.3% 올랐다. 같은 기간 전체 코스피200 지수가 3.6% 떨어진 것과 대비된다. 배당을 잘 주는 기업의 주가가 5%포인트 가까이 초과 수익을 거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신한금융투자 류주형 연구원은 "2010년 이후 상장사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하락세인데, 이는 배당을 하지 않고 남은 잉여금으로 창출해낸 이익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라며 "그럴 바에야 투자를 핑계로 돈을 쌓아두기보다는 배당으로 주가수익비율을 높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정부가 3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배당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정치권에서도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앞으로 고배당 압력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유보율

기업이 회사 자본금에 비해 얼마나 많은 잉여금을 쌓아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 비율이 높을수록 현금 비축이 많다는 뜻이다. 일정 비율 이상의 유보율은 기업 건전성을 위해 필요하지만, 투자나 배당을 하지 않고 현금을 쌓아두는 기업이 많아져서 문제가 되고 있다.

☞배당수익률

1주(株)당 배당금을 현재 주가로 나눈 값. 배당수익률이 0.94%라는 것은, 1000원짜리 주식을 산 주주가 배당으로 한 해 9.4원을 벌었다는 뜻이다. 지난해 MCSI (모건스탠리가 발표하는 세계 주가지수) 45개국 평균 배당수익률은 3.59%였는데, 한국은 1.33%로 꼴찌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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