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팝니다' 대기업이 뛰어들자 쇠락한 충무로 애견거리

안상희 기자 2013. 2. 23.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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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충무로 대한극장 주변은 80~90년대 '애완견 거리'로 유명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애견가게 40여곳과 동물병원, 애견용품점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22일 찾은 애견거리는 예전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거리를 걸어가면 쉽게 맡을 수 있었던 동물냄새부터 사라졌다. 점포 수도 전성기 때 4분의 1 수준인 10여곳에 불과했다.

충무로 애견거리는 60년 전부터 형성됐다. 1950년대 서울 명동에 있던 국내 최초 애완동물센터인 '애조원'이 명동 개발에 밀려 충무로로 옮기면서 하나 둘 가게가 생기더니 애견거리를 형성했다. 특히 1980년대 들어서 1가구 1자녀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혼자인 자녀가 안쓰러워 애완견을 사는 가정이 늘며 전성기를 맞았다. 전국적으로 애완견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전문점이 드물어 "애완견을 사려면 충무로로 가라"는 말이 공식처럼 통했다.

그러나 2000년 중반부터 충무로 애견거리가 위축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애견산업의 성장성을 보고 대기업이 잇달아 뛰어들었다. 충무로 애견거리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동네 슈퍼는 정부가 '골목상권 살리기' 차원에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애견거리 영세상인들은 이런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2010년 이후 대형마트들이 애견시장에 공격적으로 뛰어든 것이 직격탄이 됐다.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강아지부터 앵무새, 곤충까지 대형마트에서 팔기 시작한 것.

이마트(139480)는 2010년부터 애견전문매장인 '몰리스펫샵'을, 롯데마트는 2012년부터 애완용품 전문점인 '펫가든'을 운영하고 있다. 몰리스펫샵은 이마트 내 애완견 전용 호텔, 카페, 유치원 시설을 갖추고 관련용품을 팔고 있다. 지난해 매출이 전년대비 126% 증가했다.

또 아이파크백화점은 복합애견매장인 쿨펫을, 대한제분(001130)은 호텔·유치원·미용실 등 애완견 관련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이리온을 운영 중이고, CJ제일제당(097950)은 애견사료 브랜드인 CJ오프레쉬를 설립해 '개밥 사업'에 나서고 있다.

문구사인 모나미(005360)는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동물병원인 닥터펫과 훈련견의 번식과 훈련을 돕는 모나미랜드, 애견용품 쇼핑몰인 모나미펫을 운영하면서 애견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인터넷 발달도 충무로 애견거리를 위축시켰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소비자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애완견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애완견을 사러 주차도 불편한 충무로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제일병원 주변에도 얼마 전까지 애견가게 7곳이 있었지만 지금은 간판만 남아있고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A 애견매장 관계자는 "재개발도 시작되면서 임대계약 연장도 쉽지 않다"며 "아예 폐업하고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한 애견가게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수십년동안 서울의 볼거리로 만들어놓은 애견거리를 최근 대기업들이 망쳐놓고 있다"며 "대기업들이 애견 사업에 뛰어들면서 개 값은 물론 개밥 등 관련 제품 가격도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업계는 2010년 1조원대 수준이던 국내 반려동물(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 산업이 최근 1조8000억원대로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쯤이면 6조원대로 커질 것이란 예상도 있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 따르면 2010년 현재 다섯 집 중 한 집(17.4%)이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

이날 충무로 애완견 거리를 찾은 한 소비자는 "집에 혼자 계신 어머니가 외로워하실까 봐 강아지를 분양받으러 왔다"며 "인터넷에서 개를 사면 실물과 다를 수도 있고, 가격도 비싸 직접 충무로에 나왔다"고 말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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