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으면 바보?.. 개인파산 유혹하는 '검은 손'

2011. 9. 9.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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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류병수 기자]

채무의 고통에서 벗어나 재기를 꿈꾸는 개인신용회복자들이 금융권의 높은 문턱에 막혀 '금융 전과자'의 꼬리표를 달고 생활하고 있다. 신용회복 이후 면책자들이 겪는 문제점과 개인 파산 신청 급증에 따른 도덕적 해이, 이에 대한 정부와 금융당국 차원에서의 해결 방안 등을 3회에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 주]

2009년 전남의 한 농협에서는 조합원 46명 가운데 40명 이상이 개인회생을 신청하는 일이 벌어졌다. 표면적 이유는 이상기온 여파로 김, 미역 등 수산물 생산이 어려워진 데다 유가까지 올라 생활형편이 악화돼 빚을 온전히 갚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마을을 찾은 법무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농협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농어촌 지역에는'파산 보장합니다. (수임료) 할부 납부 가능'등의 광고 현수막이 널려있는 상황이다.

개인회생은 개인파산까지는 아니지만 법원이 강제로 채무를 조정해 일정 기간 일정 금액만 갚고 나머지는 면제해 주는 것이어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개입될 수 있는 제도로 꼽힌다.

채무자 구제제도인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신용질서가 붕괴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신용회복제도는 금융기관에 진 빚이 과중한 사람의 원금과 이자 일부를 감면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다. 신용회복위원회와 금융회사들이 자율적으로 협약을 맺어 운영하는 사전채무조정(프리워크아웃)과 개인워크아웃, 그리고 법원이 운영하는 개인회생과 파산 등이 있다.

사전채무조정은 1~3개월 미만의 단기연체자를 대상으로 한다. 채무 만기연장, 연체이자 감면, 채무 분할상환 등의 혜택을 볼 수 있다. 원금은 깎아주지 않고, 이자의 30%와 신청 전에 발생한 연체이자는 감면 가능하다.

개인워크아웃은 3개월 이상 연체자로 총 채무액이 5억원 이하여야 대상자가 될 수 있다. 연체이자를 전액 감면받으면서 원금은 채무상환능력에 따라 최장 8년 안에 나눠서 갚으면 된다. 1년 이상 성실하게 빚을 갚은 사람이 남아있는 채무액을 한꺼번에 갚을 때는 10~15%를 추가로 감면해 준다.

그러나, 개인회생과 파산은 채무가 지나치게 많아 현재 또는 미래의 소득으로 갚기 어려울 경우 법원의 명령으로 빚을 탕감하는 제도다. 채무불이행자로 등재돼 받게 되는 불이익을 없애 면책자의 새출발을 돕기 위해 도입됐다.

개인회생은 채무자가 갚아야 할 금액의 최대 90%까지 면제해주고 나머지 10%를 3~5년 안에 갚으면 된다. 파산은 최소한의 기초생활 자산을 제외한 다른 재산이 없어 도저히 채무를 갚을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파산 후 면책을 받으면 채무에 대해 책임이 없어지게 된다.

개인회생이나 개인워크아웃이 일정 기간 뒤에 빚을 갚아야 하지만 파산은 그런 책임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문제는 채무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을 오남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공적 채무자 구제제도인 개인파산과 개인회생은 2006년 4월부터 시행된 통합도산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빚을 상환하도록 요구하는 것보다는 면제해 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통합도산법의 도입 취지는 좋았다. 채무자들이 과도한 채권 추심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영 결과는 도입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2006년 4월부터 2010년 6월까지 53만4628건이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2006년 3월까지 신청 건수 7만5816명의 7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반면 원금 위주로 상환하도록 설계된 개인워크아웃 이용자는 통합도산법 도입 이후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개인워크아웃 신청자는 2005년 19만3698명에서 2006년 이후에는 연간 6만∼9만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빚을 갚기보다는 안 갚는 쪽을 선택하는 개인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올해 역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8일 금융연구원과 법조계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건수는 1만8089건으로 2010년 상반기 1만4471건에 비해 25%가 늘었다. 개인회생 신청건수는 2008년 상반기 1만5534건에서 2009년 2만188건으로 늘었지만 지난해 상반기 다시 크게 줄었던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원인으로 통합도산법의 허술한 운영을 꼽고 있다. 판사 인력은 부족한데 파산 신청이 쏟아지면서 2010년 초까지 서면 위주의 검토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9년 법원의 파산 인용률은 90%를 넘겼다. 신청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셈이다.

다만 법원이 2010년 4월부터 서면으로 심리하던 방식에서 구두심리로 전환하고, 조사를 담당하는 개인파산관재인 선임 건수를 대폭 늘리면서, 개인파산 신청건수는 올 상반기 전년동기 3만1377건보다 25% 줄어든 2만3495건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파산을 꼬드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일부 파산 전문 변호사와 법무사들은 개인파산 및 개인회생 광고홍보물들을 경쟁적으로 돌리며 파산을 권유하고 있다. 한때 200만 원 안팎이던 개인파산 수임료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울 기준으로 변호사는 100만 원선, 법무사는 40만∼50만원 선으로 내려갔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전언이다.

이에 대해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파산 신청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여전히 많다" 며 "과도한 빚에 허덕이는 채무자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면제해 주는 것도 좋지만 면제에 따른 책무를 함께 부과해야 파산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bsry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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