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엔 '바가지' 부유층엔 '퍼주기'
대출금리 등은 그냥 두고 수수료 찔끔 인하로 생색
[동아일보]
수수료를 내리라는 여론의 거센 압박에 뒤늦게 자동화기기(ATM) 관련 수수료를 일부 내렸던 은행권이 프라이빗뱅킹(PB)처럼 부유층을 상대로 한 영업은 적자를 감수하며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어 비판을 받고 있다. ATM 수수료 인하가 서민 고객들의 이용이 낮은 항목 위주로 이뤄진 반면 VIP 고객에게는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돈은 서민 고객으로부터 벌고 그 혜택은 부자 고객들만 누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동아일보가 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 외환 SC제일은행 등 7개 시중은행의 서울 시내 25개구 PB센터 69곳을 집계한 결과 전체의 63.7%인 44곳이 강남, 서초, 송파구의 '강남3구'에 밀집해 있었다. 반면 강북 금천 도봉 동대문 중랑구 등 14개구에는 PB센터가 전무했다. 우리은행은 PB센터 4곳 모두 강남 3구에 있었다.
PB센터 같은 VIP영업은 상당 기간 적자를 각오해야 한다. 은행의 핵심 수익원은 예대마진이지만 돈 많은 고객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릴 일이 많지 않고 돈을 빌려도 파격적인 우대 금리를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비싼 임차료와 인테리어비, 각종 접대비용도 빼놓을 수 없다. '예대마진 측면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안겨주는 고객은 돈을 꼬박꼬박 갚는 강북 대출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의 PB는 "강남의 대로변 건물 1층에 100평짜리 PB센터를 개설할 때 인테리어비용은 12억 원, 월 임차료는 1억 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의 개인고객본부 담당 부행장도 "일반 지점은 개설 후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기간이 보통 2년이지만 PB센터는 최소 4∼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 은행은 PB사업을 통해 부자 고객으로부터 자산의 1∼2%에 이르는 자산관리수수료를 받지만 국내 은행은 부자들에게 펀드와 보험을 팔아 겨우 마진을 맞추는 정도"라며 "비싼 인테리어비도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자 고객들이 다른 은행으로 가버리니 어쩔 수 없다"고 토로했다.
이번 ATM 수수료 인하가 생색 내기용이라는 비판도 많다. 하나은행은 최근 10만 원 초과 타행송금수수료를 600원 내렸지만 10만 원 이하 소액 송금은 100원 내리는 데 그쳤다. 영업시간 외 수수료도 10만 원 초과 송금은 1000원을 낮췄지만 10만 원 이하는 500원만 내렸다. 신한은행은 타행송금수수료를 10만 원 이하는 600원으로, 100만 원 이하는 1000원으로, 100만 원 초과는 3000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3만 원 이하 송금 수수료는 기존 그대로다. KB국민은행의 10만 원 이하 ATM 수수료 인하율 역시 10만 원 초과일 때보다 낮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서민들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몇 개 항목의 수수료만 낮춰놓고 전체 수수료를 내린 것처럼 홍보하니 '돈은 엉뚱한 데서 벌고 혜택은 다른 사람이 누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며 "은행권이 수수료 인하로 줄어든 수입을 대출금리 인상이나 다른 거래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서민 고객들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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