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자유전공학부 중간평가

2010. 3. 10. 04: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고3 수험생 자녀를 뒀던 학부모 A씨. 자녀와 함께 자녀가 진학할 대학과 전공을 고민하던 중 배치표에서 '자유전공학부'가 눈에 들어왔다. 미리 전공을 정하기보다 자유롭게 수업을 듣고 나중에 전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유전공학부에 자녀를 입학시킨 A씨는 한편으로는 아직 도입 초기인 학부에 입학시킨 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대학이 2009년부터 신설한 자유전공학부. 신입생들이 적성 탐색기간을 가진 뒤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게 본래 취지다. 자유전공학부 학생들은 특정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한다. 대신 1년 동안 자유전공학부 필수 과목과 다양한 전공의 기초과목을 듣고 나중에 전공을 선택한다. 전공이 결정되면 대학별 운영방침에 따라 자유전공학부 소속으로 남아 있기도 하고, 해당 학과로 학적이 변경되기도 한다.

자유전공, 이름 같지만 학교별 운영방향은 제각각

자유전공학부는 신입생 모집 시 문·이과 구분을 따로 두지 않고 교차지원하는 경우도 있고, 인문사회계열(문과) 학생만 모집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인문·사회·공학 등 계열로 모집한 뒤 계열 내에서 전공을 선택했던 학부제보다 확실히 전공 선택폭이 넓다는 게 장점이다.

김영지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간혹 적성은 이과인데 외고에 진학해 문과를 선택했던 학생이나 부모님이 원하는 전공과 자신이 원하는 전공이 다른 학생들이 있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입학 시 교차지원, 전공 선택 시 교차전공 이수가 가능해 문·이과를 넘나들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특히 관심을 많이 갖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유전공학부라고 다 같은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대학별로 학부 운영방침은 제각각이다. 학교 차원에서는 '학문 간 융합'이나 '적성 탐색 후 전공 선택'이라는 자유전공학부의 본래 취지 외에도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

특히 로스쿨 인가를 받은 대학들은 원칙적으로 지난해부터 법대 학부생을 모집할 수 없다. 성적 우수자들이 주로 모이는 전공이 사라진 대학들은 자유전공학부를 설치해 성적우수자들의 이탈을 막겠다는 심산이다.

전공선택 자율성 가장 높아, 전문성 부족 우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는 지난해 처음 157명의 신입생을 모집했다. 이 학부 학생들은 사대, 의대, 약대 등 국가고시자격증이 필요한 전공을 제외한 모든 전공 중에서 자신의 전공을 고를 수 있다. 주전공은 의무적으로 2개를 선택해야 하며 전공선택에 있어 학점 제한은 없다. 타 단과생이 설계전공(잠깐용어 참조)을 하려면 부전공으로만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자유전공학부생들은 설계전공을 주전공으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내세운다.

한편으로는 전공선택의 폭이 넓어 다른 계열의 두 전공을 4년 만에 이수했을 때 정체성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설계전공에 대해서도 한 사립대 교수는 "교수들도 한 학과 커리큘럼 짜기가 힘든데 학부생이 직접 짜는 커리큘럼이 전공으로서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인문사회계열 내 선택 제한, 경영·정경 등 전통적인 간판학과로 몰려

연세대와 고려대의 자유전공학부는 '사범대, 교육학과를 제외한 인문사회계열 내 전공'으로 전공선택 범위를 제한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학문 간 통섭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장은 "이미 고등학교 때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 문·이과를 선택하기 때문에 교차전공을 하려는 학생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문·이과를 합쳐 학부 커리큘럼을 짜면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탐색 과목을 들어야 하는 일도 발생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라고 설명한다.

운영 방식은 어떨까. 연세대는 전공선택 시 특정 전공 선택비율을 제한하는 등의 진입장벽은 두지 않았다. 전공을 선택하면 소속은 자유전공학부가 아닌 해당전공으로 바뀐다. 경영학과로 입학한 학생과 자유전공학부로 입학해 경영학과를 선택한 학생이 같은 졸업장을 받는 셈이다.

고려대는 이와 반대다. 특정전공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각 전공 정원의 10%까지만 자유전공학부생이 선택할 수 있다. 올해 신입생부터는 '공공가버넌스와 리더십'이라는 연계전공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주전공을 선택해도 학적은 바뀌지 않고 '자유전공학부'가 졸업장에 표기된다.

두 학교 자유전공학부의 특징은 전통적으로 '간판학과'라 할 만한 전공 선호현상이 뚜렷하다는 점. 연대는 경영·경제 등 상경계, 고대는 정외과 등 정경대학으로 몰리는 경향이 강하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에서 1년을 마치고 정외과로 전공을 정한 한 학생은 "주변에서 보면 로스쿨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자유전공학부에 들어온 학생이 3분의 1 이상으로 다른 단과대보다는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이원경 연세대 교수는 "상당수 학생이 경영·경제 전공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전공 쏠림현상보다) 자유전공학부에서 얼마나 다양한 전공진로프로그램을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소수 글로벌엘리트 양성소

이화여대는 다른 대부분의 대학보다 이른 2007년부터 스크랜튼학부를 운영한다. 스크랜튼학부생은 본래 소속 대학전공과 함께 다양한 전공트랙을 복수전공으로 이수할 수 있어 실제로 자유전공학부나 마찬가지다. 대신 타 대학 자유전공학부보다 영어수업 비중이 높고, 40명 전원에게 장학금을 차등 지급하는 게 특징.

2007년 처음 설립 당시 인문, 사회, 자연계열에서 1년 이상 보낸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크랜튼학부생을 뽑았다. 기준이 까다롭고 소수만 뽑아 대부분 평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선발됐다. 지난해부터 신입생을 따로 선발하는데 학생들의 수능 평균점수는 이대 인기학과인 초등교육학과와 비슷하다는 게 내부 전언이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자유전공학부는 제자리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대학 차원에서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학부 차원에서도 의지가 강한 편이지만 아직 부족한 점도 있다. 국외에는 뚜렷한 벤치마킹 모델이 없고 국내 대학들은 한꺼번에 학부를 신설하는 바람에 학교별로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앙대의 경우 자유전공학부를 신설한 지 1년 만에 행정학과와 자유전공학부를 합쳐 공공인재학부로 재편했다. '자유전공학부의 색깔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전공선택 '자유'에 따른 혼란의 '책임'은 결국 학생 몫이다.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준비반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꾸준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학부 법학과가 없어진 대학에서 기존의 법대생 규모나 교수들의 파워를 유지하기 위해 부랴부랴 자유전공을 설치하기도 했다"며 "자유전공학부가 자칫하면 로스쿨 설립 취지까지 무색하게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인터뷰 | 장영수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장

예전 법대만큼 인기있는 간판학부로 키운다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의 설립 취지는 무엇입니까.

과거에는 학부만 졸업해도 전문가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대학원에서 석사나 박사를 마쳐야 비로소 전문가로 인정받지요. 대학교육의 틀이 바뀐 상황에서 학부가 굳이 전공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대학 전공특성을 모르고 진학하는 학생이 많아 따로 전공 탐색기회를 줘야 합니다. 또한 고려대의 간판학과였던 법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대비책도 필요했어요. 과거 법학과에 진학하려던 우수한 학생들을 전공이 없어졌다고 놓친다는 것은 대학 전체 경쟁력에 큰 손해입니다.

지난 1년 자유전공학부를 운영한 뒤 올해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올해부터는 자유전공학부생이 의무적으로 본 전공 외에 연계전공으로 '공공가버넌스 리더십'을 이수해야 합니다.1년을 운영해보니 자유전공학생들을 연결하는 끈도 있어야 하고 아무리 자유전공학부라 해도 학부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유전공학부가 프리-로스쿨로 변질됐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유전공학부가 마치 로스쿨 입시학원이 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로스쿨의 설립 취지가 무조건 학부 때 법이나 행정 등 공공분야에 대한 지식과 담을 쌓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학부에서는 다양한 전공을 경험하되 일찍부터 법조인이나 공무원이 되고 싶은 학생들을 위한 지도도 필요해요. 그 역할을 자유전공학부가 한다고 해서 로스쿨 준비반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잠깐용어

설계전공

이미 학교에 개설돼 있는 전공이 아니라 학생이 직접 연관과목을 이수해 만든 전공.

[정고은 기자 chungk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46호(10.03.10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A도 모바일로 공부한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