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스토리] "자네 글씨가 이게 뭔가" 불벼락.. 그럴 때마다 콘텐츠에 더 집중했다

김영진 기자 2014. 4.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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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의 악필 나름대로 열심히 작성해도 역정.. 오히려 그것이 승부근성 자극 명문대 출신 아닌 스펙이었지만 주인의식 갖고 열정적으로 매진.. 하기 싫던 일도 즐거운 일 돼

"원기찬씨. 자네 글씨가 이게 뭔가? 문장력은 둘째 치고 글씨가 괴발개발이라 도대체 읽을 수가 없네. 이래서 일이라도 제대로 하겠나?"

1984년 삼성전자 인사팀으로 입사한 나는 업무 자체가 고역이었다. 타고난 악필이던 나는 보고서를 올릴 때마다 상사의 꾸중을 들어야만 했다.

내 악필은 어린 시절부터 나한테 시련을 안겨주었다. 중학교 때, 전교생이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를 썼다. 공부를 곧잘 했던 내게 선생님은 많은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쓴 편지를 보며 '성의 없다'며 오히려 역정을 내셨다. 억울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의 체벌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원래 꿈은 삼성물산과 같은 종합상사에서 해외영업을 해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 그것도 인사팀에 입사하여 매번 악필로 보고서를 써야 했기 때문에 나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영업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번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누구라도 좌절할 상황,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악필이 초래한 상사의 구박은 내 승부 근성을 자극했다.

당시 나는 부장에게 업무에 대한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글씨 때문에 나에게 모멸감을 준 당시 상사에게 내 진가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에게 '성과'라는 무기가 필요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과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뒤따랐지만,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업무에 덤벼들었다. 의외로 하기 싫었던 일들이 점점 즐거운 일로 변해갔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였다. 당시 나는 사원급으로서는 다소 벅찬 인사제도 개선을 제안했다. 과장은 긍정적인 의견을 줬지만, 부장은 달랐다. 나는 부장과 직접 토론을 하며 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부장은 다시 과장을 불러 재확인을 한 뒤, 결국 내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며, 그 머무는 곳이 모두 진실한 곳이라는 당나라 '임제(臨濟)선사'의 설법처럼, 주인의식을 가진 내 마음이 머무는 그곳에, 내가 꿈꾸는 진리가 있었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인사제도 개선을 계기로 부장과 나 사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다.

PC가 나오면서 악필로 인한 내 콤플렉스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인쇄물로 작성된 내 보고서는 내 진면목을 보여주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결국 악필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악필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덕에 남들보다 더 많이 배우고 많이 채우게 되었다. 또한 이를 통해 보이는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괴발개발 보이는 글씨체가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내용, 콘텐츠의 창의성과 건실성을 먼저 봐야 한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누구라도 내 스펙을 보면 사장이 된 것에 의아해할 거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특출난 자격증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영어도 지금으로 치면 토익 3등급(삼성 내부 기준 600점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내게 남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주인의식'이다. 내가 회사의 진짜 주인일 수 없어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업무는 주인일 수 있다. 주어진 업무를 선택할 순 없어도 그 일을 하는 방법, 우선순위, 수정사항,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내가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타율을 자율로 바꾸며 즐겁게 일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면 성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고, 이 과정이 끊임없이 선순환되면서 나의 위치는 어느새 업그레이드된다. 고민을 많이 하면 분명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고민 많이 하는 사람이 머리 좋은 사람보다 더 창의적이고 더 멋진 일을 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학창 시절 나는 통기타의 매력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정식으로 기타를 배운 적이 없었던 나는 독학으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었는데, '칼립소' 리듬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꽤 오랜 기간 고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꿈에서도 보일 만큼 나를 애태우던 그 리듬이 어느 날 아침 등굣길에 어떻게 연주하면 될지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다. 그날은 수업시간에도 그 리듬을 잊지 않기 위해 혼자서 수없이 빈 기타 연습을 한 기억이 난다. 몇 년 같던 몇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집에 도착해서 기타를 치는데, 수십 일 나를 안달 나게 했던 그 리듬이 내 손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때 많은 것을 느꼈다. '고민하고 노력하면, 터득하게 되는구나. 뭔가 얻어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머릿속을 그것으로채워야 하는구나' 하고 말이다.

군 시절도 내겐 추억 그 이상이다. 나는 대한민국 대부분 남성과 마찬가지로 육군 병장 출신이다. 그것도 힘들기로 소문난 최전방에서 복무했다. 그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이야기가 "졸면 죽는다"와 "악으로 깡으로"였다. 시키는 대로 끌려간다면, 이 말들은 그저 후임들을 괴롭히는 독한 구호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문구에서 회사생활에서도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오기와 자신감을 배웠다. 그래서 보통은 치가 떨려 등지게 마련인 군부대를 제대 후 다섯 번이나 찾았는지 모른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내 영혼의 선장이다(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넬슨 만델라가 좋아했던 '윌리엄 E 헨리' 시의 일부이다.

나를 바꾸고 내 능력을 업그레이드해 주는 동시에 조직의 통념과 벽을 깨고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는 주인의식이 주는 힘. 그 힘이 바로 나의 콤플렉스를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평범한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는 비결은 바로 그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삼성 '인사통' 원기찬 사장은…]

원기찬(54) 삼성카드 사장은 198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인사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삼성전자 북미총괄 인사팀장, 본사 인사팀장 등을 맡은 삼성그룹의 대표적인 '인사통'이다. 30년 가까이 삼성전자의 인사를 담당해 온 그는 지난해 삼성카드 사장으로 임명돼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심어나가고 있다.

원 사장은 삼성그룹이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토크 콘서트 '열정락서' 강연자로 다섯 번이나 무대에 섰을 만큼 소통을 중요시하는 리더로 알려져 있다. 삼성카드에서는 임직원과 직접 문답을 주고받는 '기通(통)찬 토크'를 마련해 소통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즐겁게 일하고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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