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싸고 신속한 '패혈증' 검사법..의사는 '호평' 병원은 '외면'

임솔 기자 2015. 4. 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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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비 수익 없어 국내 병원 5~6곳만 사용

"검사 비용, 시간 줄인 기술은 신의료기술로 인정해야"

2006월 8월 대전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60대 여성 김모씨가 실려왔다. 급성 신장염이 원인이었지만, 병원에서 실시한 혈액검사에선 백혈구와 헤모글로빈이 정상 수치로 나타났다.

의료진은 김씨 상태가 호전될 것으로 판단하고 수술을 준비했다. 그러나 김씨는 수술대로 옮기자마자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김씨를 숨지게 한 원인은 패혈증(敗血症)으로 나타났다.

패혈증은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이 몸 안에 침입해 온 몸이 독성물질로 중독되는 질환을 말한다. 치사율은 20~35%로, 한해 국내에서 1만6000명이 이 질환으로 숨진다.

김씨의 가족은 병원이 의료사고를 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병원은 백혈구 수치가 높아지면 패혈증을 의심하지만, 김씨는 정상 범위였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당시 김씨의 혈액검사 결과를 분석한 이종욱(사진) 진천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혈액검사에서 보이지 않은 위험을 예측했다면 적절한 항생제 처방이 이뤄지고 김씨의 목숨도 구할 수 있었다"며 "한동안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이 과장의 삶은 김씨의 사건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이 과장은 온종일 환자의 혈액 샘플과 혈액 분석기를 붙들고 연구에 매진했다. 혈액검사에 나오는 적혈구, 백혈구, 혈장 수치와 염증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백혈구 모양을 일일이 확인했다. 의심스런 중증 환자는 담당 주치의에 전화를 걸어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는 작업도 거쳤다.

이 과장은 몇달간 연구를 거듭하던 끝에 패혈증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도 DNI(Delta Neutrophil Index)라는 수치가 6.5이상 올라간 환자는 패혈증으로 숨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DNI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백혈구 개수를 계산한 값으로, 이전까지 의학계는 의미없는 수치로 여겼다.

이 과장은 연구 대상을 더 확대해 DNI가 40을 넘을 때 패혈증으로 인한 환자 사망률이 80%이 넘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관절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한 70대 환자가 입원한 다음날 중증 패혈증으로 숨졌는데, 이 환자도 DNI가 40이 넘었다.

이 과장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08년 6월 국제학술지 '임상진단검사의학'에 논문을 소개했다. 또 국내에 DNI를 계산하는 방법과 관련한 특허도 출원했다. 이 과장의 연구결과는 곧장 현장에 적용됐다.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 지멘스 헬스케어는 혈액분석기에 DNI 확인 기능을 넣었다.

이 과장은 2010년 세브란스병원 의료진과도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환자 103명을 임상 연구한 결과 패혈증 환자 44명중 36명(82%)에서 DNI 수치가 6.5 인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 결과 역시 학계에 주목을 받으면서 2011년 3월 국제학술지 '바이오메드센트럴 감염질환'지에 실렸다. 현재까지 20편의 논문이 추가로 나올 정도로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과장은 "의료진에 환자의 모든 수치는 정상이지만 패혈증이 의심될 때 DNI 수치를 확인해 보라고 한다"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하루에 500건 정도 사용하고 관련 논문이 20편 이상 나오면서 유용성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확인 방법은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직접 패혈증 감염 여부를 알아낼 수 있어 빠른 처치를 돕는다.

통상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2시간 소요됐지만, DNI를 이용하면 검사시간이 30초로 줄어든다. 이 과장은 "패혈증 치료는 치사율이 높아 적절한 시간 안에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 30초 안에 패혈증 위험 여부를 확인한 다음, 이상이 생겼을 때 빨리 대응하면 환자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의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패혈증 검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7만~8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DNI는 매일 하는 혈액검사에 기능이 포함돼 있어 추가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DNI를 이용하는 진단법은 예상밖으로 널리 활용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병원 5~6곳만 혈액분석기에 DNI 확인 기능을 넣은게 전부다.

병원들은 혈액분석기에 이 기능을 넣으려면 추가 설치 비용이 들지만 환자에게 받을 수 있는 검사비가 전혀 없다. 일부 병원들은 DNI 확인 기능을 넣으면 패혈증 검사 수익이 줄어 필요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의료기기 업체는 이 기능을 포함할 경우 특별히 거둘 수익이 없다보니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과장은 "보건복지부에 검사비 인정에 대한 질의를 넣었지만, 의료법상 질환 위험 계산식은 별도 비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의료기기업계와 병원업계는 환자의 검사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기술을 신 의료기술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진휴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이사는 "DNI 사례처럼 별도의 의료수가가 산정되지 않으면 사용이 늘지 않고 시장에서 사장되기 쉽다"며 "우수한 의료기술 연구가 활성화되려면 신의료기술로 분류해 별도의 검사비를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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