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TPP 지재권 2차 폭로.."의료비 오르고, 표현의 자유 침해"

김지환 기자 2014. 10. 26. 14: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비밀문서를 공개하는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현재 협상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지적재산권 장(章) 초안을 공개했다. 지재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의약품 접근권을 침해하고 인터넷에서의 정보 공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악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말 TPP에 관심 표명을 했고, 12개 참여국과 예비 양자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TPP 참여를 결정할 경우 이 조항들이 우리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셈이다.

위키리크스가 지난 16일(현지시간) 공개한 협정문 초안은 지난 5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협상 결과를 정리한 것으로 A4 용지 77쪽 분량이다. 위키리크스는 지난해 11월에도 지재권 분야 협정문 초안을 입수해 공개한 바 있다.

초안을 살펴보면 의약품 분야에서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재 협정문안이 채택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는 수백만명의 건강과 의약품 접근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선 TPP를 통해 '자료 독점권'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자료 독점권이란 제약회사가 제네릭(복제약) 판매를 요청할 때 오리지널 의약품의 임상자료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제네릭 판매를 지연시킬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임상자료를 만든 원 제약사가 동의하지 않은 이상 후발 제약사는 임상시험을 중복으로 해 별도 자료를 만들어야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남희섭 법무법인 지향 변리사는 "에볼라 백신의 경우 세계보건기구는 내년 2월까지 임상 2상 시험까지 마친다는 계획인데, 이를 통해 안전성이 입증돼도 다른 제약사는 안전성 자료를 활용할 수 없게 만드는 게 자료 독점권 제도"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국은 자료 독점권 기간은 신약의 경우 6년이다. 하지만 미국은 인슐린, 백신과 같은 바이오 의약품에 대해 12년의 자료 독점권을 주장하고 있다.

TPP 지재권 분야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포함돼 있는 허가-특허 연계 조항도 들어가 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제네릭 제약회사가 시판 허가를 신청하는 시점에서 그 사실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허권자가 특허 침해를 주장하면 일정 기간 허가가 정지돼, 값싼 제네릭 시판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자료 독점권과 허가-특허 연계 조항의 경우 미국은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TPP 참여국의 반대가 거세자 선진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국가는 조기에 이 제도를 수용하고 나머지 국가는 일정한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협상문의 부록에 포함된 비공식 문서(Non-Paper)를 보면 협상국은 3개 유형으로 분류된다. 미국과 일본, 싱가포르는 협정 발효 2년 후에 이행 의무가 발생하는 그룹에 속해 있다. 만약 한국이 TPP에 참여할 경우 이 그룹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1월 1차 초안 유출 때 확인돼 논란이 된 의학적 처치 특허 규정은 본문에선 빠졌다. 의학적 처치 특허 규정은 새로운 진단·치료·수술방법을 사용하려면 특허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없던 수술방법이 개발되고, 이 방법으로 수술할 경우 개발자에게 특허료를 내게 돼 의료비가 오르는 것이다. 다만 미국, 일본은 이 규정 도입을 다시 고려할 수 있다는 내용을 각주로 달아두고 있다.

위키리크스가 TPP 지적재산권 챕터를 두 번째로 폭로하면서 함께 홈페이지에 올려둔 카툰.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 화이자 등이 TPP 회원국에 비싼 가격으로 의약품을 팔려는 것에 대한 조롱을 담은 카툰이다.

저작권 보호기간은 저자 사후 100년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초안을 보면 50년, 70년, 100년이 '후보'로 올라와 있다. 만약 가장 강력한 100년이 확정될 경우 저작권 보호기간이 과도하게 길어지는 것이다. 한국은 한·미 FTA 체결로 기존 50년을 70년으로 연장했다. TPP는 또 네이버, 다음 등과 같은 포털 사이트나 웹하드 사이트가 저작권자에게 적극 협조하도록 한다. 남 변리사는 "저작권자가 요청하면 이용자 개인 정보를 저작권자가 넘겨받을 수 있도록 한다"며 "이 경우 법원 판결이 없는 데다 저작권 침해 여부도 분명치 않은데도 불구하고 저작권자 요청만 있으면 포털 사이트가 게시물을 삭제하고 이용자 개인정보를 저작권자에게 제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초안에는 저작권 침해 행위에 상업적 목적이 없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내용도 담겨 있다. 남 변리사는 "협상문안을 보면 저작권자에게 '상당한 피해'가 있을 경우로 제한하긴 했지만 인터넷에는 언제나 상당한 피해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별 의미 없는 제한"이라며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언론 기사를 퍼나르는 행위는 저작권법의 관점에선 침해행위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