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 TPP·FTA 비판 "약소국들 경제주권 훼손"

김지환 기자 2013. 12. 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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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각료회의서 성명 발표
교황청 "개도국과 공생하는 다자 간 무역협정 복원해야"

교황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자유무역협정(FTA)이 약소국들의 권리와 경제 주권을 훼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TPP와 FTA가 강대국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권리를 제공해 약소국의 정책 재량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이 공생하기 위해서는 다자 간 무역협정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9일 TPP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교황청의 세계무역기구(WTO) 대표인 실바노 마리아 토마시 대주교(사진)는 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9차 각료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토마시 대주교는 "양자 또는 복수국가 사이의 무역협정 확대는 자유무역 측면에서는 확실한 진전이라 할 수 있지만, 이 같은 협정들은 자칫 다자 간 협정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약소국은 양자 또는 복수국가 간의 협정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지만, 보다 공정한 시스템인 다자 간 협정은 약소국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청은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법과 규칙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려는 '새로운 독재'가 태어났다"고 밝혔다. 새로운 독재는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를 가리킨다.

토마시 대주교의 이번 성명은 교황 프란치스코의 '훈계'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교황은 지난달 26일 교황청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제로서의 훈계' 문건에서 "아무런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한 바 있다. 토마시 대주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된 배경으로 금융투기와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를 지목했다. 이 같은 이데올로기가 확산되면서 공익을 지키기 위한 국가 규제권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교황청은 규제 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재벌 등 자본가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방법으로 TPP와 양자 간 FTA를 이용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토마시 대주교는 "(새로운 독재가 강제하는) 법과 규칙이 WTO나 양자 또는 복수국가 사이의 FTA를 통해 고착화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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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다자 간 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복수의 국가 사이에 FTA를 체결하려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같은 협정이 확대되면서 다자 간 무역협정의 틀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교황청은 "양자 또는 복수국가 간의 무역협정에 참여함으로써 개별 국가는 WTO 같은 다자 간 협정에 대한 노력을 덜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 개도국은 양자 간 FTA 협상 등에서 강대국의 압력에 밀려 불리한 협상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다. 교황청은 이로 인해 개도국이나 약소국이 입게 될 피해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초국적 제약회사가 의약품 독점을 강화해 가난한 사람들이 의약품을 쉽게 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외국인 투자자가 약소국을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한·미 FTA 비준 과정에서 독소조항 논란을 빚은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그것이다. ISD로 인해 "약소국이나 개도국들의 정책 자율성이 크게 제한된다"는 것이다.

교황청은 전 세계가 기로에 서 있으며, TPP나 양자 간 FTA보다는 다자 간 무역협정을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황청은 "협상 테이블로서의 WTO를 잃는 것은 약소국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마시 대주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자 간 무역협정의 복원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몇 달 동안 DDA 협상에서 진전이 있었고 새로운 제안들도 나왔다"며 "이번 각료회의를 통해 무역 협상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WTO가 다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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