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집중]삼성의 '채용실험'.. "실험실에서 끝났다"

정옥주 2014. 1. 2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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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정옥주 정의진 기자 = "이렇게 논란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가 찾지 못하는 인재를 학교에서 찾아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한 것인데…"

삼성그룹이 사회적 반대 여론에 가로막혀 결국 손을 들었다.

대학 총장추천제, 서류심사 도입을 골자로 한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선안 시행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결정한 것.

당장 올 상반기 채용부터 일정 지원자격을 갖춘 입사희망자들은 기존과 동일하게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를 치른 후 면접 등의 전형을 치러야 한다.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28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신입사원 채용제도 개편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대학총장 추천제로 각 대학과 취업준비생들에게 혼란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총장추천제뿐만 아니라 새로 도입하려고 했던 개선안을 전면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이 개선안을 마련한 취지를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공감할 부분이 있다.

이번에 내놓았던 것은 1995년 '열린채용'을 도입하면서 폐지한 것들. 서류전형을 19년만에 부활시켜 SSAT 응시 인원을 줄이고, 각 대학들의 추천으로 검증된 인재들을 채용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계산이었다.

현재 삼성은 학점 3.0 이상(4.5 만점 기준), 기준치 이상의 어학점수를 갖추면 누구나 2차 전형인 SSAT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20만명 가까이 몰려 삼성측은 SSAT 전형을 치르기 위한 학교 임대료, 인건비 등을 포함해 연간 200억원 이상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했다.

개별 기업의 비용 뿐만이 아니다.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지원자가 과도하게 몰려 경쟁이 치열해지자 취업 시험준비를 위한 사교육 시장까지 형성되며 '삼성 고시'라는 신조어도 만들어졌을 정도다. 누구나 충분히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제도개선 과정에서 삼성이 간과한 부분은.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더 절대적이다. 우리나라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5분의 1에 달하고, 수년 째 대학졸업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 자리도 놓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삼성이 대학별로 할당한 인원수는 대학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또 다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삼성이 전국 200여개 대학에 통보한 '대학별 할당인원'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극에 달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학계와 정치권 등은 이를 두고 한 기업이 대학서열화를 조장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인원 할당이 적게 돌아간 지방대와 여대 등은 "기준이 불분명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삼성은 "높은 성과를 내고 성실하게 일한 기존 입사자 출신 대학 등을 고려해 대학별 할당 기준을 정했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삼성의 이번 '백지화' 결정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삼성에 지원자가 과도하게 몰린 것은 전형 방식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좋은 의도로 추진했더라도 삼성이 자치하는 비중, 위치를 감안하면 제도 개편에 앞서 보다 신중해야 했고, 향후 임팩트에 대해 판단을 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총장들에게 추천권을 준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학생들의 취업 기회를 박탈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삼성과 같은 기업들은 지원자들이 선발 과정에서 공정하게, 성별, 지역, 빈부격차 등에 관계없이 공정한 선발 기준에 따라 평가받았다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일구 전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공정성이 유지된다면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총장직권이라는 개념은 아무리 학과 추천이나 교수 추천 등의 절차를 거친다고 해도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럴싸해 보이는 개편안이었지만 막상 펼쳐놓고 보니 지역 안배보다는 편차를 만들고, 격차를 조장한다는 논란을 키웠다"며 "또 총장 추천제는 자칫 취업준비생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삼성의 이번 '백지화' 결정은 나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한 기업의 채용제도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회 구조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민간 기업인 삼성에게 채용은 고유한 권한"이라며 "개별 기업의 채용방식을 둘러싸고 이처럼 과도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 사회 구조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channa224@newsis.comjeenju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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