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 금고에서 연간 1000억원 세금 샌다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는 1189원의 세금과 361원의 부담금이 붙는다. 주유소에서 파는 휘발유에도 세금이 붙어 있고 1000원짜리 소주 한 병에도 530원의 세금이 붙어있다. 모두 최종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간접세로 소비자들은 담배소비세나 유류세를 내기 위해 굳이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 담배 제조사, 휘발유 제조사, 소주 제조사들이 제품을 팔 때 세금까지 붙여서 팔기 때문이다.

결국 담배를 생산하는 KT & G나 휘발유를 만드는 GS칼텍스, 소주를 만드는 하이트진로같은 회사들은 국세청을 대신해 소비자들로부터 세금을 걷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떡을 만지다보면 떡고물이 손에 묻는 법. 국세청 대신 세금 걷는 일을 하는 이들 업체들의 손에도 혹시 '세금 떡고물'이 묻지는 않을까.



◇ 20조원 유류세 정유사 금고에서 한달 반 잠잔다


정유사들은 휘발유를 제조해 주유소에 팔 때 세금까지 붙여서 판다. 기름이 유조차에 실려 정유공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기름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 등의 유류세가 붙기 때문. 리터당 1900원짜리 휘발유에는 917원의 세금이 붙는데 정유사들은 주유소에 기름을 넘길 때 이 세금까지 붙여서 넘긴다.

정유사들은 이렇게 걷은 세금을 모아서 나중에 세무신고를 하고 국세청에 납부한다. 이런 식으로 정유사가 걷는 유류세가 연간 20조원 가량 된다. 결국 기름에 붙는 세금은 SK이노베이션 등 4개 정유사의 금고에 보관돼 있다 국세청으로 들어간다.

문제는 오늘 정유사가 주유소에 기름을 넘기면서 걷은 유류세를 언제 국세청에 납부하느냐다. 세법에 따르면 이달에 걷은 유류세는 다음달 말일까지 국세청에 납부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해 11월 1일에 걷은 유류세는 12월31일까지 국세청에 내는 것이다. 정유사들은 당연히 납부 마감일까지 기다렸다가 낸다.

주유소들로부터 걷은 유류세를 정유사들은 최장 60일, 평균 45일을 회사 금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국세청에 내는 것이다. 유류세 규모가 연간 20조원이니 지난해 정유사들의 회사채 수익률 수준인 연 4%의 이자율로 계산하면 45일간 정유사들이 유류세를 묵혀두어 거두는 이자 수익이 연간 986억원. 매년 1000억원에 가까운 '세금 떡고물'이 정유사에 떨어지는 셈이다.

기름 뿐만이 아니다. 세금이 많기로 유명한 술이나 담배도 거의 똑같은 구조다. 술·담배 제조사들도 주세나 담배세를 걷어 국세청에 내면서 떡고물이 떨어진다. 담배에 붙는 세금과 건강증진기금 등 부담금은 지난 2008년 기준으로 연간 7조4000억원에 이른다.

역시 담배 제조사들이 도매상에 넘길 때 세금과 부담금을 붙여서 넘기고 담배회사들은 그렇게 걷은 세금을 정유사들과 마찬가지로 최장 60일, 평균 45일간 보관한 후 국세청에 납부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입은 연간 360억원이다.

맥주회사와 소주회사들이 매년 걷는 주세도 마찬가지다. 1년동안 술에 붙여서 걷는 세금은 3조원 규모. 주세는 특히 이달에 걷은 세금을 다음다음달 말까지만 내면 되기 때문에 주류업체들은 세금을 걷어 국세청에 납부하기까지 평균 75일을 굴릴 수 있다. 이렇게 굴려 얻는 연간 이자로 약 250억원이다.


◇ "정확한 세액 산출에 시간 걸려..불가피한 공백 기간"


증권거래세도 같은 구조다. 증권거래세는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 때마다 매도 금액의 0.3%를 자동으로 내는데 그 규모가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4조3000억원에 이른다. 이 세금은 매월 10일까지 납부하면 되는데 증권예탁결제원이 증권사들에게서 받은 증권거래세를 평균 25일간 들고 있다 국세청에 납부한다. 이 기간동안 발생하는 이자수익만도 연간 100억원 가량이다. 이처럼 유류세 주세 담배세 증권거래세 등 대표적인 간접세 4가지에서만 누수되는 세금이 연간 1700억원에 이른다.

이처럼 간접세에 붙는 세금의 규모를 추산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이런 세금들을 회수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국세청 관계자는 "정유사들은 공장에서 얼마나 기름이 출고됐는지 파악해서 정산하는 데 최소 1~2개월은 걸린다고 한다"며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할지 정유사나 주류업체들이 집계하고 계산해야 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이자 수입을 모두 반납하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과거에 납부했던 세금만큼 일단 먼저 납부하고 사후 정산을 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확정되지 않은 세금을 미리 납부하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업체들도 반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들 업체들이 가져가는 이자수입을 국세청 대신 세금을 걷어주는 데 따르는 징세비용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규모 주류업체들의 경우 주세 납부에 따른 이자수익보다는 주세 정산에 따른 행정업무 비용이 더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논리를 인정할 경우 왜 특정 업종의 기업들에게만 징세 대행 수수료를 몰아주느냐는 문제와 정작 소비자들로부터 직접 유류세나 주세, 담배세를 받으면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까지 부담하고 있는 주유소들이나 소매점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도 문제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기름에 유류세가 엄청나게 붙어 있어서 가격저항도 심할 뿐 아니라 카드로 결제를 할 경우 유류세까지 함께 결제되는데 이에 따른 가맹점 수수료는 주유소들이 모두 내고 있다"면서 "정유사들은 그 뒤에서 연간 천억원 가량의 유류세 이자수입을 챙긴다면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유사들은 주유소에 외상으로 기름을 주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정유사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이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주유소에 외상으로 공급할 경우 주유소로부터 받지도 못한 유류세까지 정유사들이 대신 미리 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90년대 중반에는 이런 문제 때문에 유류세 납부기한을 뒤로 더 미뤄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다소 부정적인 의견이 강하다. 조세연구원의 성명재 박사는 "이런 논리라면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 역시 3개월에 한번씩 걷어가고 있으므로 가게 주인들이 소비자들로부터 받은 부가가치세의 이자 수입을 반납하라고 해야 할 것"이라며 이런 세금 누수액을 해당 기업들로부터 받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 세금 보관에 따른 이자 수익 처리방안 공론화해야


과세관청을 대신해 걷어놓은 세금을 묵혀놨다가 늦게 내는 데 따르는 이자수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는 때로 해묵은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지방세나 국세를 카드로 납부할 때 발생하는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논란도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 해결책을 찾은 경우다.

현재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지방세를 신용카드로 낼 수 있게 하면서 카드 수수료도 납세자에게 따로 부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자체가 카드 수수료를 내는 것도 아니다. 카드 수수료는 신용카드 회사가 부담하는 데 그 대신 신용카드 회사는 납세자가 낸 세금을 3개월 정도 보관하고 있다 납부한다. 그 기간 동안의 이자수익으로 카드 수수료를 대신하는 것이다. 카드사가 세금을 일정기간 보관하는 과정에서 얻은 이자수익을 과세당국이 사실상 회수한 케이스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샐러리맨들의 근로소득세는 먼저 떼어갔다가 너무 많이 냈으면 연말에 연말정산 방식으로 돌려주고 있지 않느냐"면서 "정유사들이나 주류업체들이 내야 할 유류세나 주세도 일단 적당한 금액을 일괄적으로 떼었다가 혹시 많이 낸 부분은 차후에 정산해서 돌려주는 방식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우 (voic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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